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와 복소수의 등장: 수학적 정의와 역사

오늘날 허수라 불리는 개념은, 과거 수학자들에게 커다란 의문과 논쟁의 대상이었다. 허수란 간단히 말해 제곱하면 음수가 되는 수이다. 대표적으로 $i$는 $i^2=−1$을 만족하는 수로 정의되며, 이를 허수 단위라고 한다. 이 $i$를 이용해 모든 허수는 $bi$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데, $b$는 실수인 계수이다. 그리고 실수 $a$와 허수 부분 $bi$를 합하여 만든 $a+bi$ 꼴의 수를 복소수라고 부른다. 즉, 복소수는 실수 부분과 허수 부분을 한 쌍으로 가지는 새로운 숫자 체계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개념이 처음부터 순탄히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 치롤라모 카르다노는 3차 방정식 해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sqrt{-1}$과 같은 표현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카르다노는 자신의 저서 아르스 마그나에서 일시적으로 허수를 사용해 해를 구하는 방법을 제시했지만, 정작 본인은 이러한 수들을 “아무리 교묘해도 쓸모없는 것”이라고 평하며 그 실제 의미에 회의적이었다. 한편 같은 시대의 라파엘로 봄벨리는 이 “이상한” 수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1572년 봄벨리는 허수를 실제 수인 것처럼 조작해보는 과감한 시도를 통해, 겉보기에는 $\sqrt{-121}$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표현을 조합해도 결국 일관된 해를 얻을 수 있음을 보였다. 그는 허수를 마치 일반 수처럼 취급하는 연산 규칙을 제안했고, 이러한 통찰을 통해 당시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수에 논리적 일관성을 부여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수”라는 인식은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17세기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이러한 수들을 가리켜 처음 “상상적인 숫자”라는 뜻의 “허수”라고 이름 붙인 것도 이즈음이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저서 기하학(1637)에서 실수해를 “진실한 해”로 보는 반면, 허수해에 대해서는 “가상의 해”라 언급하며 현실성과 거리를 두었다. 이렇듯 초기의 많은 수학자들은 허수를 마치 수학적 궤변이나 편법 정도로 여겼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부득이 쓰는 기교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레온하르트 오일러를 비롯한 수학자들은 허수의 잠재력을 적극 탐구하기 시작했다. 오일러는 오늘날까지 사용하는 기호 $i$를 도입하여 $\sqrt{-1}$을 표준화했고, 비록 “이 수는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그럼에도 우리는 이 상상의 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계산에 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이는 허수를 수학적 도구로서 활용하는 데 실질적인 문제가 없다는 선언과 같았다. 더 나아가 오일러는 $e^{i\theta} = \cos\theta + i\sin\theta$ 라는 놀라운 공식(오일러의 공식)을 통해 허수가 실제 기하와 깊이 연결됨을 보여주었다. 이 공식은 허수를 이용해 복잡한 삼각함수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추상적인 $i$가 실제 각도와 길이 계산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였다.

19세기에 이르러 카를 가우스는 “상상적인”이라는 용어가 주는 오해를 지적하고, $a+bi$ 형태의 수들을 “복소수”라고 부르기를 제안했다. 가우스는 복소수가 갖는 수학적 완결성에 주목했는데, 그는 어떤 다항식 방정식이든 복소수를 통해 해를 구할 수 있다는 대수학의 기본 정리를 입증함으로써 복소수의 필연성을 증명했다. 실제로 $x^2 + 1 = 0$ 같은 간단한 방정식조차도 실수 범위에서는 해가 없지만 복소수 범위에서는 $x = i$ 와 $x = -i$ 라는 두 해를 갖는다. 이렇듯 복소수를 포함해야 비로소 모든 다항방정식에 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수 체계를 실수에서 복소수로 확장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뜻했다. 이후로 복소수는 수학계에서 완전히 정당한 대상이 되었고, 윌리엄 해밀턴 등이 복소수를 $(a, b)$라는 순서쌍으로 엄밀히 정의하는 등 논리적 기반도 확립되었다. 더 이상 허수는 ‘쓸모없는 환상’이 아니라, 수학의 지평을 넓혀 준 필수적인 개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켤레복소수: 기하학적 해석과 연산적 의미

복소수를 이해하는 데 있어 복소수의 켤레 개념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임의의 복소수 $z = a + bi$에 대해 허수 부분의 부호만 반대로 뒤집은 $a - bi$를 $z$의 켤레복소수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z = 3 + 4i$ 의 켤레는 $3 - 4i$ 이며, $5i$ 의 켤레는 $-5i$, 순수한 실수 $7$의 켤레는 그대로 $7$이다. 수식으로는 흔히 $z^⁎$ 또는 $\overline{z}$ 와 같이 별표나 윗줄을 붙여 켤레복소수를 나타낸다.

이 켤레 연산의 기하학적 의미는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이다. 복소수 $a+bi$ 는 평면상의 한 점 $(a, b)$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데 (복소 평면), 켤레복소수 a-bi는 바로 이 점을 실수축에 대해 대칭 이동한 결과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복소수 평면에서 허수 부분의 부호를 바꾸는 것은 좌표평면에서 점을 가로축을 거울삼아 반사시키는 효과와 같다. 이를테면 $3+4i$가 평면 위에서 $x$축 위 3, $y$축 위 4만큼 올라간 지점이라면, 그 켤레 $3-4i$ 는 $x$축 대칭인 $y=-4$ 지점에 놓인다. 이러한 대칭 관계는 복소수 체계의 아름다운 특징 중 하나로, 켤레 연산을 두 번 적용하면 $(a+bi)^⁎{}^⁎ = a+bi$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켤레복소수는 복소수 평면에서 “허수 부분의 부호반전”이라는 단순한 조작으로 얻어지는 쌍을 의미하며, 복소수 세계에 내재된 거울상 대칭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켤레복소수는 연산적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복소수 $z$ 와 그 켤레 $z^⁎$를 곱하면 흥미롭게도 항상 실수가 된다. 실제로 $(a+bi)(a-bi) = a^2 + b^2$로, 결과에서 $i$가 소거되고 $a^2 + b^2$ 같은 양수가 남는다. 이를 이용하면 복소수의 크기, 즉 절댓값을 구할 수 있는데, $ǀzǀ = \sqrt{z z^⁎} = \sqrt{a^2 + b^2}$ 로 정의되는 값이 바로 복소수 $z$ 의 크기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3+4i$ 의 경우 $3-4i$ 와 곱해서 $3^2+4^2 = 25$를 얻고, 그 제곱근인 $5$가 이 복소수의 크기이다. 이렇게 켤레를 활용하면 복소수의 실수화가 가능해져 여러 가지 계산에 응용된다. 분수 형태의 복소수를 다룰 때 분모에 켤레를 곱해 유리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frac{1}{2+i}$ 를 계산할 때 분모의 켤레 $2-i$로 위아래를 곱해 $\frac{2-i}{(2+i)(2-i)} = \frac{2-i}{5}$ 와 같이 허수가 분모에 남지 않도록 만드는 방식은 고등학교 수학에서도 접하는 켤레의 활용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실수 계수를 가진 다항 방정식의 복소근들은 반드시 켤레쌍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계수가 모두 실수인 2차방정식 $x^2 + 2x + 5 = 0$의 근은 $x = -1 + 2i$ 와 $x = -1 - 2i$ 처럼 서로 켤레 관계에 있는 복소수 둘로 구성된다. 이는 방정식의 계수에 허수가 전혀 없어도, 해를 구하면 허수가 등장할 수 있음을 뜻하지만 동시에 그 허수부분이 정확히 상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하나의 복소근이 나타나면 그 거울상인 켤레복소근도 함께 등장하여 전체 해집합이 실수 계수를 가진 현실적인 문제를 푸는 답을 제시하여 허와 실이 양립할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켤레복소수 개념은 복소수 체계의 대칭성과 조화로움을 유지시키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켤레복소수의 실제 활용 사례: 전자공학, 신호처리, 양자역학

수학적으로 형식 정의된 개념인 허수와 켤레복소수는, 의외로 우리의 현실 세계 곳곳에서 실용적인 도구로 활약하고 있다. 추상적인 듯 보이는 이 개념들이 어떻게 실제 응용에 쓰이는지, 몇 가지 분야를 통해 살펴보자.

1) 전자공학 분야: 전기회로 해석과 통신공학에서는 복소수가 핵심 언어로 쓰인다. 교류 회로의 전압과 전류는 시간에 따라 진동하는 신호인데, 이를 분석하기 위해 페이저(phasor)라고 하는 복소수 표현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교류 전압 $V(t) = V_0 \cos(\omega t + \phi)$ 는 복소수 $V = V_0 e^{i\phi}$ 로 표현되고, 전류도 마찬가지로 복소수 평면상의 회전 벡터로 나타낼 수 있다. 이때 회로 소자의 임피던스(저항, 리액턴스 등 종합한 값)도 복소수로 나타나는데, 전압 $V$를 임피던스 $Z$로 나누면 복소수 전류 $I = V/Z$ 를 얻는다. 이러한 계산에서 켤레복소수는 무엇에 쓰일까? 대표적인 예로 교류 전력 계산을 들 수 있다. 교류회로의 복소 전력 $S$는 $S = V I^⁎$ 로 정의되는데, 여기서 $I^⁎$ 는 전류의 켤레복소수이다. 이 식을 전개하면 $S = P + iQ$로 분해되며, 실수 부분 $P = \text{Re}(S)$는 실제 전달되는 유효전력을, 허수 부분 $Q = \text{Im}(S)$ 는 코일이나 축전기에 저장되었다 되돌아오는 무효전력을 의미한다. 왜 하필 켤레를 쓰는가 하면, 그래야 전력의 실수 성분이 올바르게 계산되고 허수 성분은 별도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즉 $V$와 $I$ 사이의 위상차 정보를 반영하려면 $I$ 의 위상을 반대로 뒤집은 $I^⁎$ 과 곱해야 평균전력이 계산된다. 이렇듯 켤레복소수는 교류 회로 해석에서 전력의 크기와 손실을 구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나아가 임피던스 정합 문제에서도 켤레가 등장하는데, 회로에서 최대의 전력이 부하로 전달되기 위한 조건이 “부하 임피던스 = 내부 임피던스의 켤레”라는 정리로 주어져 있다. 이는 부하와 공급쪽의 허수 성분 리액턴스가 서로 상쇄되어 에너지 손실 없이 전달되도록 만드는 조건이다. 현대의 통신 안테나 설계나 RF 공학에서도 바로 이 켤레 임피던스 정합 개념을 활용하여 신호 전송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2) 신호 처리 분야: 라디오, 영상, 음성 등 다양한 신호처리에도 복소수와 켤레가 널리 활용된다. 신호를 주파수 영역으로 변환하는 푸리에 변환을 예로 들어 보자. 시간 도메인의 실수 신호 (실제 음향 신호)를 푸리에 변환하면 일반적으로 복소수 값의 주파수 스펙트럼이 얻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실수 신호의 경우 양의 주파수 성분과 음의 주파수 성분이 서로 켤레 대칭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440Hz의 순음 신호를 변환하면 +440Hz 성분에 어떤 복소수 값 $X$ 가, -440Hz 성분에 정확히 그 켤레복소수 $X^⁎$ 가 나타난다. 이렇게 스펙트럼의 좌우가 복소 켤레로 대칭을 이루기 때문에 역변환했을 때 허수가 상쇄되고 실제 실수 신호가 복원된다. 결과적으로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은 실수 신호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켤레 대칭성이 깨진 복소 스펙트럼을 그대로 신호로 변환하면 허수 성분이 남아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신호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실재하는 파형을 다루기 위해서는 복소 표현을 쓰더라도 반드시 켤레 쌍으로 취급해야 한다. 신호처리 이론에서는 이 원리를 활용하여 불필요한 계산을 줄이기도 한다. 예컨대 실수 신호의 푸리에 변환은 절반 주파수 범위만 계산해도 나머지 절반은 자동으로 켤레복소수로 채워진다는 점을 이용해 알고리즘을 효율화한다. 이처럼 “허수 스펙트럼 + 켤레 스펙트럼 = 현실 신호”라는 구조는 신호처리 전반에서 기본으로 깔린 개념이다. 신호를 분석하는 다른 방법에서도 켤레는 등장한다. 상호 상관 함수나 필터링 연산을 수식으로 표현할 때 한 신호에 다른 신호의 켤레복소수를 곱해 적분하는 형태가 자주 보인다. 이는 두 신호 간 위상차를 정확히 추적하기 위한 것으로, 켤레를 씌워야 곱셈 결과가 의미 있는 실수값 평균으로 누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선 통신에서 수신 신호와 미리 알고 있는 기준 신호를 맞춰볼 때, 수신 신호에 기준 신호의 켤레를 곱해 합산하면 신호가 잘 맞춰 지는지(align)를 나타내는 상관도가 계산된다. 이 원리로 디지털 통신에서는 수신 데이터를 올바로 복원하거나, 위상 왜곡을 측정하여 보정한다. 또한 I/Q 신호라고 부르는 복소수 형태의 직교 신호 표현도 켤레와 함께 쓰인다. 이는 하나의 전파 신호를 $i$와 $−i$ 성분 두 개로 분리해 가져오는 방식인데, 이렇게 하면 신호의 위상 정보를 손쉽게 다룰 수 있어 현대 통신시스템의 QAM, OFDM 등의 기법에 응용된다. 이 경우에도 잡음을 제거하거나 신호를 합성할 때 켤레 연산은 기본 도구가 된다. 한마디로, 복소수의 켤레는 신호의 숨은 정보(위상 등)를 끄집어내고 물리적으로 실현 가능한 형태로 유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3) 양자역학 분야: 가장 추상적인 과학으로 여겨지는 양자 물리에서도, 허수 단위 $i$와 켤레복소수는 빼놓을 수 없다.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인 파동함수 $\psi$는 일반적으로 복소수 값으로 주어진다. 전자의 위치나 기타 양자 상태를 나타내는 이 파동함수는 $\psi(x, t) = A e^{i\theta}$ 처럼 복소 지수를 포함하는 형태로 기술되며, 시간에 따라 복소수 공간에서 진동한다. 하지만 실제로 관측 가능한 것은 이 $\psi$ 그 자체가 아니라 $ǀ\psiǀ^2$, 즉 파동함수의 절댓값 제곱이다. 절댓값 제곱 $ǀ\psiǀ^2 = \psi \psi^⁎$에는 파동함수와 그 켤레복소수가 곱해지는데, 이 결과는 항상 실수이며 0 이상인 값만 나타난다. 물리적으로 $ǀ\psiǀ^2$ 는 해당 양자 상태에서 입자를 특정 위치에서 발견할 확률 밀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psi(x) = 0.3 + 0.4i$ 라면 $ǀ\psiǀ^2 = 0.3^2 + 0.4^2 = 0.25$ 로, 어떤 단위 구간에서 그 입자를 발견할 확률이 25%라는 식이다. 이렇게 반드시 $\psi$에 $\psi^⁎$를 곱해 확률을 계산하는 원리를 본 해석(Born’s interpretation)이라고 부르며, 이는 양자역학의 기본 가정 중 하나이다. 왜 하필 곱해서 절댓값 제곱을 취할까? 그 이유는 자연계의 측정량은 실수이어야 하고, 복소수인 파동함수 자체는 직접 관측되지 않는 확률 진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켤레를 곱해주면 복소수가 주는 위상 정보는 사라지고 오직 크기에 해당하는 실수 정보만 남게 된다. 이는 마치 우리가 두 개의 복소수 스펙트럼을 더해 실수 신호를 얻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상상의 파동을 현실의 확률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켤레복소수가 수행하는 셈이다.

양자역학에서 켤레복소수의 역할은 이뿐만이 아니다. 양자 체계의 시간에 따른 변화는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주어지는데, 이 미분방정식 자체에 $i$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입자에 대한 시간 의존 슈뢰딩거 방정식은 $\hbar \frac{\partial}{\partial t} \psi(x,t) = \hat{H} \psi(x,t)$ 꼴이다. 여기서 좌변에 $i$가 곱해져 있기 때문에, 해인 $\psi(x,t)$ 는 본질적으로 $e^{iEt/\hbar}$ 같은 복소 지수 함수 형태를 띠게 된다. 이 복소 해를 물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 역시 켤레를 곱하는 절댓값 제곱이 필요하며, 그렇게 얻은 $ǀ\psiǀ^2$ 가 시간에 따라 보존되는(확률의 총합이 1로 유지되는) 것도 켤레를 취한 덕에 가능한 일이다. 양자역학의 형식체계인 브라-켓 표기법에서도 켤레 개념이 숨어 있다. 상태 $ǀ\psi\rangle$의 에르미트 켤레인 $\langle \psiǀ$ 는 $\psi$ 의 복소 켤레에 해당하며, 내적 $\langle\phiǀ\psi\rangle$는 사실상 $\phi^⁎ \psi$ 적분으로 정의된다. 이때 결과가 0이 아니면 두 상태가 겹친다는 의미이고, 0이면 직교함을 뜻하는데, 모든 것은 켤레복소수를 취해 얻는 실수값으로 판정된다. 결국 양자 세계에서의 확률 계산, 관측값의 평균 계산 등은 모두 켤레복소수를 활용해 추상적인 복소 확률진폭을 현실의 수치로 변환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허수 단위가 양자현상을 기술하는 데 필수적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켤레복소수가 없었다면 양자역학의 예측을 현실에 연결시키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임을 시사한다.

요약하면, 전자공학에서의 전력 계산과 회로 최적화, 신호처리에서의 주파수 해석과 통신, 그리고 양자역학에서의 확률 해석 등 다양한 현대 과학기술 분야에서 허수와 켤레복소수는 없어서는 안 될 실용적인 도구가 되었다. 이는 한때 “쓸모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허수가 오히려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으로 자리 잡은 역설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쓸모없는 상상의 수”라는 오해

허수라는 이름 때문에, 그리고 한 눈에 보이는 현실적 형태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종종 “허수는 쓸모없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생기곤 한다. 이러한 의구심은 현대의 일부 비전공자들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편견이었다. 카르다노가 허수를 두고 “교묘하지만 무익하다”고 한 것에서부터, 데카르트가 굳이 “실제적이지 않은 가공의 수”라는 뉘앙스를 담아 “imaginaire”라고 이름 붙인 것까지, 초기에는 수학자들조차 그 유용성에 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19세기 이후로 이러한 견해는 완전히 뒤집혔다. 오히려 “허수는 실수만큼이나 확고한 존재감을 지니며, 자연 세계를 기술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첫째로, 논리의 완결성 측면에서 허수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실수 체계만으로는 $x^2 + 1 = 0$ 같은 간단한 방정식도 풀 수 없지만, 허수를 도입하면 해를 찾을 수 있다. 복소수의 도입으로 수학의 해결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이다. 다항 방정식 해법의 맥락에서 허수는 모순을 일으키는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모순을 해결하는 열쇠였다. 19세기 가우스와 코시 등이 복소수를 적극 활용하면서 해석학과 대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은, 허수가 수학적 사고의 지평을 넓혔음을 방증한다. 현대 수학에서 복소해석학은 매우 중요한 분야인데, 실수로만 정의된 문제도 복소평면으로 확장해 해석하면 깔끔히 풀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적분 계산에서의 Residue 기법으로, 실수축상의 어려운 적분을 복소평면 경로상의 쉬운 적분으로 바꿔 계산하는 강력한 도구다. 이처럼 허수 개념은 수학 내부에서 새로운 통찰과 기교를 제공했고, 이는 충분히 “유용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둘째로, 실제 적용과 효율성 측면에서 허수는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다. 앞서 살펴본 전자공학이나 신호처리의 예를 떠올려보자. 만약 우리가 허수를 전혀 쓰지 않고 순수한 실수만으로 교류 회로나 통신 신호를 분석해야 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복잡한 미분방정식을 일일이 풀거나, 삼각함수의 합차 공식들을 끊임없이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복소수와 $e^{i\theta}$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 회전하는 진동 현상을 한눈에 표현할 수 있고 계산도 훨씬 간단해진다. 실제로 엔지니어들은 시간에 따라 진동하는 물리량을 다룰 때 복소 지수를 사용하여 문제를 대폭 단순화한다. 오일러의 공식은 $\cos\theta$ 와 $\sin\theta$ 로 분리되어 다루던 진동을 $e^{i\theta}$ 단일 개념으로 합쳐주어, 미분이나 적분 같은 연산을 쉽게 만든다. 예를 들어 교류회로의 미분방정식도 $e^{i\omega t}$ 로 가정하면 대수방정식으로 바뀌어버린다. 이는 계산의 혁신적 간소화이며, 허수를 도입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통신 이론에서도 마찬가지로, 두 개의 직교 성분을 갖는 신호를 복소수 한 개로 취급함으로써 수식이 깔끔해지고 직관적인 해석이 가능해졌다. 한마디로 허수를 쓰지 않으면 너무 복잡해질 일들을, 허수를 도입함으로써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실용성 면에서 허수가 쓸모없다는 말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허수는 현실의 문제를 푸는 가장 경제적이고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셋째로, 과학적 진리와의 부합성 측면에서 허수는 자연 현상을 정확히 기술하는 데 필요하다. 이는 앞서 양자역학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양자세계의 현상을 서술하려면 복소수 없이는 불가능하며, 방정식에 허수가 들어가야 비로소 실제 실험 결과와 맞아떨어진다. 전자기학에서도 복소수는 암암리에 쓰인다. 맥스웰 방정식 자체는 실수 형태이지만, 전자기파 해를 구할 때 복소 표현을 쓰면 해의 구조가 명확해지고 계산이 편리해진다. 실제로 공학자들은 전자기파를 $E = E_0 e^{i(kx - \omega t)}$ 같은 복소 평면파로 가정한 뒤, 마지막에 결과의 실수부분만 취하는 식으로 문제를 푼다. 이는 허수가 중간 계산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 예측이 정확함을 뜻한다. 자연이 허수를 필요로 한다는 표현까지 가능할 정도로, 현대 과학 이론들에서 허수는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허수를 무용지물로 여기는 것은 현대 과학의 실상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허수”라는 명칭의 오해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실 “허수”라는 단어 때문에 심리적 거부감이 들기 쉽다. 마치 현실에 없는 거짓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명칭은 역사의 산물일 뿐, 허수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허수 $i$는 거짓이 아니라 정확하게 정의된 수학적 객체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0이나 음수도 한때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개념이지만, 지금은 당연한 숫자로 쓰이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허수도 이제는 실수와 대등한 자격을 갖춘 숫자이며, 다만 2차원 평면에서 표현되는 숫자일 뿐이다. 허수를 색안경 끼고 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허수가 논리적으로도, 응용적으로도 그만큼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상상의 산물처럼 보였던 수가 알고 보면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의 일부였던 셈이다.

추상과 현실을 잇는 다리: 허수와 켤레의 철학적 의미

허수와 복소수의 켤레 개념이 지닌 의미는 단지 수학과 과학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추상과 현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성찰하게 하는 철학적 함의도 품고 있다. 수학자 라이프니츠는 18세기 초에 허수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비유를 남겼다. 그는 “허수는 신성한 지성의 정교하고 훌륭한 재료이며,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놓인 양서류와 같다”고 평했다. 한마디의 찬사 속에 담긴 이 비유는, 허수가 현실과 순수 개념의 경계선상에 놓인 독특한 대상임을 시사한다. 양서류는 물과 뭍이라는 두 세계를 오가며 살아가는 생물인데, 허수도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세계인 현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인 추상을 넘나드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개념이지만, 그것이 다시 현실 세계를 설명하는 데 쓰이고 있으니, 가히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걸친 특이한 존재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허수와 복소수의 등장은 수학의 추상성이 어떻게 현실과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공한다. 수학자들이 필요에 의해 도입한 추상 개념이 나중에 실제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데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20세기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는 이를 두고 “수학의 부당할 정도로 놀라운 효용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복소수는 그 대표적 사례다. 사람들은 “-1의 제곱근”이라는 상상을 통해 복소수를 만들었고, 처음에는 그것이 실체가 없는 공상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상상의 산물이 전기, 자기, 양자 상태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을 정확히 잡아내는 언어가 되었다. 이는 마치 인간의 순전한 상상이 자연의 밑바닥에 깔린 진리를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다른 관점에서는, 복소수가 유용하게 쓰이도록 세상을 해석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주도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복소수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자연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허수 개념이 현실과 무관한 공상이 아님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철학적으로, 허수는 우리가 “존재한다”고 부르는 것의 범위를 넓혀준다.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추상적 개념도 인간의 인식과 논리를 통해 일정한 실재성을 획득한다. 수학에서 말하는 존재는 물질적인 존재와 다를지 모르지만, 그 나름의 일관된 세계를 이룬다. 복소수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자족적인 논리를 갖춘 하나의 우주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렇게 만들어진 추상적 우주가 우리의 물리적 우주에 접합되는 지점들이 있다. 허수 $i$ 가 전자기파의 방정식에 등장하고, 켤레복소수가 확률을 계산하는 공식에 나타나는 순간, 추상과 현실의 두 세계는 교차한다. 이는 마치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인 거울 속에 현실이 비춰지는 양상이며, 켤레는 그 거울상의 상을 다시 현실로 돌려놓는 움직임 같다.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 어떻게 이처럼 현실을 꿰뚫을 수 있는 걸까? 우리의 상상력과 논리가 현실 세계의 깊은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일까?

허수와 켤레 개념에 담긴 교훈은, 추상적인 것도 충분히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허수를 도입한 수학자들은 그것이 실제 쓸모를 가질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논리의 필요에 따라 상상의 수를 받아들였다. 결국 그 상상의 산물이 수학과 과학 전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는 인간 이성이 만들어낸 이상이 현실의 진리를 포착해가는 과정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또한 “허수”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이름이나 직관에 반한다고 해서 섣불리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시사한다. 오늘의 관점에서 허수는 전혀 “허”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이름과 정반대로 풍성한 실재성을 지니는 개념이 되었다. 이러한 반전은 우리의 사고에 겸손함과 동시에 담대함을 요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지 말 것, 동시에 새로운 개념을 탐구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 것. 허수 $i$의 역사는 이 두 가지 교훈을 모두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복소수와 켤레를 통해 논리와 미학의 결합이라는 철학적 아름다움도 엿볼 수 있다. 복소수가 그리는 평면의 대칭성과 회전, 그리고 실수를 확장하여 완전성을 얻는 과정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e^{i\pi} + 1 = 0$이라는 오일러의 등식은 $i$ 와 $\pi$, 그리고 0과 $1$ 같은 기본 개념이 조화롭게 얽혀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추상 수학의 아름다움이 현실의 진리와 만나는 지점을 상징한다. 켤레복소수의 개념 또한 그 대칭적 균형으로 인해 자연의 조화와 닮아 있다. 결국 허수와 켤레는 인류의 지성이 만들어낸 논리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현실 세계의 질서와 조화를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다. 상상의 영역에서 태어난 개념이 현실 세계를 설명하고 예측하며, 다시금 우리의 철학적 사유를 자극하는 이 순환 구조 속에서, 우리는 인간 이성과 자연 질서의 깊은 연결을 느끼게 된다.

맺으며, 허수와 복소수의 켤레는 단순한 수학 용어 그 이상이다. 그것들은 추상과 현실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인간 지성의 창조력이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개념이다. 한때는 “쓸모없는 상상”으로 치부되었던 $i$ 가 이제는 과학기술의 언어가 되었고, 철학적 성찰의 소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식의 진보와 인식의 확장을 실감하게 된다. 허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곧 현실 너머까지 사고를 확장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보이는 것 뒤편에 숨은 진실과 만날 수 있다. 이렇듯 허수는 수학의 난해한 개념이 아니라, 상상의 힘이 현실을 밝히는 놀라운 사례로서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참고자료

A Brief History of Complex Numbers. Complex-Analysis.com

Real, imaginary, conjugate and modulus. Applying Maths in the Chemical & Biomolecular Sciences

Active, Reactive, Apparent and Complex Power. Electrical Technology (2013)

Complex number - Wikipedia

Gottfried W. Leibniz (1702), as quoted in Enes Gül, “Imaginary Numbers: An Amphibian Between Being and Non-Being,” Medium (Jan 13,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