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압도 — 다시 모델을 만져야 하는 이유

1988년 9월, 서울 잠실 메인스타디움에서 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다. 굴렁쇠 소년이 그라운드를 굴러가는 그 순간을 전 세계 카메라가 잡아냈다. 그 카메라 대부분은 일본제였다. 도쿄와 오사카에서 만든 캠코더가 서울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기록했고, 관중석에 앉은 외국 관광객들의 손목에는 세이코 시계가, 가방 안에는 소니 워크맨이 들어 있었다. 거리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일본제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재생됐고, 호텔 객실의 텔레비전은 도시바와 샤프가 만들었다. 일본은 세계 전자제품 시장의 정점에 서 있었고, 그 정점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같은 해 한국의 삼성전자는 4메가비트 D램 시제품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일본 회사들이 이미 양산하던 제품이고 한국 회사로서는 후발 진입이었다. 그 시기 세계 D램 시장의 약 80퍼센트는 일본이 차지했고, 도시바와 NEC와 히타치는 메모리 왕국을 세운 상태였다. 미국 인텔이 일본의 공세에 밀려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한 직후였다. 일본조차도 이기지 못한 미국 회사들이 떠난 시장에 한국이 들어간다는 결정은 누가 봐도 무모해 보였다. 그 시기 삼성 D램 사업부는 누적 적자에 시달렸고, 어떤 합리적인 경영 컨설턴트도 그 결정을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합리적인 길은 일본 회사의 OEM 하청을 받거나 가전 조립에 머무는 것이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구도는 완전히 뒤집혔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는 키오시아라는 새 이름으로 미국과 일본 자본에 팔려 나갔다. NEC와 히타치가 합쳤던 엘피다는 파산 후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됐다. 무모해 보이던 도전이 결국 결과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이 풍경을 떠올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 AI라는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 내는 구도가 1988년의 그것과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 한국은 도전자였고 지금 한국은 도전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무거운 차이는 그때와 달리 지금 한국에는 무모함을 무모하다고 비웃는 분위기조차 강해졌다는 점이다. 합리적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는 응용이라는 안전한 영역에서만 박터지게 싸우고 있고, 그 영역 위에 군림하는 모델은 미국 회사들의 차지로 그냥 내어주고 있다. 그 격차는 단순한 기술 격차가 아니다. 그보다 더 무겁고 끈끈한 무엇이 이미 시장 전체를 덮고 있고, 이 글은 그것을 브랜드의 압도라고 부르려 한다.
격차는 어디에서 벌어지는가
AI가 격차를 좁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글을 못 쓰던 사람이 글을 쓰고, 코드를 모르던 사람이 앱을 만들고, 그림을 못 그리던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 누구나 AI라는 동일한 도구를 갖게 되니 능력의 평준화가 일어난다는 식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신입과 지방 중소기업의 마케터가 비슷한 결과물을 내는 시대가 됐다는 이야기는 이미 흔하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한 사람의 능력 곡선이 도구의 도움으로 완만해지고 있고, 정보 접근의 불평등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AI의 사용자 측면에서만 그렇다. AI라는 산업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격차는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
격차는 두 갈래로 나뉘어 움직인다. 한 갈래는 사용자 측에서의 격차다. 이 갈래에서는 AI가 격차를 좁히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누구나 같은 모델을 쓰고, 같은 도구로 같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영어를 못해도 영어로 글을 쓰고, 디자인을 배운 적 없어도 디자인을 한다. 능력의 외형적 격차가 좁아진다.
또 한 갈래는 공급자 측의 격차다. AI 모델을 만들고 인프라를 운영하는 쪽이다. 이 갈래에서는 격차가 좁아지기는커녕 천문학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GPT와 Claude와 Gemini를 만드는 회사들이 한 해 데이터센터에 쏟아붓는 자본은 수백억 달러 단위다. 한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들어가는 GPU 시간만 따져도 작은 나라의 국가 IT 예산을 넘어선다. 이 자본 게임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 되어 가고 있다. 한 회사가 1년에 쓰는 컴퓨팅 비용이 어지간한 나라의 1년 정부 예산과 비슷하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니라 실제다.
문제는 이 두 갈래의 격차가 같은 무게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용자 측의 격차가 좁아지는 것은 박수받을 일이지만, 그 이익이 분배되는 방식은 사용자 측의 격차 감소만큼 균등하지 않다. AI를 사용해 얻은 가치의 상당 부분은 결국 AI를 공급하는 회사로 흘러간다. 사용자는 월 20달러를 내고 AI를 쓰지만, 그 사용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시장의 과실은 모델 회사가 가져간다. 비유하자면 19세기 미국 서부 골드러시 시절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은 금을 캔 광부들이 아니라 곡괭이와 청바지를 팔던 사람들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AI 시대의 곡괭이가 바로 모델이다. 사용자는 매일 금을 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용량만큼 모델 회사의 매출이 늘어나는 구조다.
그래서 AI가 사용자 측의 격차를 좁힌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같은 시기에 공급자 측의 격차가 그보다 훨씬 큰 폭으로 벌어지고 있고, 그 격차에서 발생하는 부의 이동이 사용자 측의 평준화가 만들어 내는 이익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모두가 같은 도구를 쓰는 평등의 모습이지만, 그 평등의 이면에서 자본은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 우주가 엔트로피적으로 더 큰 무질서를 향해 흘러가듯이, AI가 만드는 격차의 총량은 좁아지는 쪽이 아니라 벌어지는 쪽으로 흘러간다. 사용자 측의 격차 감소는 그 흐름의 표면이고, 공급자 측의 격차 확대가 그 흐름의 본체다.
이 흐름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곳이 한국이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 빅테크의 그늘에서 자국 서비스로 시장을 지켜 왔다. 검색은 네이버, 메신저는 카카오, 쇼핑은 쿠팡과 네이버가 가져갔다. 미국 회사가 들어와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라는 두꺼운 벽을 넘지 못했다. 구글이 검색에서 점유율을 늘리지 못한 사례, 페이스북이 메신저 자리를 카카오톡에서 빼앗지 못한 사례, 아마존이 한국 이커머스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잡지 못한 사례 모두가 그 벽의 두께를 보여 줬다. 그러나 그 벽이 AI 앞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어진다. 한국어를 가장 잘하는 AI 모델이 한국 회사의 모델이 아니라 미국 회사의 모델이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영어 사용자 데이터로 학습한 모델이 한국어 사용자 데이터로만 학습한 모델보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사실은 한국 IT 업계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이 아닌 비밀이다.
이미 네이버는 쇼핑 회사로, 카카오는 메신저 회사로 굳어졌다. 한 시대를 주도하던 두 회사가 다음 시대의 핵심 기술에서 미국 회사들과 정면으로 경쟁하지 못하고 있다. 자체 모델을 발표하고는 있으나 그 모델로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매출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자국 시장에서도 자국 모델이 미국 모델을 압도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고, 어느 시점부터는 격차가 너무 커서 따라잡는다는 표현 자체가 부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한국 IT 업계는 응용 영역에서조차도 위태로워질 것이다. 모델 회사들이 응용까지 흡수하기 시작하면 그 흡수의 흐름을 막을 방법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무서운 사실 하나가 있다. AI 시대의 공급자 격차는 그저 기술 격차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더 끈끈하고 더 깊은 어떤 것, 곧 브랜드의 압도로 나타난다. 기술 격차는 시간이 흐르면 좁힐 수 있는 영역이지만, 브랜드의 압도는 한 번 자리 잡으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것은 그 두 번째 격차다.
미국 셋, 중국 다섯, 그리고 우리
지금 세계의 AI 모델 시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풍경은 단순하다. 미국 세 회사가 시장의 거의 전부를 잡고 있다. Anthropic, OpenAI, Google이다. 이 셋이 글로벌 사용자와 매출의 대부분을 가져간다. xAI와 Meta가 그 뒤를 따라가고는 있으나 점유율로 보면 한참 뒤다. xAI는 일론 머스크라는 개인 브랜드와 X 플랫폼이라는 채널을 갖고 있지만 모델 자체의 시장 인지도는 셋에 못 미친다. Meta는 Llama 시리즈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별도 전략을 펴고 있으나 직접적인 모델 사용자 시장에서 셋과 경쟁하지는 않는다. 프랑스의 Mistral은 유럽이 미국에 대항한 마지막 자존심으로 자주 거론되지만 시장 점유율은 통계에 잡힐까 말까 한 수준이다. 유명무실하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미국 외에는 중국이 있다. DeepSeek, Qwen, Kimi, Doubao, GLM으로 대표되는 중국 AI 회사들이 미국 셋의 뒤를 받친다. DeepSeek은 효율적 모델 학습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고, Qwen은 알리바바의 자원으로 빠르게 라인업을 갖췄고, Kimi의 모회사 Moonshot은 긴 컨텍스트 처리에서 강점을 보였다. Doubao는 ByteDance의 자본과 사용자 기반으로 자국 내에서 압도적인 사용량을 만들어 냈고, GLM은 칭화대 계열 자본으로 학술적 정밀함을 갖춰 왔다. 미국 엔비디아 GPU 수출 규제라는 무거운 족쇄를 차고 있음에도 이들 모델은 빠른 속도로 미국 모델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 효율성 측면에서는 일부 미국 모델을 이미 추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2~3년 안에 자체 GPU 생태계를 갖추게 되면 미국과 거의 같은 선상에서 경쟁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중국은 자국 시장 안에서 미국 모델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정책적 장벽 덕분에 자국 모델이 자라날 시간과 공간을 확보했다.
미국 셋과 중국 다섯, 그리고 그 사이에 빈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한국, 일본, 유럽, 인도, 동남아가 있다. 일본은 자체 모델 개발을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하고 OpenAI 일본 법인 같은 협력 모델로 방향을 틀었다. 한 시대 전자제품 왕국이었던 일본이 IT 시대에서 대부분의 서비스 소비국으로, 그리고 AI 시대에는 완전한 AI 모델 소비국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유럽은 Mistral에 자존심을 걸어 보았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다. 유럽연합 차원의 AI 규제는 강화되고 있지만 그 규제를 뒷받침할 자체 모델은 약하다. 인도는 자체 모델을 만들기보다 미국 모델을 인도식으로 쓰는 데 더 집중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자체 모델 발표는 이어지고 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그 모델이 인지되는 정도는 거의 없다. 자국 시장에서조차 자국 모델이 의사결정자의 첫 선택지에 오르지 못한다.
이 풍경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고객의 시선이다.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 대부분은 AI를 도입할 때 미국의 세 회사 외에는 후보군에도 올리지 않는다. 자국 모델이 미국 모델보다 한국어를 더 잘한다는 광고가 나와도 의사결정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결국 미국 모델을 선택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게 더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모델을 선택했다가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은 모델이 아니라 운영의 문제로 돌아가지만, 자국 모델을 선택했다가 일이 잘못되면 처음부터 그 선택 자체가 의심받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 논리의 무게를 알고 있다. 자국 모델이 충분히 좋은 성능을 보여 주어도 그 인식의 벽을 넘기는 어렵다. 한국의 어떤 대기업 CTO가 자체 모델 대신 미국 모델을 선택했다고 비판받은 사례가 있는가? 거의 없다. 그 비대칭이 곧 브랜드 압도의 다른 이름이다.
이것이 바로 브랜드의 압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성능 차이로 시장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브랜드의 무게가 의사결정을 좌우한다. 1988년 일본 소니가 만든 워크맨과 한국 회사가 만든 워크맨 비슷한 제품이 있었을 때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생각해 보면 충분하다. 가격이 비슷하면 거의 모두 소니를 골랐다. 한국 제품이 더 싸도 소니를 골랐다. 그 시기 일본 브랜드는 단순한 제조사 이름이 아니라 시대의 표준 그 자체였다. 일본 가전제품을 사는 것은 동시에 시대의 흐름에 맞춰 살고 있다는 신호였다. AI 시대의 미국 빅테크 브랜드가 지금 그 자리에 있다. GPT를 쓰는 회사라는 사실 자체가 그 회사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일하고 있다는 신호다. 자국 모델을 쓴다고 말하면 어딘가 뒤처져 보인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미국 셋과 중국 다섯이 시장을 잡고 있는 구도가 몇 년 후에는 더 고착화될 것이다. AI는 데이터를 통해 학습되고 학습된 데이터는 다시 서비스를 통해 누적된다. 더 많이 쓰는 모델일수록 더 좋아지고, 더 좋아진 모델일수록 더 많이 쓰인다. 이 선순환에 일찍 들어간 회사들은 갈수록 우위가 강해진다. 후발 주자는 그 선순환에 들어가는 길목 자체를 찾기 어렵다. 1980년대 일본 D램 회사들이 누리던 우위가 1990년대 후반 한국 회사들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한 이유는 한국 회사들이 그 선순환의 한 축인 메모리 표준 경쟁에 끝까지 매달렸기 때문이다. 만약 그 시기에 한국이 일본 표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머물렀다면 지금의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 5년, 10년이 흐른 뒤에는 자국 AI 모델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사라질 것이다. 지금 자국 검색엔진이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과 러시아 정도다. 자국 메신저가 있는 나라는 그보다 조금 더 많다. 그러나 자국 AI 모델은 그보다 훨씬 적은 나라에만 남을 것이다. 미국 셋과 중국 다섯, 그 외 한두 곳이 전부일 가능성이 높다. 그 사이에 한국이 있을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국 모델을 만드는 한국 회사들의 매출이 줄고 인력이 빠져나가는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10년 후에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한국 회사는 물론이고 엔지니어조차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인정이 다음 단계의 시작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응용 영역에서만 박터지게 싸우는 지금의 구도가 그대로 굳어진다. 인정하면 비로소 다른 길을 모색할 여지가 생긴다.
브랜드 압도라는 두 번째 무게
AI의 무서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초커스터마이징, 다른 하나는 초광역이다. 이 둘이 합쳐졌을 때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의 문법 자체가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짐의 자리에 모델 회사라는 새로운 권력이 들어선다.
초커스터마이징은 무엇인가? 기존 시대의 소프트웨어는 다수의 사용자를 위한 표준화된 도구였다. 한 회사가 만든 ERP와 CRM과 회계 소프트웨어는 수많은 회사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사용했다. 회사마다 업무 방식이 다르고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달랐지만, 소프트웨어는 그 차이를 모두 흡수하지 못했다. 차이를 흡수하기 위해 커스터마이징을 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대기업의 SAP 도입 프로젝트가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렀고, 그 비용은 대부분 표준 소프트웨어를 그 회사 방식에 맞추는 데 쓰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용자는 소프트웨어가 정해 놓은 방식에 맞춰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 회계 담당자는 회계 소프트웨어가 요구하는 절차에 자신의 일을 맞췄고, 영업 담당자는 CRM이 정한 항목에 자신의 영업 활동을 끼워 넣었다. SaaS는 그 흐름의 정점이었다. 표준화된 도구를 클라우드로 제공함으로써 비용을 낮추고 보급을 늘렸지만, 그 본질은 표준화였다.
AI는 그 표준화의 시대를 끝낸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자연어로 설명하면, AI가 그 사람의 방식에 맞는 도구를 즉석에서 만들어 준다. 같은 회계 업무를 처리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화면, 다른 워크플로, 다른 자동화를 가질 수 있다. 한 영업 담당자는 자신의 거래처 관리 패턴을 그대로 살린 도구를 쓰고, 다른 영업 담당자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도구를 쓴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사람마다 도구가 다른 시대가 열린다. 표준화된 소프트웨어가 사람을 맞추는 시대에서, 도구가 사람에게 맞추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것이 초커스터마이징이다. 과거에는 수백억 원이 들었던 일이 이제는 한 사람이 자연어 몇 마디로 해낼 수 있다.
초광역은 무엇인가? 기존 소프트웨어는 카테고리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회계 소프트웨어는 회계 일만 했고, 디자인 도구는 디자인 일만 했고, 코드 편집기는 코드 작업만 했다. 한 도구가 다른 영역을 침범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SaaS 회사들의 시장 지도를 그리면 각 카테고리별로 명확한 경계가 있었고, 각 회사는 자기 카테고리 안에서의 1등 자리를 두고 싸웠다. AI는 그 카테고리 경계를 무너뜨린다. 글을 쓰던 도구가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짜고 영상을 만들고 분석을 수행한다. 한 모델 위에서 거의 모든 종류의 작업이 일어난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도구를 선택할 때 카테고리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카테고리가 정해진 SaaS의 시대에서 카테고리가 없는 AI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것이 초광역이다.
이 두 특성을 가능하게 한 것이 머리로서의 LLM과 몸으로서의 에이전트다. LLM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고, 에이전트는 그 판단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머리만 있고 몸이 없던 초기 시절 LLM은 그저 대화 상대였지만, 에이전트가 결합되면서 LLM은 행동하는 주체로 변모했다. 머리와 몸이 갖춰지자 시장은 모델 그 자체의 성능 경쟁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서비스, 채널, 인프라를 누가 잡느냐의 경쟁으로 변모하고 있다. 모델이 동일 수준에 도달했다는 전제 위에서 어떤 채널로 사용자를 만나고 어떤 인프라로 안정성을 제공하느냐가 더 중요한 경쟁 축이 됐다.
여기서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응용 영역에서의 격차는 좁아지지만, 그 응용 위에 군림하는 모델과 인프라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응용 회사들은 모델 회사 위에서 빌려 쓰는 입장이고, 모델 회사는 응용 회사가 만든 시장의 과실을 함께 가져간다. 응용 회사가 사용자에게 청구하는 비용 중 상당 부분이 모델 회사로 흘러간다.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응용 회사의 매출도 늘어나지만 그 비례만큼 모델 회사의 매출도 늘어난다. 응용 회사는 모델 비용이라는 가변비를 영원히 안고 가야 한다.
더 무서운 것은 모델 회사가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응용 영역으로 내려와서 응용 회사들의 시장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한 시기 화려했던 AI 응용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의 핵심 기능이 모델 회사의 기본 기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업을 접고 있다. 글쓰기 보조 도구를 만들던 스타트업들은 ChatGPT 안에 비슷한 기능이 들어가면서 차별화 지점을 잃었다. 코드 보조 도구를 만들던 스타트업들은 모델 회사가 직접 코드 에이전트를 내놓으면서 직접 경쟁에 노출됐다. 검색 보조 도구, 문서 요약 도구, 회의록 도구, 번역 도구가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모델 회사가 새 기능을 발표할 때마다 그 기능을 핵심으로 삼던 응용 스타트업 수십 곳이 사라진다.
이 구도에서 모델 회사들이 가지는 브랜드의 무게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진다. 사용자가 AI 도구를 처음 쓸 때 어떤 회사의 AI를 쓰는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그 AI 도구가 어떤 모델 위에서 돌아가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응용 회사들이 자신의 제품을 광고할 때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문구가 OpenAI의 GPT 기반, Anthropic의 Claude 기반, Google의 Gemini 기반이다. 모델 회사의 브랜드를 빌리지 않고 자체 기술만으로 광고하는 응용 회사는 거의 없다. 응용 회사의 신뢰가 모델 회사의 브랜드에 묶여 있다는 뜻이다. 이는 1990년대 초 컴퓨터 광고에 인텔 인사이드라는 문구가 들어가던 시기와 비슷한 구도다. PC를 만드는 회사가 누구든 그 안에 인텔 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고, 그 결과 인텔은 PC 산업 전체에서 가장 큰 부가가치를 가져갔다.
이것이 브랜드 압도의 본질이다. 실력 격차는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실력 격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두 번째 무게가 그 위에 얹혀 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깊이 박힌 브랜드의 위계가 그것이다. 한국의 어떤 회사가 GPT 수준의 모델을 만들어 낸다고 가정해 보자. 그 모델이 실제로 GPT보다 약간 더 좋은 성능을 낸다고 해도, 그 모델을 GPT 대신 쓰는 한국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브랜드의 압도다. 1988년 한국 가전제품이 일본 가전제품보다 일부 항목에서 더 좋은 성능을 내고 있을 때도 사람들은 일본 제품을 골랐다. 그 격차가 좁혀지는 데 다시 10년, 15년이 걸렸다. 그것도 한국 회사들이 그 시기 내내 자존심을 걸고 광고하고 마케팅하고 품질로 증명한 결과였다.
브랜드의 압도는 실력 격차와 심리적 패배감의 합작이다. 실력에서 밀린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시장 전체에 퍼질 때 진짜 압도가 시작된다. 한국 AI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한국 AI 모델 자체의 성능이 아니라, 한국 시장 안에서도 한국 AI 모델이 미국 모델 대비 매력적인 선택지로 인지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광고와 마케팅만으로 그 분위기를 바꾸기는 어렵다. 사용자와 의사결정자의 마음 깊은 곳에 박혀 있는 브랜드의 위계가 너무 단단하기 때문이다. 자국 모델을 광고하면 할수록 자국 모델이 약하다는 인상이 강해지는 역설적인 상황도 있다. 광고를 많이 한다는 사실 자체가 광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지도가 약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 단단함을 깨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누군가 모델 영역에 들어가서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시장 점유율이 작더라도, 매출이 작더라도, 그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는 회사가 있어야 한다. 도전자가 사라지면 브랜드의 압도는 영구화된다. 1988년 한국에서 누군가 D램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일본 가전 브랜드의 압도는 영원히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도전자의 존재 자체가 그 압도를 흔든다. 도전자가 결국 격차를 좁히지 못해도 도전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시장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다시 모델로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모델 시장에서 미국 셋이 거의 모든 것을 잡고 있다면, 굳이 다른 나라가 모델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사용 측면에서 격차가 좁혀지고 있으니, 그저 미국 모델을 잘 쓰는 데 집중하면 되지 않는가? 응용 영역에서 박터지게 싸워서 일정 부분의 시장을 차지하면 되지 않는가? 이 질문은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 합리적인 듯한 질문이 바로 브랜드 압도의 결과다. 압도가 단단할수록 도전을 회피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중국을 보자. 중국은 미국 GPU 수출 규제라는 거의 절망에 가까운 조건에서도 자체 모델을 계속 만든다. DeepSeek과 Qwen과 Kimi와 Doubao와 GLM 같은 모델들이 매월 새 버전을 내놓는다. 중국 정부는 모델 개발을 국가 전략의 한 축으로 명시했고, 중국 빅테크와 스타트업들은 미친 듯이 자본과 인재를 쏟아붓는다. 중국 모델이 미국 모델과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멈추지 않는다. 왜인가?
이유는 단순하다. 모델을 만들지 않는 나라는 모델을 가진 나라의 영구적인 종속국이 된다는 것을 중국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델은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그것은 인지 체계 그 자체다. 한 사회가 사용하는 모델은 그 사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문화적 기준점을 보이지 않게 형성한다. 미국 모델은 영어 사용자, 미국 문화, 미국식 사고방식을 기본값으로 갖는다. 그 모델을 매일 쓰는 사회는 점점 더 미국식 사고에 동기화된다. 어떤 질문을 했을 때 모델이 어떤 식으로 답하는지가 곧 그 사회 구성원의 사고 패턴에 영향을 준다. 검색엔진 시대의 종속이 정보 접근의 종속이었다면, AI 시대의 종속은 인지 그 자체의 종속이다.
중국은 이 종속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 결론에서 자국 모델 개발이 시작됐다. 중국 정부는 자국 모델 사용을 직간접적으로 강제하면서 자국 모델이 자라날 시장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중국 안에서는 중국 모델이 충분한 사용량을 확보했고, 그 사용량이 다시 모델 학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미국 모델에 비해 글로벌 점유율은 작지만, 자국 시장 안에서의 입지는 매우 단단하다. 중국은 자국 시장이라는 폐쇄적인 환경을 활용해 인지 종속을 피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이 미국식 인지 체계에 동기화되는 것을 한국 사회는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가? 의식이 없다면, 한국에서 자체 모델을 만들어야 할 절박함도 없다. 절박함이 없으니 자본과 인재가 모델로 가지 않는다. 자본과 인재가 가지 않으니 모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델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다시 미국 모델에 더 의존하게 된다. 이 악순환이 한국 AI 시장의 가장 큰 문제다. 정부도, 대기업도, 투자자도 이 악순환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자국 모델 개발이 산업 정책의 한 줄로 등장하지만 그것에 실리는 자원의 규모는 미국 회사 한 곳의 분기 투자액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델 영역에서 한국이 도전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지 종속을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모델을 만지는 경험 그 자체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희귀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모델을 쓰기만 하는 시대에 모델을 직접 만지고 수정하고 학습시키는 경험을 가진 인력은 줄어든다. 그 인력이 어느 시점부터는 거의 사라진다. 그때가 되면 모델을 가진 회사들이 단순히 모델만 가진 것이 아니라 모델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 자체를 독점한 상황이 된다. 그 상황에서 다른 나라가 뒤늦게 모델을 만들겠다고 결심해도 인력 자체가 없어서 만들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컴퓨터 산업의 역사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운영체제와 컴파일러처럼 컴퓨터의 가장 깊은 층을 만들 줄 아는 엔지니어와 그 위에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엔지니어 사이에는 한 시기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둘 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를 졸업했고, 첫 직장의 연봉도 비슷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깊은 층을 만드는 인력은 줄어들었고, 그 인력이 가진 가치는 점점 더 커졌다. 결국 운영체제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과 리눅스 커뮤니티로 좁아졌고, 컴파일러와 핵심 인프라를 만드는 일은 극소수의 회사와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집중됐다. 그 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프로그램과 서비스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아래의 깊은 층을 만지는 사람들은 점점 희귀해졌다. 한 나라에 운영체제 커널을 다룰 줄 아는 엔지니어가 몇 명 남았는지를 세어 보면 그 나라의 IT 산업이 도달한 깊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 희귀함이 곧 산업 전체의 흐름을 결정하는 권력이 됐다. AI 시대에 모델을 만질 줄 아는 인력이 그와 같은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응용만 만들 줄 아는 인력은 흔해지고, 모델까지 다룰 줄 아는 인력은 희귀해진다. 그 격차는 단순한 기술 격차가 아니라, 한 산업의 핵심을 이해하는가 아닌가의 격차다.
여기서 1988년의 삼성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때 삼성이 D램에 들어간 결정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일본 회사들이 시장의 80퍼센트를 잡고 있었고, 미국 회사들이 그 나머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신생 회사가 들어가 봤자 자리가 없었고, 들어간다 해도 적자만 쌓일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삼성은 D램 사업 초기 10년 가까이 누적 적자에 시달렸다. 어떤 합리적인 경영 컨설턴트도 그 결정을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합리적인 길은 일본 회사의 OEM 하청을 받거나, 더 안전한 가전 조립에 머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이 30년 후 결과를 만들었다. 합리적인 결정만 했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기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지금이 모든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1988년 한국은 1인당 GDP가 일본의 5분의 1 수준이었고, 자본 시장 규모도 작았고, 박사급 인력의 수도 적었다. AI 시대의 한국은 1인당 GDP가 일본과 거의 같은 수준이고, 일부 지표는 일본을 추월했다. 자본 시장은 자체적으로 수십조 원 단위의 투자를 집행할 수 있고, 박사급 AI 인력은 수천 명 단위로 있다. 글로벌 빅테크에서 일한 한국인 엔지니어와 연구자가 이미 상당한 수에 이른다. 88년 그 무모한 도전을 했던 시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모든 조건이 더 좋다. 그런데 도전은 더 적다. 더 큰 환경에서 더 작은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유는 결국 마음의 문제다. 1988년의 한국에는 따라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 절박함이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지금의 한국에는 그 절박함이 없다. 응용 영역에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는 안일함, 어차피 미국 모델을 못 따라간다는 패배감, 모델 같은 큰 싸움은 우리 몫이 아니라는 체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자국 모델을 만든다고 하면 무모하다고 비웃고, 응용을 잘 만들겠다고 하면 현명하다고 칭찬한다. 그 분위기에서 누가 모델에 들어가고 싶겠는가? 자본과 인재는 자연스럽게 응용으로 흐른다. 모델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비현실적이라는 시선을 견뎌야 한다. 그 시선을 견디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절박함이 없는 채로 30년이 흐르면 한국 AI 산업은 응용 영역에서조차도 어려운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모델 회사들이 응용 영역까지 자기 것으로 가져가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응용 회사들이 모델 회사 위에서 일정 부분의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 모델 회사들이 응용 영역의 핵심 카테고리를 하나씩 자기 것으로 흡수해 가면, 그 위에서 살아남을 응용 회사는 점점 줄어든다. 결국 모델 회사 위에서 살아남는 응용 회사는 그 모델 회사가 직접 진출하지 않은 좁은 틈새 시장의 회사들로 한정될 것이다. 그 시기가 됐을 때 한국 IT 산업은 어떤 모습이겠는가? 거대한 모델 회사들이 응용 영역의 핵심을 잡고 있고, 한국 회사들은 그 사이의 좁은 틈새를 두고 다투는 모습일 것이다. 1988년에 한국이 D램에 들어가지 않고 가전 OEM에 머물렀다면 도달했을 미래와 본질적으로 비슷한 모습이다.
그래서 도달해야 할 결론은 분명하다. 응용을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다. 응용은 계속 만들어야 한다. 응용 영역에서 의미 있는 매출을 만드는 일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응용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응용을 만들면서도 모델의 언저리를 끊임없이 멤도는 회사와 개인이 한국에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그 멤돌기가 처음에는 의미 없어 보일 수 있다. 미국 모델과 비교했을 때 너무 초라해서 발표하기가 부끄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멤돌기를 멈추는 순간 한국은 AI 시대에 영구적인 응용 종속국이 된다. 그것은 1988년에 한국이 가전 OEM 종속국으로 머물기를 선택했을 경우와 비슷한 미래다.
다시 모델로 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회사가 모델을 만들라는 의미가 아니다. 모델을 만드는 회사가 한국 안에 의미 있는 숫자만큼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회사들이 매년 새 모델을 발표하고, 그 모델이 미국 모델보다 부족하더라도 끝까지 살아남고, 그 회사 안에서 모델을 만질 줄 아는 인력이 계속 길러져야 한다. 큰 자본이 그 회사들로 흘러가야 하고, 정부 정책도 그 회사들을 받치는 방향이어야 한다. 한국 시장 안에서 한국 모델이 충분한 사용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국 모델 도입에 대한 의사결정자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1988년 삼성이 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도전이다. 무모해 보이지만 그 무모함만이 다음 시대를 만든다.
브랜드의 압도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압도를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미국 모델 외에는 처다보지 않는 그 시선, 자국 모델을 응원하기는커녕 의심부터 하는 그 분위기, 모델은 우리 몫이 아니라는 그 체념이 브랜드 압도의 진짜 동력이다. 이것을 깨는 일은 결국 마음의 일이고, 마음의 일이라면 누군가 시작하면 된다. 1988년 누군가 시작했다. 그 누군가가 지금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이 그 시기보다 못한가? 그렇지 않다. 지금이 그 시기보다 훨씬 낫다. 더 좋은 조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