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류의 귀환 — 하나의 무기로는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

1919년의 야구장과 2024년의 야구장은 전혀 다른 곳이다. 1919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선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베이브 루스로, 한 시즌 29개를 기록했다. 그는 동시에 그해 팀의 주축 선발 투수였다. 한 사람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같은 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서 홈런을 쳤다. 그것이 그 시대의 야구였다.
그 후 100년 동안, 이도류(투수와 타자 겸직)는 죽었다. 야구는 갈수록 정밀해졌고, 분업화되었으며, 효율의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한 사람이 두 가지를 다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로 여겨졌다. 모든 코치와 스카우트, 모든 야구 칼럼니스트가 같은 말을 했다. 투수에 집중하라. 타자에 집중하라. 둘 다 잘하려다 둘 다 망친다.
그런데 2024년 가을,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50홈런-50도루를 한 시즌에 동시에 달성했다. 100년 만에 야구계의 분업 구조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가장 극적인 형태로 일어난 일이었다.
50홈런만 친 선수는 역사상 여러 명이 있었다. 50도루만 한 선수도 매년 나온다. 한쪽만 잘하는 것은 위대하지만, 한 시즌에 둘을 동시에 50씩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야구계는 이를 신화의 영역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그 신화가 깨졌고, 팔꿈치 수술 후 회복 기간이라 한 해 지명타자로만 출전했던 오타니는 이듬해 다시 마운드에 올라 본격적인 투타겸업(이도류)으로 복귀했다. 분업과 전문화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 한 가지만 잘해서는 살아남지 못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했다는 신호. 이 신호는 산업과 경제의 영역에서 훨씬 더 무거운 의미로 울리고 있다.
분업의 100년, 그리고 다시 통합으로
야구의 분업화는 안정된 리그 구조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한 선수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각자가 한 가지 일만 극도로 잘하도록 만드는 것이 미국 야구가 100년에 걸쳐 완성한 시스템이었다. 투수는 던지는 데만, 타자는 치는 데만 집중한다. 야구장 내에서도 포지션은 점점 세분화되어 셋업맨, 클로저,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 대수비, 대주자가 따로 존재한다. 선수는 부품처럼 교체 가능하고, 팀은 부품들의 조합으로 굴러간다.
이런 시스템에서 이도류는 두 가지 이유로 비효율적이다. 첫째, 한 사람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면 부상 위험이 커진다. 둘째, 그 사람이 무너지면 팀 전체에 두 개의 구멍이 생긴다. 분업은 리스크 분산이고, 이도류는 리스크 집중이다. 그래서 100년 동안 야구계는 이도류를 거부해왔다. 단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이 분업화의 100년은 야구장 안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같은 시기에,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같은 흐름이 진행되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운동선수였다. 그저 ‘운동선수’였다. 야구도 했고, 축구도 했고, 씨름도 했고, 가장 잘하는 종목은 마라톤이었다고 한다. 그 시대에는 운동선수만으로 먹고살 수 없어서 다른 직업도 동시에 가졌다. 지금은 그런 직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축구선수, 야구선수, 마라톤선수, 농구선수, 골프선수, 펜싱선수처럼 세분화된 직업만 있을 뿐이다.
조금 더 길게 시간을 늘려보면, 이 분업화의 흐름은 인류 문명 전체의 방향이었음을 알 수 있다.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의 한 사람은 우리 중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냥과 채집, 도구 제작, 불 다루기, 집 짓기, 약초 식별, 천체 관측, 자녀 교육. 한 사람이 거의 모든 생존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10만 년 전의 한 사람은 1만 년 전의 한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줄이고, 대신 한 가지 일을 더 깊이 파고드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분업화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IT 산업에서 볼 수 있다. 초창기의 프로그래밍은 지금과 전혀 다른 일이었다. 천공카드에 구멍을 뚫고, 그 카드를 컴퓨터에 넣어 결과를 확인하는 오프라인 과정이 프로그래밍의 본질이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은 컴퓨터의 모든 것을 다뤄야 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엔지니어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스티브 워즈니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다루는 사람이었다. 그는 애플 1과 애플 2의 회로를 직접 설계했고, 그 위에서 돌아가는 BASIC 인터프리터도 직접 만들었다. 그 시대의 최고 엔지니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분업이 시작되었다. Frontend, Backend, DBA, System Engineer, DevOps, Data Engineer, ML Engineer, Security Engineer, QA Engineer. IT 산업이 발전할수록 직군은 세분화되었고, 각 직군 안에서도 다시 세분화되었다. Frontend 안에 React 개발자, Vue 개발자, 모바일 개발자가 따로 있고, Backend 안에 Java 개발자, Python 개발자, Go 개발자가 따로 있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던 시대는 옛이야기가 되었고, 풀스택 개발자라는 개념조차 점점 희귀해져 갔다.
그런데 AI 시대가 되면서, 이 세분화가 갑자기 경쟁력을 잃었다. AI가 Frontend 코드를 쓰고, Backend API를 만들고, 데이터베이스 스키마를 설계하고, 인프라 코드를 작성한다. 한 가지 직군에만 특화된 개발자는 AI에게 자신의 일을 통째로 빼앗기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반면 워즈니악처럼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고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엔지니어는 AI를 도구로 부려 한 사람이 과거 여러 명의 일을 해내고 있다. 분업의 정점에서 갑자기 통합이 가장 강한 경쟁력이 된 것이다.
패션이 돌고 돌듯, 인류의 일하는 방식도 합쳐졌다 나뉘어졌다 다시 합쳐지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히, 세분화되었던 것들이 다시 통합되어야 하는 시대다. 야구장에서 오타니가 보여준 것은 이 거대한 사이클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운동선수가 다시 “운동선수”가 되고, 프로그래머가 다시 “프로그래머”가 되며,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100년 만에 이도류가 돌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분업의 사이클이 끝나가는 시점에 가장 먼저 무너진 도미노였을 뿐이다.
다시 야구로 돌아오자. 오타니의 출현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은 있어도, 단 한 번만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를 본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움직이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MLB 드래프트에서 투타겸업 유망주의 지명이 사상 최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고, 1라운드 단골 손님이 되었다. 100년 동안 분업 외길을 걷던 구단들이 양쪽을 다 키워보려는 시도를 시작한 것이다. 분업화의 100년이 만든 정설은 무너지고 있다.
이 변화의 본질은 야구의 룰이 바뀐 것이 아니라, 야구를 둘러싼 환경의 가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분업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가정,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가정, 둘 다 잘할 수는 없다는 가정. 이 모든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이 가정의 붕괴는 야구장 바깥에서, 훨씬 더 큰 무대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분업 체계가 무너지는 자리에, 이도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도루만 잘하는 선수 — 한국 경제의 자화상
세계 경제도 100년 동안 분업화의 길을 걸어왔다.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비교우위론에 따라 각 나라는 자국이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수입했다. 한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일본은 정밀기계와 부품, 독일은 자동차와 기계, 미국은 금융과 첨단기술, 중국은 저가 제조업. 이 분업 체계가 세계화 시대의 기본 질서였다. 그리고 한국은 이 분업 체계의 우등생이었다.
작은 나라가 거대한 글로벌 공급망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 자리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전략. 그것이 한국식 성장의 공식이었다. 그러나 이 공식은 분업이라는 전제가 작동할 때만 유효하다. 모두가 자기 자리를 지키고, 무역이 자유롭게 흐르고, 동맹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만 유효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국 경제의 가장 정직한 자화상은 최근의 수출 통계에서 드러난다. 2026년 4월 한국의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과거 20% 안팎이던 비중이 불과 1~2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치솟은 것이다. 같은 달 가전, 철강, 이차전지, 자동차부품, 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 대부분이 1년 전보다 줄었다. 반도체 하나만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줄어들고 있다.
더 정직한 숫자는 GDP 통계에 있다. 같은 분기 한국의 제조업 생산은 수년 만의 최대폭 성장을 기록했지만, 반도체를 빼면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증가에 그쳤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라는 한 다리로 서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메모리 반도체라는 더 가는 한 다리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도루만 잘하는 선수의 모습이다. 도루는 야구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도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자산이며, 세계에서 한국을 대신할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 그러나 도루만 잘하는 선수는 도루가 중요하지 않은 경기에서는 무력하고, 다리를 다치는 순간 끝난다. 한국 경제는 메모리 반도체라는 빠른 다리에 의존하고 있고, 이 다리가 다치는 순간, 즉 메모리 사이클이 꺾이거나, 중국의 메모리 굴기가 결실을 맺거나, 지정학적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가 겹친다. 한국의 인구 구조다.
현재 한국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30대 후반에서 50대에 이르는 세대가 지난 30년간 축적한 경험과 기술에 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화학, 어떤 분야를 봐도 핵심 의사결정과 기술 노하우는 이 세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경험을 흡수해야 할 20-30대는 숫자도 적고, 산업 현장으로의 유입도 줄어들고 있다. 우수한 인재는 의대로, 공무원으로, 혹은 해외로 흘러간다. 제조업 현장은 공동화되고 있고, 엔지니어링 인력의 공급은 마르고 있다.
이는 단지 인구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지능 인구의 단절 문제다. 야구로 비유하면, 베테랑 선수가 은퇴하기 전에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해야 하는데, 후배가 아예 입단하지 않거나 다른 종목으로 옮겨가는 상황이다. 한 세대 후의 한국 산업은 누가 운영할 것인가. 메모리 반도체조차 누가 만들 것인가. 이것은 그 자체로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다리에 가해지는 만성적인 부상이다. 도루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게 되어 가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이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스템 반도체를 키우려는 노력, 파운드리에 투자를 늘리려는 시도, 우주와 바이오로 산업 영역을 넓히려는 정책. 모두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그 속도는 느리고, 규모는 작다. 삼성 파운드리는 시장 1위 TSMC와 한 자릿수 점유율 대 70%대 점유율로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매년 벌어지고 있다. 우주항공 분야의 정부 R&D 예산은 메모리 반도체 한 회사의 분기 영업이익에도 못 미친다. 바이오 분야의 정책은 산발적이고, 부처별로 흩어져 있다.
한국은 자신이 도루만 잘하는 선수임을 알고 있다. 홈런을 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홈런을 치려면 새로운 근육이 필요한데, 그 근육을 키울 시간과 자원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도루를 더 잘하는 데 모든 자원을 투입하다 보면 홈런을 치는 능력은 영원히 키울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모든 베이스, 미국의 한쪽 다리
이 시점에서 두 거인의 풍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의 풍경은 충격적이다. 1950년대에 미국 민간 부문 일자리의 약 35%를 차지했던 제조업은 현재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자동차의 본고장 디트로이트는 폐허에 가깝고, 철강의 도시 피츠버그는 의료 도시로 변신했다. 한때 세계의 공장이었던 미국이, 지금은 자국 군대에 보급할 무기 부품조차 해외에 의존하는 상황이 되었다. 항공모함을 운영하는 나라가 그 항공모함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지 못하는 시대다.
이것은 미국이 분업화 게임에서 승리자였기 때문에 일어난 역설이다. 미국은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영역인 금융, 소프트웨어, 첨단 연구에 집중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업은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에 외주를 주었다. 이 전략은 미국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했지만, 미국 경제 전체로는 중요한 능력을 잃게 만들었다.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하면 그것을 개선하고 혁신할 수도 없다. 제조 능력의 상실은 결국 혁신 능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관세 부과, 본국 회귀 유도, 보조금 지원으로 대표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부활 정책은 이 잃어버린 능력을 되찾으려는 시도다. 그러나 70년에 걸쳐 사라진 산업 생태계가 단기간에 복원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 경제학자의 견해다. 공장은 지을 수 있어도 그 공장을 운영할 숙련 노동자는 없고, 부품 공급망은 끊어진 채다. 미국은 메이저리그에서 5번 타자만 키워온 팀이다. 이제 와서 투수와 1번 타자를 다시 만들어야 하지만, 이미 그 자리는 다른 팀들이 차지했다.
중국의 풍경은 정반대다. 2015년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제조 2025’는 10대 핵심 산업에서 중국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산업정책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놀랍다. 중국 고속철 차량 제조사 CRRC는 세계 철도차량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다. 신에너지 자동차는 중국 내수의 대부분을 자국 기업이 공급하고, 부품의 대다수가 국산화되었다. 초고압직류송전 산업에서는 세계 시장의 압도적 다수를 장악했다. 5G 통신, 드론,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리튬이온 배터리. 거의 모든 신산업에서 중국은 선두 또는 선두급에 올랐다.
중국의 약점도 분명히 있다. 첨단 반도체 리소그래피 장비, 고급 의료기기, 바이오의약 분야에서는 여전히 해외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이런 약점들은 절대적인 약점이 아니라 상대적인 시간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국 자체의 평가다. 중국은 모든 산업, 모든 베이스를 다 돌고 있는 선수다. 어떤 베이스에서는 빠르고, 어떤 베이스에서는 좀 느리지만, 어느 한 베이스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중국의 정치 구조에 있다. 권위주의 국가는 시장의 단기 효율보다 국가의 장기 전략을 우선시할 수 있다. 적자가 나도 보조금을 쏟아부어 산업을 유지하고, 시장이 필요로 하지 않는 분야도 미리 키워둔다. 신에너지차 업계가 치열한 가격 전쟁으로 적자에 빠져도, 정부는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효율 측면에서는 비합리적이지만, 다극화 시대의 국가 안보 측면에서는 결정적인 이점이 된다.
세계화 시대의 분업 체계에서는 한 가지만 잘해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디에 의존해도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극화 시대, 즉 어디에 기대는 것이 위험해진 시대에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이 사실을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국가다. 그리고 이 전략은 지정학적 안정성 측면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격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중국이 모든 것을 자국 안에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한쪽 다리인 첨단 산업과 금융은 여전히 세계 최고지만, 다른 쪽 다리인 제조업은 사실상 잃어버렸다. 이도류로 비유하면, 미국은 한때 투수와 타자 양쪽에서 최고였다가 지금은 투수에 전념한 선수다. 그것도 부상 누적으로 점차 약해지는 투수다. 트럼프의 정책은 이 한쪽 다리를 다시 키우려는 시도지만, 한 번 위축된 근육을 다시 만드는 것은 새로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
이 두 풍경 사이에 한국이 있다. 한국은 미국형도 중국형도 아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자원도 부족하며, 인구도 줄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게는 양극단이 모두 위험하다. 중국처럼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미국처럼 한쪽에 올인한 것은 이미 위험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은 중국의 광대함과 미국의 첨단성 사이에서 자기만의 이도류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앞으로 한 세대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개인도 회사도 국가도, 이도류가 되어야 한다
오타니의 50-50과 투타겸업이 던지는 메시지는, 이 시대에는 이도류가 필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야구장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개인의 커리어, 회사의 사업 구조, 국가의 산업 정책. 모든 층위에서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개인의 차원에서, 한 가지 직무 능력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AI가 사무직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지금, 한 가지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그 분야가 사라지면 자신도 사라진다는 뜻이 된다. 한 가지 깊이 있는 전문성과 함께 두세 가지 인접 능력을 갖춘 멀티형 인간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변호사이면서 데이터 분석을 할 줄 아는 사람, 의사이면서 AI 모델을 이해하는 사람, 개발자이면서 사업을 설계할 줄 아는 사람. 한 가지로는 부족하고, 두세 가지가 표준이 되어야 한다.
회사의 차원에서, 한 가지 수익원에 의존하는 사업 구조는 그 수익원이 흔들리는 순간 회사 전체가 흔들린다. 단일 제품, 단일 고객, 단일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사업 단위가 서로 다른 사이클로 움직이도록 다각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리스크 관리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다만, 다각화는 잘못하면 모든 사업에서 평범해지는 함정에 빠진다. 그래서 좋은 다각화는 핵심 역량을 중심으로 인접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형태여야 한다. 오타니가 야구라는 한 종목 안에서 투타를 겸한 것처럼, 회사도 자신의 핵심 역량을 중심으로 두세 개의 사업 기둥을 동시에 키워야 한다.
국가의 차원에서는 이야기가 더 복잡하지만 원리는 같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라는 한 다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동시에, 다른 다리들도 키워야 한다.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는 첫 번째 새로운 다리다. 우주는 두 번째다. 바이오는 세 번째다. 이 세 영역 모두 지금은 시작 단계지만, 세 영역 모두 한국이 진입할 자격은 충분하다. 인재가 있고, 자본이 있고, 일정 수준의 기술 기반이 있다. 무엇보다 절박함이 있다.
문제는 의지와 자원 배분이다. 한국이 진정한 이도류 국가가 되려면, 메모리 반도체에 들어가는 노력 못지않은 규모의 자원과 시간이 새로운 산업에 투입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예산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추진되는 한 세대 단위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권위주의 국가가 유리한 이유가 다시 부각된다. 중국은 결정하고, 자원을 모으고, 적자를 감수하며 10년 단위로 산업을 키운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고, 적자 사업은 시장의 압박으로 정리된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한국이 권위주의로 갈 수도 없고, 가서도 안 된다. 그러나 산업 정책 영역에서는 정권을 초월한 장기 합의와 일관된 자원 투입이 절실하다. 일본의 통상산업성이 전후 수십 년간 했던 역할, 대만이 반도체 산업에 일관되게 투자해 TSMC라는 거인을 키워낸 방식. 이런 모델을 한국식으로 변용해야 한다. 시장의 단기 효율과 국가의 장기 전략 사이에서 한국식 균형점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한국형 이도류의 핵심이다.
회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다각화되어 있지만, 그 다각화의 깊이가 부족하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디스플레이, 가전, 통신을 모두 한다. 그러나 메모리를 빼면 압도적 1위 사업이 거의 없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SK는 통신과 화학과 반도체와 바이오를 모두 한다지만, 각각이 충분히 강한가? 다각화의 외형은 갖췄지만, 오타니가 투수와 타자 양쪽 모두에서 정상급 성적을 내는 것 같은 진정한 이도류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도류는 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둘 다 잘하려다 둘 다 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100년 동안 야구계가 이도류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분업의 시대가 끝나고 통합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이도류가 어렵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도류를 하지 않을 때의 위험은 훨씬 더 커졌다. 한 가지만 잘해도 안전했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한 가지만 잘하면 그 한 가지가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분업이 안정을 의미하던 시대에서, 분업이 위험을 의미하는 시대로 넘어왔다.
오타니라는 한 명의 천재는 100년에 한 번 나올지 모르지만, 이도류라는 흐름은 100년에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이 시대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그가 보여준 길을 따라 더 많은 이도류 선수가, 더 많은 이도류 회사가, 더 많은 이도류 국가가 나와야 한다. 한국이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는지, 메모리 반도체라는 강력한 도루 능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시스템 반도체와 우주와 바이오라는 새로운 홈런 능력을 키울 수 있는지가 앞으로 한 세대 한국 경제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도루만 잘하는 선수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투수와 타자를 모두 정상급으로 해내는 이도류 국가가 될 것인가? 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지금이 분기점이다.
분업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모두가 두 가지 무기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야구장에서, 회사에서, 국가에서. 이것이 오타니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