구글이 보여줄 새로운 대중문화
ChatGPT 이후 LLM의 대중화와 구글이 지향하는 그다음 단계
2022년 말 등장한 OpenAI의 ChatGPT는 불과 두 달 만에 1억 명에 가까운 사용자를 모으며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대중화되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LLM 기반 챗봇이 일상 속 도구로 자리잡았고, 대화형 언어 인터페이스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은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대신 일상어로 AI와 질의응답하며 정보를 얻거나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생성형 AI가 이제는 검색, 번역, 문서 작성 등 다양한 분야에 스며들어, IT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ChatGPT나 유사 모델을 활용해본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언어 중심 AI의 급격한 보편화 이후, 다음 단계의 기술 비전을 가장 선명하게 제시한 곳은 2025년 5월 개최된 구글 I/O 2025 개발자 컨퍼런스였다. 구글은 이 자리에서 자사의 검색엔진과 플랫폼을 기반으로 “모두를 위한 에이전트” 시대를 열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이는 기존의 챗봇처럼 질의에 답변만 하는 AI를 넘어, 이미지·영상·음성까지 아우르는 다중모달 입력을 이해하고, 웹과 현실 세계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를 수십억 인구가 일상적으로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비전이다. 구글 CEO 순다 피차이는 키노트 연설에서 “AI를 연구실의 이론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직접 체감하는 현실로 가져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언급하며, 검색 중심의 언어 인터페이스에서 벗어나 사용자에게 실제 ‘일’을 수행해주는 에이전트 중심 경험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는 ChatGPT 유행 이후 정체기에 접어든 듯 보이던 AI 경쟁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하에서는 구글 I/O 2025에서 드러난 에이전트 기술의 대중화 전략과 그 의미를 살펴본다.
에이전트의 대중화가 의미하는 기술적 변화: 언어에서 다중모달로, 질의응답에서 능동 행위로
에이전트의 등장은 AI 인터페이스와 활용 방식의 근본적 변혁을 예고한다. 이전까지 AI 활용은 주로 텍스트 또는 음성으로 질문하면 답변이나 결과를 얻는 수동형 상호작용에 머물렀다. 반면 구글이 지향하는 에이전트란 “고급 AI 모델의 지능에 다양한 도구 사용 능력을 결합함으로써, 사용자가 원하는 작업을 대신 수행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즉 에이전트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 웹과 앱을 가로질러 실제 행동을 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동형 AI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AI는 인간처럼 다중모달 감각을 갖추어야 한다. 구글이 I/O 2025에서 선보인 Project Astra 기능들은 그 단초를 보여주었다. 예컨대 최신 Gemini Live 데모에서 사용자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주변을 비추며 AI와 대화했다. AI는 영상 속 장면을 이해하고 설명해주었고, 사용자의 음성 명령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웹에서 검색하고, 상황에 맞춰 전화를 걸거나 일정 등록 등의 행동까지 수행했다. 이 기능은 전년의 실험적 시연에서 발전한 것으로, 카메라로 본 현실 세계의 맥락을 기억하고 대화에 활용하며, 사용자의 지시를 따라 손발처럼 움직이는 초기 형태의 에이전트라 할 수 있다.
구글은 또한 Project Mariner를 통해 에이전트 기술의 또 다른 측면을 연구해왔다. 마리너는 웹 브라우저를 비롯한 컴퓨터 사용 행동을 AI가 직접 수행하도록 한 프로토타입으로, 사람이 한 번 작업을 시연하면 이후 유사한 작업을 스스로 계획해 반복하는 “가르치고 반복하기” 기법까지 갖추고 있다. I/O 2025에서 구글은 이 에이전트 기술을 발전시켜 새로운 “에이전트 모드”를 선보였는데, 이는 사용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여러 웹사이트와 앱을 넘나들며 일련의 작업을 자동화하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조건에 맞는 아파트를 찾아줘”라고 하면, 에이전트 모드는 부동산 웹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필터를 설정하고 적합한 매물을 찾은 뒤, 일정을 예약하는 것까지 일괄 수행한다. 이전까지 검색엔진이 사용자에게 링크 목록을 보여주고 선택을 유도했다면, 이제 에이전트는 사용자 대신 직접 클릭하고 입력하면서 목적을 이뤄주는 주체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AI가 언어로 답변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도구와 환경을 조작하며 사용자 의도를 실행에 옮기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에이전트의 대중화란 AI가 인간과 멀티모달하게 소통하며, 단순 Q&A를 넘어 실행력을 갖추게 되는 기술적 진화를 뜻한다. 이는 사용자 경험의 큰 변화로서, 마치 초기 PC가 GUI 환경으로 전환되며 누구나 컴퓨터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에 비견된다. 이제 AI는 더 이상 그저 똑똑한 비서가 아닌, 디지털 세상의 행동자로서 우리 업무와 생활 깊숙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하드웨어와 에너지의 재편: TPU와 저전력 AI, 재생 전력, 원자로
이러한 막강한 에이전트 AI를 전 지구적 규모로 구현하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받침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구글은 소프트웨어 혁신뿐 아니라 하드웨어 인프라와 에너지 공급 체계의 혁신을 병행하고 있다. I/O 2025에서 공개된 7세대 TPU 칩 아이언우드는 그 대표적 예이다. 아이언우드는 AI의 ‘사고’와 ‘추론’ 작업을 대규모로 처리하도록 특별 설계된 최초의 TPU로서, 이전 세대보다 10배의 성능 향상을 이뤄냈고 TPU pod 한 대당 42.5 엑사플롭스에 달하는 경이적인 연산력을 자랑한다. 구글은 이러한 최첨단 칩과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바탕으로 AI 모델의 비용당 성능을 급격히 향상시켜왔다. 그 결과 동일 비용으로 더 복잡한 모델을 더 빠르게 실행할 수 있게 되면서, 수억 명 규모 사용자에게 실시간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현실화되고 있다. 요컨대, 에이전트의 보편화는 곧 고효율 AI 하드웨어의 보편화를 의미하며, 구글은 TPU와 자체 데이터센터 기술로 이를 견인하고 있다.
한편, 수십억 인구가 AI 에이전트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에너지 소비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대규모 AI 모델은 방대한 전력을 소모하므로, 이를 지속가능하게 운영하려면 전력 인프라 혁신이 필수적이다. 구글은 이미 자사 데이터센터에 2030년까지 탄소중립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구매를 확대해왔다. 그러나 AI 수요의 급증으로는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수 있다. 실제로 2023년 한 해에만 구글의 전력 소비는 AI 워크로드 증가로 17% 늘었고, 데이터센터 관련 탄소배출도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러한 추세에 대비해 구글은 2024년에 소형 모듈식 원자로(SMR) 개발 스타트업과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카이로스 파워와의 이 협력을 통해 2030년대 초반까지 수백 메가와트(최대 500MW)에 달하는 차세대 원전 전력을 자사 데이터센터에 도입할 계획이다. 이는 빅테크 기업이 직접 원전을 건설·운영하도록 계약한 세계 최초의 사례로서, AI 시대의 전력 수요를 24시간 청정하게 충당하려는 구글의 선제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구글 에너지 담당 디렉터는 “AI 기술의 잠재력을 모두 활용하려면 전력망에 새로운 청정 전력원이 필요하다”면서, 이번 원자로 도입이 신기술을 가속해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AI 인프라를 뒷받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구글이 이끄는 에이전트 혁명의 이면에는 고성능 저전력 AI 칩과 대규모 청정 전력 공급망이라는 두 축이 있다. 구글은 한편으로 TPU와 같은 특화 하드웨어로 에이전트 AI의 실행 효율을 끌어올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으로 그 에너지원까지 최적화함으로써, 에이전트를 전 지구 수십억 사람이 끊임없이 사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AR 안경을 통한 물리 세계 인터페이스 확장
에이전트 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면 현실 세계와의 경계를 허물 필요가 있다. 구글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AR 안경을 포함한 차세대 디바이스 전략을 내놓았다. I/O 2025 키노트에서 구글은 “Android XR”이라는 이름으로 증강현실(AR) 및 혼합현실(MR) 기기를 위한 플랫폼을 소개하며, 미래의 에이전트가 물리 세계 속 사용자 시야에 직접 개입하게 될 전망을 시사했다. 실제 시연에서는 두 명의 구글 직원이 프로토타입 AR 안경을 착용하고 무대 주변을 걸어다녔는데, 관객들은 그들이 보는 안경 화면 속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안경 디스플레이에는 문자 메시지, 지도 내비게이션, 사진 등 각종 정보가 사용자의 눈앞에 겹쳐 나타났고, 한 데모에서는 대화 상대방의 말을 실시간 자막 번역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연출되었다. 관중을 상대로 한 실시간 AR 안경 데모는 다소 위험부담 있는 시도였지만, 구글은 몇 차례 통신 지연이나 번역상의 작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동작을 선보였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시연에 사용된 안경 프로토타입이 얼핏 보아 일반 안경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슬림했다는 것이다. 구글은 안경 디자인을 더 세련되게 다듬기 위해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인 젠틀몬스터와 미국 안경사 워비 파커와의 파트너십도 발표했다. 이를 통해 기술 장비 티가 나지 않는 일상적인 안경 형태의 AR 디바이스를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O 2025에서 시연된 Android XR 안경의 개념 이미지. AR 안경을 통해 문자 메시지, 지도, 일정 등 다양한 정보가 사용자의 시야에 직접 나타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구글은 얇고 평범한 디자인의 AR 안경을 개발하기 위해 안경 업체와 협업하고 있다.
AR 안경이 보편화된다면 AI 에이전트의 활용 범위는 가상 공간에서 현실 공간으로 확대된다. 예를 들어, 길을 걸으며 안경을 통해 거리 간판을 번역해보거나, 마트에서 상품을 바라보며 영양정보나 가격 비교를 바로 확인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사용자는 굳이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도 눈앞의 세계 위에 겹쳐진 정보를 통해 에이전트의 도움을 얻는다. 이는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인터페이스의 획기적 확장이라 할 수 있다. 키보드와 화면을 통해서만 상호작용하던 컴퓨팅이 스마트폰으로 현실 공간에 녹아들더니, 이제는 AR 안경을 통해 현실 그 자체와 융합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구글이 Android XR 플랫폼을 공개하고 수백 명의 개발자들을 여기에 참여시키고 있는 이유도 에이전트가 활약할 새로운 생태계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다. 더 나아가 구글은 삼성전자와 협력한 프로젝트 무한 MR 헤드셋도 곧 출시될 것이라 언급하며, 향후 고글형 디바이스부터 일반 안경 형태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폼팩터의 XR 기기를 통해 에이전트 서비스가 제공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러한 노력은 에이전트 AI가 사람의 오감 중 시각을 통해 현실 세계와 연결되는 길을 열어주고 있으며, 물리적 맥락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AI 시대의 서막을 올리고 있다.
대량 생산식 에이전트: 누구나 활용 가능한 퍼스널 AI의 생산 체계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대량 생산해 마차 시대에서 자동차 시대로 대중문화를 바꾼 것처럼, 구글이 추진하는 에이전트 전략의 궁극적인 그림은 AI의 대중화를 넘어서 에이전트의 대중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에이전트 기술이 일부 매니아나 개발자 집단을 넘어 전 계층이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보편재가 되어야 한다. 구글은 자사가 보유한 방대한 사용자 기반과 플랫폼을 총동원해 퍼스널 AI의 대량 보급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첫째로, 검색의 에이전트화를 들 수 있다. 구글 검색은 현재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사용하며 하나의 생활 필수품이 된 서비스다. 구글은 이 검색엔진에 AI 모드를 도입하여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에이전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미 2024년부터 미국, 인도 등 주요 시장을 중심으로 검색 결과 상단에 AI 개요 답변을 생성해주는 기능이 출시되었고, 1년 만에 전 세계 200여 국가에서 15억 명 이상의 사용자가 이용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는 인터넷 역사상 전례 없이 짧은 기간에 수억 명 규모 사용자가 AI 기반 검색에 적응했음을 보여준다. 검색 사용자는 의식하지 않아도 AI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구글은 이 AI 결과의 품질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이 더 자주 검색을 이용하게 되는 긍정적 순환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구글은 기존 검색 경험을 점진적으로 에이전트화하여 전 인류가 AI 에이전트를 쓰게 만드는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구글은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생태계 전반에 에이전트를 심고 있다. 안드로이드폰의 기본 AI 어시스턴트를 제미나이 기반 에이전트로 교체하고, 지메일의 맞춤형 스마트 답장처럼 사용자 개인 데이터를 활용해 맥락에 꼭 맞는 답변을 생성해주는 기능도 추가되고 있다. 클라우드 생산성 도구에도 AI가 통합되어, 문서를 작성하거나 코드를 짤 때 AI 에이전트가 공동 작업자로 참여하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I/O 2025에서는 개발자를 위한 비동기 코딩 에이전트 줄스, 사용자가 제시한 이미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바꿔주는 플로우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에이전트 툴도 공개되었다. 이는 마치 20세기 초 전기에 기반한 가전제품이 주방, 거실 등 생활 곳곳으로 파고든 것처럼, AI 에이전트가 우리 업무와 생활의 모든 국면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로, AI 모델과 서비스의 대량 생산을 위한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움직임이다. 구글은 자체 AI 모델인 제미나이의 연구 개발을 가속화하면서도, 외부 개발사와 서비스들이 손쉽게 에이전트를 생산·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툴체인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A2A 프로토콜과 MCP의 지원이다. 서로 다른 AI 에이전트들끼리 소통하거나, 서드파티 서비스에 AI 에이전트가 접근해 필요한 데이터를 주고받는 표준을 마련함으로써, 에이전트 생태계를 혼자가 아닌 여러 기업과 개발자들이 함께 키워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구글은 자사 제미나이 API/SDK를 이 개방형 프로토콜들과 호환시켜,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누구나 자사의 앱에 에이전트 기능을 손쉽게 넣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많은 기업들이 구글의 에이전트 API를 활용해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 중임을 공개하며, 개발자 700만 명 시대에 걸맞게 에이전트 활용 저변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과거 스마트폰이 등장하던 시기 애플과 구글이 App Store/Play 스토어라는 개방형 앱 생태계를 만들어 수백만 개의 앱이 쏟아져나온 것과 유사하다. 구글은 AI 시대의 생산 라인을 표준화함으로써 퍼스널 AI 에이전트가 폭발적으로 양산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구글이 추진하는 에이전트 대중화 전략은 기술, 플랫폼, 개발자 생태계 전 영역을 포괄한다. 이를 통해 AI 에이전트가 자동차처럼 한 사람당 하나씩 갖고 활용하는 시대, 즉 ‘1인 1에이전트’의 대중문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구글 전략의 궁극적인 목표로 보인다.
새로운 생태계와 노동의 재정의: IT 종사자들이 준비해야 할 것
에이전트 기술의 부상은 IT 산업 생태계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 우선 기업 관점에서 보면, 웹서비스나 앱을 제공하는 업체들은 앞으로 사용자 에이전트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행 예약 사이트, 쇼핑몰, 은행 시스템 등은 직접 사용자에게 UI를 제공하는 대신 사용자의 AI 에이전트가 대신 접근하여 필요한 정보를 가져가거나 거래를 처리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실제로 에이전트 모드 데모에서 부동산 웹사이트가 에이전트의 자동 탐색을 허용함으로써 고객을 유치하는 장면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는 마치 인간 고객과 더불어 디지털 고객(에이전트)을 상대해야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이 도래함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API 경제가 강화되고 표준 프로토콜을 통한 서비스 연동이 더욱 중요해지며, 궁극적으로는 에이전트 친화적인 서비스 설계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한편 노동의 형태와 역할도 에이전트 시대에 맞게 재정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AI 에이전트는 인간이 시키기만 하면 반복적이고 구조화된 업무를 쉼없이 처리할 수 있으므로,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단순 작업 부담을 덜어주는 자동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실제로 IT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고객응대, 데이터 분류, 코드 생성과 같이 패턴이 뚜렷한 작업들은 AI가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곧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뜻이라기보다, 인간의 일의 내용이 고차원적으로 변화한다는 뜻에 가깝다. 과거 산업혁명 시기 기계가 육체노동을 대체했을 때 인간은 관리, 기획, 창의 업무로 이동했듯이, 에이전트 AI가 보급되면 인간은 반복 업무에서 해방되어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예컨대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경우 간단한 코드 구현은 AI 도구가 맡고, 개발자는 복잡한 설계나 창의적 문제 해결에 역량을 쏟는 식으로 역할이 바뀔 수 있다. 기획자나 운영 담당자도 일상의 리서치나 보고서 초안 작성은 에이전트에 맡기고, 최종 판단과 의사결정, 그리고 AI가 놓친 맥락을 채워주는 작업에 전념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IT 종사자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AI와 협업하는 능력이 될 전망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 불리는 AI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리는 기술, AI가 제공한 결과물을 빠르게 검증하고 수정하는 크리틱 능력, 그리고 자신의 도메인 지식을 바탕으로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성이 중요해진다. 조직 차원에서도 직원들에게 AI 활용법을 교육하고, AI를 업무에 도입할 때 윤리적인 가이드라인과 인간 검증 프로세스를 함께 마련하는 것이 필수가 될 것이다. 특히 의사결정이나 콘텐츠 제작같이 완전한 자동화가 어려운 영역에서는 사람과 에이전트가 혼합팀을 이뤄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마케팅 부서라면 AI가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해 초안을 만들고, 사람이 창의적 아이디어와 최종 감수를 더해 완성하는 식이다. IT 엔지니어라면 AI가 보여준 방대한 로그 분석 결과를 사람이 해석해 전략을 수립하는 일 등이 해당될 것이다. 결국 “인간이 최종 책임을 지는 증강된 업무”가 에이전트 시대의 표준 업무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 IT 종사자들은 평생학습의 자세로 AI를 자신의 도구로 길들이고, 새로운 전문성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그 방향으로 재설계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에이전트 시대에도 인간의 창의성과 판단력, 공감능력은 여전히 귀중할 것이며, 오히려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다만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AI에 대한 개방적 태도와 유연한 스킬 습득이 필수적일 것이다.
에이전트 시대, 새로운 대중문화의 서막
구글이 검색창을 ‘에이전트 창’으로 바꾸는 순간, 전 세계 최소 10억 명이 동시에 퍼스널 AI 에이전트를 얻게 된다. 이는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로 ‘모델 T’를 찍어내며 자동차를 특권층의 장난감에서 대중의 필수품으로 바꿔 놓은 사건에 필적한다. 이제 검색은 링크를 나열하는 도구를 넘어 사용자를 대신해 행동하는 주체적 인터페이스로 진화한다. 이에 따라 에이전트 기술은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모두의 일상 도구로 자리 잡고, 정보 탐색·업무 처리·의사 결정 프로세스가 에이전트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기술 소비의 주도권 역시 개발자에서 일반 사용자로 이동하는 거대한 변곡점이 도래한다.
구글 I/O 2025가 제시한 ‘에이전트 중심’ 패러다임은 단순한 UI 개편이 아니다. 전기 보급이나 컨베이어 벨트가 촉발한 산업문명 전환처럼, AI 에이전트의 보편화는 우리가 일하고 소통하고 여가를 보내는 방식을 근본부터 바꿀 잠재력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나만의 디지털 조력자와 생활하는 경험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방향으로 대중의 인지와 행동 양식을 변모시킬 것이다.
20세기 초 자동차가 마차 시대를 끝냈듯, 에이전트의 대중화는 새로운 대중문화를 탄생시킬 공산이 크다.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자동차를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었듯, 구글 같은 기업들은 AI 에이전트를 누구나 쉽게 쓰도록 생산·배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AI 에이전트는 전문가나 얼리어답터를 넘어, 스마트폰처럼 모두가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필수 도구가 될 것이다.
변화는 단순한 기술 보급을 넘어 사회 전반의 생활 방식과 문화에 깊숙이 파고든다. 자동차가 교통, 도시 구조, 여가, 인간관계를 바꿨듯, AI 에이전트가 보급되면 일·소통·여가·학습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새로운 문화가 형성된다. 각자는 자신의 AI 에이전트로 일상 업무를 처리하고, 친구나 동료의 에이전트와 협업하며, 에이전트 간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회적 규범과 트렌드가 등장할 것이다.
결국 AI 에이전트의 대량 생산과 보급은 인간과 AI가 함께 만드는 ‘에이전트 대중문화’라는 새 시대를 여는 촉매제가 된다. “누구나 하나쯤 갖고 다니는 나만의 에이전트”가 보편화되고, 에이전트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혁명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기술적 과제, 윤리적 고민, 사용자 적응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럼에도 구글 I/O 2025가 보여준 로드맵은 분명하다. 검색→AI 챗봇→다중모달 에이전트로 이어진 발전 궤적 끝에 ‘모두를 위한 AI 에이전트’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는 IT 업계 종사자에게 도전이자 기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물결 때 그랬듯, 변화의 방향을 읽고 한 발 앞서 대비하는 개인과 기업만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것이다. 에이전트 시대의 서막은 올랐다. 이제 혁신의 무대 위에서 인류와 AI 에이전트가 함께 만들어 갈 새로운 대중문화의 막이 오르고 있다.
참고자료
Everything Google Announced at I/O 2025
Google turns to nuclear to power AI data centres
Google Turns to Nuclear to Power Energy-Hungry Data Centers
Google I/O 2025: Betting Big On AI — Innovations And Challenges Ah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