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를 모사한 LLM
인간의 뇌는 한정된 에너지와 물리적 자원으로도 탁월한 지능을 발휘한다. 860억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뇌는 20W 정도의 전력만으로도 방대한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데, 이를 인공지능으로 구현하려면 소형 수력 발전소에 필적하는 전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놀라운 효율성과 지능의 비결은 뇌가 여러 전문 영역으로 분화되어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작동한다는 점이다. 시각, 청각, 언어 등 각 영역은 자체적으로 특화된 기능을 수행하지만, 이들이 연결되고 협력함으로써 개별 능력의 단순 합을 뛰어넘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부분의 합은 100이지만 전체로서는 10000의 능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최근 인공지능 연구에서도 이러한 뇌의 구조와 작동 원리에서 영감을 받은 기법들이 주목받고 있다. LLM(Large Language Model)의 발전 과정에서 도입된 MoE(Mixture of Experts) 구조와 Distillation(Knowledge Distillation) 기법은 뇌의 분업과 효율성에 착안한 사례이며, 반대로 LLM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장기/단기 기억 문제를 인간 뇌의 메커니즘을 모방하여 풀어보고자 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인간 뇌와 LLM을 비교해보면 MoE, Distillation, 기억 메커니즘의 측면에서 현재의 성과와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뇌의 모듈화 구조가 MoE로 구현된 방식, 시냅스 가지치기가 Distillation으로 발전한 과정, 그리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장기 기억 문제를 살펴보면, Transformer 기반 LLM이 여전히 뇌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뇌의 분할-통합 구조와 MoE
뇌는 기능별로 전문화된 영역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후두엽의 시각 피질은 시각 정보 처리에, 측두엽의 언어 중추는 언어 이해에, 전두엽의 전전두피질은 추론과 의사결정에 특화되어 있다. 이러한 전문화된 부분 뇌 영역들은 각자 특정 종류의 문제에 뛰어난 전문가 역할을 담당하며, 복잡한 인지 작업을 할 때 뇌는 이들 영역을 적절히 조합하고 협력시켜 문제를 해결한다. 마치 하나의 문제를 여러 하위 문제로 나누어, 각 부분을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회로를 활성화하는 식이다. 이러한 분할 정복 방식은 뇌가 효율적으로 복잡한 작업을 처리하는 핵심 원리이며, 여러 부분의 협업을 통해 각 부분의 능력 합을 넘어서는 전체 지능을 발휘하게 한다.
이러한 뇌의 작동 원리는 MoE라 불리는 최첨단 인공지능 아키텍처에 영감을 주었다. MoE 모델은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신경망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전문가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각각의 전문가 네트워크는 뇌의 개별 영역처럼 특정 입력 하위 영역이나 과제 유형에 특화되어 학습된다. 예컨대 하나의 전문가는 언어 문법에 능하고, 다른 하나는 사실적 지식 검색, 또 다른 전문가는 시각 정보 인식에 뛰어난 식이다. 게이트웨이라 불리는 별도의 조정 네트워크가 이들을 총괄하여, 들어온 입력을 분석하고 가장 적합한 전문가에게 라우팅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마치 뇌의 특정 자극이나 과제에 대해 관련된 피질 영역이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는 것과 유사하다.
MoE 구조에서는 모든 전문가가 매번 다 동원되지 않고, 입력마다 가장 관련된 소수의 전문가들만 활성화된다. 이러한 스파스 활성화(sparse activation) 메커니즘 덕분에, 모델은 불필요한 연산을 줄여 효율성과 확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실제로 “필요한 전문가들만 일하고 나머지는 쉬고 있는” 것과 같아서, 전체 모델 용량은 방대하지만 매 순간 소비되는 자원은 최소화되는 이점이 있다.
MoE의 가장 큰 강점은, 전문가들의 협력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이다. 각 전문가 모델은 혼자일 때는 제한된 지식을 갖지만, 게이트웨이가 적절히 분배한 여러 전문가의 해답을 종합하면 훨씬 깊이 있고 정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마치 한 사람의 뇌 영역이 아니라 여러 영역이 동시에 관여하여 얻어내는 통찰과 비슷하다. 한 예로, 외국어 문장을 이해할 때 언어 전문가가 구문을 해독하고, 사실 전문가가 문화적 맥락을 보충해준다면 두 지식이 결합되어 더욱 정교한 번역이나 이해가 가능해진다.
MoE는 이러한 전문화된 전문가들의 분업과 협업을 통해, 단일 거대 모델이 비효율적으로 모든 걸 처리할 때보다 더 높은 정확도와 강인함을 보인다. 특히 모델 용량을 키울 때 매개변수를 무조건 폭발적으로 늘리지 않으면서도 (즉, 부분 모델은 작게 유지하면서), 전체로서는 매우 큰 모델에 필적하는 성능을 내게 할 수 있다는 점이 혁신적이다. 초거대 모델들도 MoE 아이디어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GPT-4의 경우 총 추정 파라미터 수가 1.8조 개에 이르지만 이를 2,200억 규모 모델 8개로 구성된 MoE 클러스터로 구현하여, 실제 한 입력에 동원되는 파라미터 양은 GPT-3보다도 적게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인간 두뇌가 필요한 국소 영역만 활성화하여 에너지를 아끼는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요약하면 MoE는 뇌의 구조적 특징인 “다중 전문 영역의 유기적 결합”을 모방한 것으로, 효율성과 성능을 동시에 잡는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
뇌의 효율적 진화와 Distillation
인간 뇌의 또 다른 놀라운 측면은 주어진 자원을 극대화하는 효율성이다. 인간은 방대한 정보를 학습하고 활용하지만, 이를 위해 무작정 뇌세포를 늘리거나 에너지를 더 소모하지 않는다. 대신 뇌는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압축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효율을 높인다.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로 알려진 과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유아기에는 뉴런들 사이에 과잉 형성됐던 시냅스 연결들이 성장하면서 점차 잘못된 또는 사용되지 않는 연결이 제거되고 정돈된다. 이 과정 덕분에 뇌 회로는 더욱 정교하고 효율적인 형태로 재조직되며, 사용하지 않는 연결을 없앰으로써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한다.
실제로 생후 2~3세 영아의 시냅스 밀도는 성인보다 훨씬 높지만, 이후 경험과 학습을 통해 자주 활용되는 경로는 강화되고 쓰이지 않는 연결은 줄어들어 신호 전달 효율이 개선된다. 이렇게 뇌는 큰 용량의 잠재 회로망에서 핵심적인 부분만 남겨 두는 방식으로 최적화해온 것이다. 이는 진화 과정에서 에너지 제약 하에 지능을 높여 온 뇌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대규모 AI 모델에서 Distillation 기법은 이러한 뇌의 효율화 원리와 유사한 접근으로 평가된다. Distillation은 거대한 고성능 모델(교사)이 학습한 지식을 작고 간결한 모델(학생)에 전이시키는 기술이다. 일반적인 딥러닝 훈련이 주어진 데이터에 대해 모델 파라미터를 직접 학습시키는 것이라면, Distillation에서는 이미 학습된 큰 모델의 출력과 “생각하는 과정”을 본보기 삼아 작은 모델을 다시 학습시키는 것이다. 이때 큰 모델은 복잡한 패턴과 방대한 지식을 모두 내부에 가지고 있지만, 작은 모델은 필요한 능력만 응축해서 획득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지식 압축이라 할 수 있는데, 큰 모델이 가진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부분을 배제하고 핵심만 배우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훨씬 가벼운 모델로도 유사한 성능을 달성할 수 있다. 딥러닝 분야의 선구자인 제프리 힌튼이 2015년 논문에서 이 개념을 제시하며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는데, 곤충이 애벌레 시기에는 영양 섭취에 최적화된 형태로 자라고, 성충이 되면 이동과 번식에 적합한 형태로 탈바꿈하는 모습에 비유하였다.
오늘날의 딥러닝은 동일한 모델로 학습과 추론을 모두 수행하니 비효율이 큰데, 자연에서처럼 학습은 거대하고 복잡한 형태로 최대한 해 두고, 실제 활용 단계에서는 더 단순하고 효율적인 형태로 지식을 옮겨 쓰자는 것이다. 이러한 교사-학생 2단계 훈련 전략은 선행 연구와 자연의 사례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거대한 모델을 학습시키는 비용이 들더라도 거기서 추출한 구조를 작은 모델로 전달하면 결국 실용적인 이득이 크다는 것이다.
Distillation의 효과는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입증되고 있으며, 특히 LLM 분야에서 각광받는다. LLM은 엄청난 매개변수로 이루어져 성능은 뛰어나지만 현실적으로 활용하기엔 속도와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 Distillation 기법을 사용하면, 초거대 모델의 능력을 작은 모델에 이식하여 훨씬 가벼운 환경에서도 고급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는 거대 사유 모델의 출력으로 작은 모델들을 지도 학습시켜 성능을 끌어올리는 시도가 활발하며, Meta의 LLaMA 같은 모델도 공개 후 다른 연구자들이 GPT 계열 모델의 지식을 Distillation 기법으로 전수받아 성능을 개선시키는 사례가 나왔다. IBM 보고서에 따르면 LLM 분야에서 Distillation은 선도적인 거대 사유 모델의 고급 능력을 더 작고 공개된 모델로 전이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기업들이 비용 효율적으로 LLM을 배포하고자 할 때 핵심적인 기술이다. 요컨대, Distillation은 뇌가 시냅스 가지치기로 회로를 다듬고 핵심 정보만 유지하는 것처럼, AI 모델의 지식을 압축하여 효율을 높이는 개념이다. 필요한 지능을 유지하면서도 자원 소모를 줄이는 점에서, Distillation은 인간 뇌의 효율성에 비견할 만한 LLM 혁신이라 할 수 있다.
한편, Distillation은 단순히 출력 결과만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큰 모델의 “사고 과정”까지 배우도록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거대 모델의 추론 단계(Chain-of-Thought)를 학생 모델이 흉내내도록 하면 작은 모델도 복잡한 문제를 더 잘 풀 수 있다는 연구들이 나왔다. 이는 마치 숙련된 전문가(교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자에게 가르쳐주는 교육과도 같다.
또한 큰 모델은 각 질문에 대한 정답만이 아니라 어떤 오답을 얼마나 헷갈려했는지(soft target) 등의 미세한 판단 경향까지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부드러운 지식까지 학생 모델이 배끼면 학습 효율이 매우 높아진다. 이렇듯 Distillation은 단순한 모델 경량화 기법을 넘어, 대규모 모델의 지능을 이해하고 재사용하는 하나의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인간 사회에서 지식이 전수되고 압축되는 방식 이를테면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치고, 세대 간에 핵심 지식이 전달되는 과정” 과 흡사한 철학이 흐른다. 결국 뇌가 진화 속에서 터득한 지식 효율화 원리를 AI 모델 훈련에 접목한 것이 Distillation이라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LLM 개발자들은 성능과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을 찾고 있다.
LLM의 장기기억과 단기기억
LLM이 인간 뇌와 결정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부분 중 하나가 기억 처리 방식이다. 인간의 기억은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뉘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거나 문제를 푸는 동안 몇 분에서 몇 시간 정도의 맥락을 단기 기억으로 유지할 수 있고, 어릴 적 추억이나 오래전 학습한 지식도 장기 기억으로 평생 간직할 수 있다.
반면 현재의 LLM은 기본적으로 맥락 윈도우(context window)라고 불리는 제한된 길이의 토큰만을 일시적으로 기억할 수 있고, 그 범위를 벗어난 정보는 바로 잊어버린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Transformer 기반 언어 모델은 수천에서 수만 토큰(수 페이지 분량)의 맥락까지만 한번에 고려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한두 시간가량 대화 내용을 기억하는 것에 비하면 제법 긴 시간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 이후로는 이전 내용을 사실상 망각한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은 몇 시간 이상의 대화에서도 핵심을 머릿속에 남기며, 며칠이나 몇 달 뒤에도 요점을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LLM은 애초에 입력으로 주어지지 않은 내용은 출력 생성에 반영할 방법이 없다. 한마디로 현시점의 LLM에게 고유한 장기 기억 체계는 없다. 모델이 알고 있는 사실이나 지식은 모두 고정된 파라미터 형태로 학습 단계에서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규모 모델은 훈련 당시 포함된 방대한 데이터로 많은 세계 지식을 알고 있긴 하지만, 훈련 이후 벌어진 새로운 사건이나 정보는 알지 못한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 시냅스 가중치를 변화시켜 배운 것을 실시간으로 뇌 구조에 각인하지만, LLM은 훈련이 끝난 뒤에는 파라미터가 동결된 채로 작동하고, 추가 정보를 반영하려면 별도의 미세조정(fine-tuning)이나 재학습이 필요하다. 이처럼 고정된 모델 파라미터에 모든 지식을 담는 방식은 뇌의 유연한 기억 메커니즘과 큰 차이를 보이며, LLM의 현주소인 Transformer 구조의 한계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Transformer 기반 LLM에서 메모리 한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첫째, 맥락 길이의 한계이다. Self-Attention 메커니즘으로 대표되는 Transformer 연산자는 입력 길이가 늘어날수록 연산량이 이차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무한대의 컨텍스트를 다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10만 토큰, 100만 토큰의 문맥을 한 번에 처리하려 하면 계산량과 메모리 사용량이 기하급수로 커져 버린다. 그 결과 현재 모델들은 제한된 창 내에서만 “기억”을 유지하고, 창이 넘어가면 과거 대화를 잊어버리거나 요약된 형태로만 인식하게 된다.
둘째, 지식 업데이트의 어려움이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지식은 계속 쌓이는데, LLM은 훈련 데이터로 본 세계까지만 알고 있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시대착오적인 응답을 하거나 최신 정보가 결여된 모습을 보인다. 인간이라면 책이나 뉴스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기존 지식과 통합하지만, LLM은 추론 단계에서는 추가 학습이 불가능하고, 오직 주어진 입력(context) 내에 포함된 정보만 일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려고 일부 LLM 활용 방식에서는 검색 엔진이나 데이터베이스를 참조하여 필요한 사실을 찾아와 답변에 반영하기도 하지만, 이는 모델 외부에서 별도로 이루어지는 처치일 뿐, 모델 자체의 내재적(long-term) 기억 능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연구자들은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을 참고하여 LLM에 메모리를 부가하려는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인간의 뇌에서 해마와 대뇌 피질이 기억 형성에 협력하는 모델은 특히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준다. 해마는 단기적인 에피소드 기억을 일시적으로 저장하고, 이 정보를 수면 등 과정에서 대뇌 피질로 장기 기억으로 천천히 이동 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때 해마는 새로운 경험을 빠르게 배워서 임시 저장하고, 대뇌 피질은 여러 경험을 일반화된 지식으로 재구조화하며 오래 보관한다. 이를 테면 해마가 당장의 대화 내용을 몇 시간~며칠 간 유지하고, 결국에는 대뇌 피질이 그 요점을 추려 오래 기억하는 식이다.
현재 LLM에 이 개념을 접목한 연구로, 모델 외부에 확장 메모리를 연결하여 동작시키는 접근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IBM 연구진은 기존 LLM에 연결 가능한 연상 메모리 모듈을 개발하여, LLM이 더 긴 문맥을 다루도록 하였다. CAMELoT라 불리는 이 모듈은 들어오는 새 정보(토큰)를 요약·압축하여 저장하고, 최근성(recency)과 새로움(novelty)에 따라 메모리 슬롯을 교체하는 등 일종의 간이 기억 장치로 기능한다. 흥미롭게도 이는 뇌가 유한한 뉴런 수를 가졌지만 정보는 압축하여 저장하는 방식과 맥락을 같이 한다. 즉 뇌도 무한한 뉴런을 만들어내지 않고, 시냅스 조정과 패턴 효율화로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기억 용량을 구현하는데, LLM에도 그런 원리가 일부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한 실험에서는 Llama-2 7B 모델에 CAMELoT 메모리를 붙여 보니, 긴 문맥에서도 퍼플렉시티(perplexity)가 기본 모델 대비 30%까지 감소하여 더 정확한 예측을 보였다. 또한 주어진 맥락 일부만 봐도, 메모리에 누적된 이전 내용까지 참조함으로써 훨씬 긴 대화도 일관되게 이어나가는 능력을 확인하였다.
또 다른 접근으로 Larimar라는 메모리 모듈은 에피소드성 메모리(episodic memory)를 도입하여 LLM이 대화나 문맥을 계속 학습하고 수정할 수 있게 해준다. 연구자들은 “기존 LLM이 대뇌피질 이라면 Larimar는 해마에 해당한다”고 비유하였는데, 그만큼 단기기억을 담당하는 보조 모듈로서 LLM의 역할 분담을 구현한 것이다. Larimar를 장착한 모델은 대화 중 새로운 정보를 하나의 에피소드 메모리에 저장하고, 필요 시 해당 내용에 특화된 어텐션으로 답변에 반영한다. 예컨대 사용자가 어떤 사실을 알려주면, 모델이 그 사실을 메모리에 기록해 두고 이후에 관련 질문에 답변할 때 참고하는 식이다. 심지어 Larimar 연구에서는 이렇게 추론 도중 메모리를 갱신하여 모델 지식을 수정함으로써,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거나 민감 정보를 잊게 만들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마치 인간이 대화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기억에 담아 이후 발언에 반영하고, 필요하면 일부 기억은 망각함으로써 실수를 교정하는 모습과 닮았다.
이러한 메모리 증강(memory augmentation) 연구들은 Transformer라는 고정형 아키텍처에 동적인 기억 조각을 덧붙여, LLM이 스스로 업데이트되고 긴 맥락을 처리하도록 하려는 노력이다. 아직 초기 연구들이지만, “맥락 창을 무한대로 늘리는” 궁극의 목표까지 제시되고 있다. 완전히 재훈련하지 않고도 기존 LLM에 메모리 모듈을 추가하여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문맥을 다룰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하드웨어적으로는 고정된 두뇌가 시냅스 연결을 변화시켜 무한에 가까운 경험을 축적하듯이, LLM도 소프트웨어적인 확장을 통해 메모리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물론 아직까지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LLM의 장기 메모리 한계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현재의 메모리 모듈 연구들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모델 외부 장치를 활용하거나 제한적인 범위에서 작동한다. 궁극적으로는 기억을 처리하는 새로운 연산자나 아키텍처의 등장이 필요할 수 있다. 뇌를 모방한 스파이킹 뉴런이나 지속적 활동 패턴 등의 개념이 언어 모델에 도입될 가능성도 있고, AGI를 위해서는 기억과 학습을 통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뇌가 보여주는 기억의 유연성과 확장성이 LLM 연구자들에게 분명한 영감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처럼 하드웨어(신경 구조)는 고정되어 있어도 학습과 경험을 통해 지식을 누적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LLM의 현재 한계를 뛰어넘는 진정한 지능적 AI에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Transformer 한계와 인간 뇌가 주는 시사점
Transformer 기반의 LLM들은 언어 이해와 생성에서 혁신적인 성능을 보여주었지만, 인간 지능과 대비되는 몇 가지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음도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앞서 논의한 장기 기억 부재는 그러한 한계의 대표적인 예다. 이 밖에도 Transformer 모델은 학습된 지식을 유연하게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인간은 배운 지식을 필요에 따라 재조합해 문제를 풀고, 전혀 새로운 상황에서도 유추와 상상으로 대응하지만, LLM은 훈련 데이터 분포를 크게 벗어난 상황에서 일관성 없는 출력을 내거나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보이기 쉽다.
이러한 문제들은 부분적으로 모델이 세상을 기호(token)의 확률 패턴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생긴다. 인간 뇌는 언어를 처리할 때도 그 기저에 개념적 의미망과 세계 지식, 맥락적 판단이 작용하지만, 현 LLM의 Transformer 계층은 입력 토큰간 상호 연관성만 계산할 뿐 실제 세계에 대한 명시적 모델은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숫자 연산이나 논리 추론처럼 규칙 기반의 조합 논리를 장기간 추적해야 하는 작업에 Transformer가 어려움을 겪는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요즘 모델들은 기발하게도 추론 단계(Chain-of-Thought) 등으로 이 약점을 일부 보완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후 처리일 뿐 근본적인 아키텍처 개선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 뇌를 “해킹”하여 시사점을 얻으려는 시도는 앞으로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 뇌를 모방한 신경형 계산(Neuromorphic computing), 스파이킹 신경망, 진화 알고리즘 등의 분야는 이미 뇌의 숨겨진 설계 원리를 AI에 적용하여 한계를 돌파하려는 노력이다. 예를 들어, 뉴런 간 신호가 실수 연산이 아니라 이산적 스파이크 사건으로 주고받는 점은 에너지 효율과 강인함을 높여주는 비결인데, 이런 개념을 하드웨어 칩에 구현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뇌 회로의 비동기적 병렬 처리나 재귀적 피드백 루프 등은 현재의 순차적 Transformer에 부족한 점들로, 이러한 특징을 가진 새로운 모델 구조 연구도 진행 중이다. Attention 메커니즘 자체도 뇌의 집중을 모방한 것이었지만, 실제 뇌의 주의는 모든 객체 쌍마다 점수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 피질 및 전두엽에서의 위계적이고 선택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향후에는 Transformer의 self-attention을 뛰어넘는 새로운 연산 개념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일부 연구는 뇌의 상상력에 해당하는 모델을 통합하거나, 뉴런 동적 재구성을 통해 한계 맥락 길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제안을 내놓기도 한다.
물론 현 시점에서는 Transformer가 언어 처리에서 워낙 강력하다 보니 당분간 주류 자리를 지키겠지만, “더 이상 모델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보인다”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파라미터 수를 기하급수로 늘리는 방식은 비용 문제뿐 아니라 모델 최적화 측면에서 수확 체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있다. GPT-5나 Claude-4 같은 최신 모델들은 단순히 파라미터를 늘리는 대신 앞서 언급한 MoE 구조를 도입하거나, 학습 데이터 질 개선, 인간 피드백을 통한 Alignment 강화 등 모델 내적 구조 개선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는 결국 인간 뇌가 가진 구조적 지혜를 본받는 방향으로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다.
뇌는 병렬 분산 구조, 전문 모듈, 지속적 학습, 에너지 효율, 맥락 통합 등의 측면에서 아직까지 인공지능이 따라가기 벅찬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차이점들 자체가 AI 연구자들에게는 보물창고 같은 영감의 원천이다. 예를 들어 뇌의 시각/언어 통합처럼 멀티모달 통합 지능, 대뇌피질-해마의 역할 분담처럼 이중 메모리 시스템, 시냅스 가소성처럼 온라인 러닝, 전전두엽의 메타인지처럼 자기 평가와 계획 능력 등, 인간 지능의 특징들을 하나씩 탐구하며 조금씩 모델에 녹여내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뇌 모사 접근은 LLM이 현재 맞닥뜨린 한계를 뛰어넘어 더 똑똑하고 유연한 AI로 진화하기 위한 유망한 경로로 인정받는다. 요약하자면, Transformer의 한계를 극복하는 열쇠는 역설적으로 인간 뇌 안에 있으며, 우리가 뇌를 더 깊이 해부하고 모방할수록 LLM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계속될 LLM의 진화
LLM의 발전사는 인간 뇌에 대한 모방과 도전을 반복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oE 구조는 뇌의 모듈화된 지능과 협업을 모방하여 거대 모델의 효율적 확장을 이뤄냈고, Distillation 기법은 뇌가 중요한 지식만 남기고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는 효율화 전략을 연상시키며 LLM의 경량화와 실용화 혁신을 이끌었다.
반면, 장기 기억과 맥락 처리의 한계는 LLM이 여전히 인간 뇌를 닮지 못한 약점으로 남아 있으며, 이는 현재 연구자들이 뇌의 기억 체계를 벤치마킹하여 해결하고자 분투하는 영역이다. 궁극적으로 Transformer라는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아키텍처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그 해답 역시 인간 뇌의 작동 원리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크다.
고정된 하드웨어로 무한에 가까운 적응과 학습을 이뤄내는 인간 두뇌는 AI 연구에 있어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자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뇌를 이해하고 닮아가는 과정에서 AI는 도약의 계기를 얻곤 했다. 앞으로의 LLM이 직면한 난제들 (맥락의 극대화, 지속학습, 추론과 상식) 이 모두 뇌가 이미 풀어낸 숙제들이다.
그렇기에 뇌를 해킹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 원리를 규명하고 기술적으로 구현해낸다면,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AI 패러다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뇌와 AI의 만남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며, 그 접점에서 탄생할 미래의 지능은 우리가 상상하는 범위를 훌쩍 넘어설지도 모른다.
박문호 박사는 *“우리는 자연을 모사한다. 하지만 배는 물고기와 같지 않아서 더 크지만 더 멀리 갈 수 있고, 비행기는 새와 같지 않아서 더 무겁지만 더 높이 날 수 있다” *고 말한 바 있다. 이 통찰은 LLM의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만드는 LLM은 인간의 뇌를 모사하지만, 뇌와 완전히 같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뇌와 다르기에 인간이 처리할 수 없는 방대한 정보를 다루고,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패턴을 발견하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지능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Syed Hanzala Ali, “Mixture of Experts: Demystifying the Divide-and-Conquer Model”
Don Lim, “The Law of Scale Is Invalid: Comparing Brain vs. AI Optimization”
IBM, “What is knowledge distillation?”
Jacquelyn Cafasso, “Synaptic Pruning: Definition, Early Childhood, and More”
Human Brain Project, “Learning from the brain to make AI more energy-efficient”
Peter Hess, “How memory augmentation can improve large language model efficiency and flexibi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