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인지혁명 — 7만 년 만의 두 번째 도약 앞에서

지난 글 「대체될 사람들에게-세상은 끝없이 깊다」를 본 한 독자가 묵직한 질문을 보내왔다.
“… 그의 논지는 분명하고 강합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남습니다. Hidden Figures에서 IBM이 소수의 ‘human computer’를 대체했던 것과 달리, 지금의 AI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그리고 훨씬 더 많은 ‘보통의 직업’을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체감됩니다. 따라서 이 변화를 이전과 같은 맥락의 전환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더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은 지난 글이 의도적으로 비워둔 자리를 정확히 짚었다. 답할 가치가 있는 질문이다. 그래서 답하려 한다.
혁명은 누적된다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농업, 청동기, 철기, 산업, 정보화, 모바일을 모두 ‘혁명’이라 부른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이 혁명들은 각각 독립된 사건이 아니었다. 뒤의 혁명은 앞의 혁명을 자기 안에 포괄한 채 시작했다. 산업혁명은 농업과 철기를 끌어안은 채 출발했고, 정보화 혁명은 산업 사회의 모든 직업 구조 위에 컴퓨터라는 새 층을 얹었다. 모바일은 정보화의 모든 것을 손바닥 안으로 가져왔다. 어느 혁명도 백지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그 직전까지 쌓아 올린 모든 층 위에 다음 한 층을 더한 것이다.
이 구조는 자연 현상에 가깝다. 강이 흐르며 토사를 쌓는 모습과 닮아 있다. 위에 새로 쌓인 층은 아래에 있던 층을 덮지만 지우지 않는다. 아래의 층이 단단할수록 위의 층도 멀리 갈 수 있다. 산업혁명이 그토록 빠르게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농업혁명이 만든 정착 사회와 분업 구조 위에 얹혔기 때문이다. 정보화가 그토록 깊게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혁명이 빚은 도시와 사무 구조 위에 얹혔기 때문이다. 혁명은 누적되고, 누적된 만큼만 멀리 간다.
이 사실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AI가 이전의 어떤 혁명보다 광범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AI는 새로운 영역만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농업혁명 이래 산업혁명과 정보화 혁명이 빚어낸 직업 구조 전체를 자기 안에 끌어안은 채 다음 단계를 시작한다. 그동안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층을 동시에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누구에게나 광범위해 보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어린 시절 사건이 이후 모든 일에 영향을 주지만 동시에 이후 사건의 한 부분으로 박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그 누적의 맨 위에서 다음 도약을 마주하고 있다.
이 사실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해 준다. 하나는 독자가 짚은 대로 이번 변화가 진짜로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광범위함이 ‘예외’가 아니라 누적의 결과라는 것이다. 변화가 광범위해 보이는 만큼 그 안에 우리가 이미 익숙한 옛 변화들이 들어 있다. 산업혁명 때 직조공이 사라진 자리, 정보화 때 타자수가 사라진 자리, 모바일이 등장하며 지도와 시계와 라디오가 한 화면 안으로 빨려 들어간 자리, 그 모든 자리가 한 번에 흔들리는 셈이다.
그러나 광범위함과 질적 차이는 다른 문제다. 변화의 폭이 크다고 해서 그 변화가 반드시 새로운 층위의 사건이라는 뜻은 아니다. 산업혁명도 정보화도 자기 시대에는 광범위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AI는 이전 혁명들의 한 칸인가, 아니면 새로운 층위의 시작인가? 이것이 진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6,500년 전의 농업혁명이나 200년 전의 산업혁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멀리 가야 한다. 농업혁명의 강이 어디서 흘러나왔는지를 봐야 그 강이 끝나는 자리도 보인다. 시계를 7만 년 전으로 돌릴 차례다.
잊혀진 첫 도약
농업혁명이 일어나기 약 6만 년 전, 1차 인지혁명이 있었다.
이 혁명은 우리에게 거의 잊혀졌다. 기록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흔적은 우리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새겨져 있다. 약 7만 년 전 어느 시점에 사피엔스의 뇌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같이 살아 온 호미닌 종들 사이에서 사피엔스는 결코 우월한 종이 아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골격이 굵었고 두꺼운 근육을 가졌다. 추위에도 더 강했고 뇌 용적은 사피엔스보다 오히려 컸다. 데니소바인은 환경 적응력이 뛰어났다. 사피엔스는 그 사이에서 약체였다.
그런데 7만 년 즈음부터 무언가가 달라졌다. 사피엔스가 도구의 형태를 바꾸고, 무리를 키우고, 멀리까지 이동하기 시작했다. 약 5만 2천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만들기 시작한 타조알 껍질 구슬은 약 4만 2천 년 전 무렵에는 남아프리카에서도 같은 양식으로 발견된다. 5만 년 전부터 3만 3천 년 전까지 약 1만 7천 년 동안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사이 3천 킬로미터에 걸친 사회망이 작동한 흔적이다. 같은 디자인의 장신구가 그 거리를 건너 옮겨 다닌다는 것은 단순한 물자 거래가 아니다. 의미가 옮겨 다닌 것이다. 한 무리에서 만든 구슬이 다른 무리에서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다. 이는 신화와 약속(상상)을 공유하는 능력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더 근본적으로 사피엔스는 눈앞에 없는 것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신, 부족의 영혼, 미래, 약속. 이런 추상이 가능해지자 사피엔스는 자기보다 강한 종들을 차례로 밀어내고 세계의 주인이 되어 갔다. 약 4만 5천 년 전 호주에 도착한 사피엔스는 그곳의 거대 동물 24종 중 23종을 멸종시켰고, 만 4천 년 전 시베리아를 거쳐 아메리카로 들어간 사피엔스는 또 다른 거대 동물상을 차례로 사라지게 했다. 같은 시기에 살아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도 사피엔스를 만난 뒤 차례로 사라졌다. 약체였던 사피엔스가 짧은 기간 안에 지구의 다른 모든 호미닌을 밀어냈고, 발이 닿는 대륙마다 거대 동물상을 사라지게 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인지혁명이라 부른 것이 바로 이 도약이다.
이 도약의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한 우연한 유전자 변이가 사피엔스의 뇌 회로를 바꾸었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한 흥미로운 보조 가설이 있다. 가죽과 가죽을 이어 옷을 만들고, 그 가죽으로 다시 이불을 만들면서 사피엔스는 추위로부터 멀어졌다. 잠을 잘 때 체온을 유지하는 데 쓰던 에너지가 절약되었다. 그 절약된 에너지가 깊은 잠 동안 일어나는 기억의 응고와 REM 수면 동안 일어나는 기억의 재구성에 더 많이 쓰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다른 영장류에 비해 잠 시간은 짧지만 REM 수면의 비율이 현저히 높다는 사실은 이 가설의 한 단서다. 그 부수 효과로 꿈이라는 풍부한 연상 활동이 일어났고, 그 꿈이 곧 상상력의 원동력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이 그 위에서 자라났다.
상상력은 한 마리의 사피엔스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다른 사피엔스에게 옮겨 가면서 어떤 동물도 만들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같은 신화를 믿는 백 명이 같은 사냥을 하고, 같은 신을 모시는 만 명이 같은 도시를 짓고, 같은 약속을 신뢰하는 백만 명이 같은 화폐를 쓰게 되었다. 종교, 국가, 법, 화폐, 기업이 모두 이 상상력의 산물이다. 침팬지의 무리는 50마리를 넘지 못한다. 인간은 같은 신화를 공유하는 한 수억 명도 한 단위로 움직일 수 있다. 어느 종도 만들지 못한 거대한 협력 네트워크를 사피엔스는 이 단 하나의 능력으로 빚어냈다. 사회적 뇌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이후의 모든 혁명은 이 사회적 뇌가 펼쳐 낸 하부 혁명이었다. 농업은 한 곳에 정착하는 사회적 뇌의 산물이었다. 사피엔스가 식물의 미래 수확을 상상하지 못했다면 씨를 땅에 묻고 한 해를 기다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청동기와 철기는 더 큰 협력의 도구였고, 산업혁명은 사회적 뇌가 자연을 개조하는 단계였고, 정보화는 그 사회적 뇌가 자기 정보를 외부에 저장하기 시작한 단계였다. 이들은 모두 1차 인지혁명이라는 큰 강에서 갈라져 나온 지류였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를 포괄할 수 있었다. 같은 본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나 한 가지를 추가로 짚어야 한다. 1차 인지혁명을 지나간 사피엔스의 무리 중 그것을 통과하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기에 살아 있던 호미닌 종들은 사피엔스를 만난 뒤 차례로 사라졌다. 그러나 살아남지 못한 종에는 사피엔스 자신의 무리도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사고에 적응하지 못한 무리, 옛 본능에 머문 무리, 작은 집단을 벗어나지 못한 무리는 사라졌다. 적응한 무리가 살아남았고 그 무리가 우리의 조상이다. 7만 년 전의 도약은 가벼운 사건이 아니었다. 한 종의 사고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사건은 결코 가벼울 수가 없다.
기록이 없으니 그 첫 도약의 고통을 정확히 그릴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늘 우리가 AI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 자기 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익숙했던 능력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보는 슬픔, 이 모든 감정은 7만 년 전 어느 사피엔스가 동굴에서 느꼈을 감정의 한 변주일 가능성이 높다. 그때도 적응하지 못한 무리는 사라졌고 적응한 무리는 살아남았다. 그 분기는 잔혹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같은 분기 앞에 있다.
새로운 본류의 시작
이제 본론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사건은 그 사회적 뇌가 펼쳐 낸 또 하나의 하부 혁명인가, 아니면 본류 자체에 일어나는 사건인가?
이 차이를 정확히 보려면 이전 혁명들이 사회적 뇌에 무엇을 한 것인지를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농업혁명은 사회적 뇌가 한 곳에 정착하게 했다. 사고는 여전히 인간 안에 있었지만 활동의 무대가 정착지로 좁혀졌다. 산업혁명은 사회적 뇌의 손을 기계로 확장했다. 사고는 여전히 인간 안에 있었지만 그 사고가 만드는 결과물이 손의 한계를 넘었다. 정보화는 사회적 뇌의 기억을 외부에 두었다. 사고는 여전히 인간 안에 있었지만 기억은 더 이상 머릿속에 다 담겨 있을 필요가 없었다. 모바일은 그 외부 기억을 손안으로 가져왔다. 사고는 여전히 인간 안에 있었지만 외부의 기억에 닿는 거리가 0에 가까워졌다. 이들 모두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고 자체는 여전히 인간의 뇌 안에 있었다는 점이다. 도구가 정착시키고, 손을 늘리고, 기억을 옮기고, 휴대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사고하는 일은 끝까지 인간의 일이었다.
지금의 AI는 그 마지막 자리를 건드린다. AI는 사회적 뇌가 7만 년 동안 쌓아 올린 정보, 언어, 추론, 창작 능력 그 자체를 외부 시스템으로 옮긴 첫 사건이다. 정보화가 사회적 뇌의 기억을 외부에 두었다면, AI는 사회적 뇌의 사고 자체가 외부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사건이다. 이전 혁명들이 사회적 뇌가 펼쳐 낸 도구의 혁명이었다면, AI는 사회적 뇌 자체에 짝이 되는 다른 사고 시스템이 처음으로 등장한 사건이다.
이런 의미에서 AI는 1차 인지혁명에 짝이 되는 두 번째 도약, 곧 2차 인지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이 명명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1차 인지혁명이 사피엔스 한 종 안에서 일어난 내부의 도약이었다면, 2차 인지혁명은 사피엔스 바깥에 사고하는 시스템을 두는 외부의 도약이다. 1차가 인간 안에 상상력을 심었다면, 2차는 인간 옆에 상상력을 두었다. 그 옆자리에 놓인 시스템이 이제 인간의 모든 직업, 모든 사고, 모든 상상력의 자리에 동시에 다가온다. 산업혁명이 모든 손의 자리에 다가왔던 것처럼, 정보화가 모든 기억의 자리에 다가왔던 것처럼, AI는 모든 사고의 자리에 다가온다.
그래서 이번 변화가 산업혁명이나 정보화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독자의 직관은 옳다. 지금의 사건은 1차 인지혁명 이후 7만 년 만에 일어나는, 같은 층위에서의 두 번째 사건이다. 그 사이의 모든 혁명들은 같은 강의 지류였다. AI는 새로운 강의 시작이다.
이 점이 분명해지면 또 다른 사실 하나가 따라온다. 격변기에 예측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산업혁명의 한복판에서 1830년 영국의 직조공이 1900년의 자동차 산업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정보화의 한복판에서 1980년의 PC 사용자가 2020년의 스마트폰 경제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1차 인지혁명의 한복판에 있던 어느 사피엔스가 지금의 글로벌 문명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모두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격변기를 살아 낸 사람들이 공통으로 한 일은 단 하나다. 견디는 것이다. ‘그때 사정이 어땠고 어떤 길이 더 나았는지’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의 후 해석으로만 가능해진다. 프랑스 혁명도 중국의 문화대혁명도, 우리는 지금 ‘혁명’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 부르지만 그 안을 살아 낸 사람에게는 피 흘리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삶 전체를 뒤집는 사건이었다. 그들이 그 안에서 무엇을 해야 했는지를 그들은 몰랐다. 그저 견딜 뿐이었다. 그리고 견딘 사람들의 누적이 다음 시대를 만들었다.
지금의 우리도 다르지 않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누가 명확히 말한다면, 그는 격변기의 진짜 모습을 모르는 사람이다. 격변기의 진실은 답이 없다는 것이다. 답이 시간 뒤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답이 없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저 견디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격변기에 향할 수 있는 깊이의 방향들이다. 그리고 그 방향을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도구들이다. 다행히 그 도구는 이미 우리 손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두 번째 생각의 시대
1차 인지혁명이 일어난 후, 사피엔스가 그 도약의 결과를 본격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든 시점이 한 번 더 있었다. 약 BC 800년에서 BC 200년 사이, 인류가 동서를 막론하고 거의 동시에 사고의 깊이를 확장한 시기다.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1949년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기축시대라 부른 시기다.
이 시기에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 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그리고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가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부처와 우파니샤드의 저자들이, 중국에서는 노자와 공자가 나타났다. 페르시아에서는 자라투스트라가,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나타났다. 서로 만난 적 없는 네 문명권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사고의 깊이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야스퍼스는 이 사건을 인류 정신사의 축이라 불렀다. 1차 인지혁명이 인간에게 상상력의 씨앗을 심었다면, 기축시대는 그 씨앗을 가꾸는 도구를 만든 시기였다.
한국의 김용규 작가는 『생각의 시대』에서 그리스의 기축시대가 발명한 다섯 가지 사고의 도구를 정리했다. 호메로스가 씨앗을 뿌리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가꾼 도구들이다.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 이 다섯 도구가 그리스 한 도시에서 시작되어 서양 문명 전체의 사고 방식을 빚었다.
메타포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에 빗대어 이해하는 능력이다. 추상이라는 가장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하는 사다리다. 호메로스가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장미빛 손가락’이라 부른 순간 새벽이라는 시간 현상은 손가락이라는 신체로 건너왔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의 언어를 빌려 인간의 머릿속에 자리를 얻은 셈이다. 아르케는 만물 뒤에 깔린 단 하나의 원리를 찾는 능력이다. 표면을 뚫고 본질로 내려가는 손이다. 탈레스가 모든 것이 물에서 비롯된다고 말한 순간 인간은 하나의 원리로 세계를 묶어 보는 일을 시작했다. 로고스는 흩어진 사실을 하나의 명제로 묶는 능력이다. 사고의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는 그릇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적은 순간 시간과 변화에 관한 인간의 사고는 한 문장 안에 담길 수 있게 되었다. 아리스모스는 세계를 수로 환원해 측정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모호한 직관을 정확한 비교로 바꾸는 저울이다. 피타고라스가 음의 높낮이를 줄의 길이의 비례로 환원한 순간 음악과 수학은 같은 언어로 묶였다. 레토리케는 사고의 결과를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건너가게 하는 능력이다. 진리를 혼자 갖지 않고 같이 나누게 하는 다리다. 소피스트들이 광장과 민회와 법정에서 통할 설득의 기술을 시민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순간 사고는 비로소 공적인 것이 되었다.
이 다섯이 모여 그리스인의 사고를 만들었고, 그 사고가 2,500년 동안 인류의 모든 학문과 정치와 예술의 골격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도구들이 전부 인간의 머릿속 능력이라는 점이다. 종이도, 컴퓨터도, AI도 없던 시절, 인간이 자기 뇌만을 가지고 만들어 낸 도구들이다. 1차 인지혁명이 심은 상상력 위에서 인간이 스스로 빚어낸 두 번째 층이다. 우리는 이 도구를 받아 학교에서 가르치고 책으로 읽고 일터에서 사용한다. 우리 모두가 호메로스와 탈레스와 피타고라스의 후예다.
2차 인지혁명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다섯 도구다. 그리고 이 도구들의 의미가 AI 시대에 비로소 다시 살아난다. 왜냐하면 AI는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짝이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AI와 짝이 되어 작동하려면 인간 쪽에서도 사고가 필요하다. 사고가 약한 사람은 AI 앞에서 단지 결과를 받아쓸 뿐이다. 사고가 깊은 사람은 AI를 자기 사고의 확장으로 쓴다. 이 차이가 2차 인지혁명을 통과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만든다.
메타포라가 강한 사람은 AI에게 자신의 추상을 맡길 수 있다. 적절한 비유로 문제의 본질을 끌어내 AI에게 건네는 일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는다. AI는 익숙한 비유를 잘 변주하지만, 한 분야의 문제를 다른 분야의 비유로 옮기는 도약은 여전히 인간의 일이다. 아르케가 강한 사람은 AI가 쏟아 내는 표면 정보 뒤에서 단 하나의 원리를 찾아낸다.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그 정보의 본질을 묻는 능력이 더 귀해진다. 검색이 답을 주지 못하던 시절에는 답을 찾는 사람이 귀했다. AI가 답을 쏟아 내는 시대에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귀하다. 로고스가 강한 사람은 AI의 답을 검증하고 자기 명제로 묶어 다음 단계로 보낸다. AI의 답을 받아쓰는 사람과 자기 명제로 다시 짜는 사람은 서로 다른 자리에 있게 된다. 아리스모스가 강한 사람은 AI가 내놓는 결과를 측정 가능한 단위로 바꾸어 비교한다. 모호한 좋음과 정확한 좋음의 차이를 안다. 같은 답을 두 번 받아도 어느 쪽이 자기 문제에 더 맞는지를 가려낸다. 레토리케가 강한 사람은 AI의 도움으로 만들어 낸 사고의 결과를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건넨다. 지난 글에서 말한 커뮤니케이션의 자리는 사실 이 레토리케가 차지하는 자리다.
그래서 2차 인지혁명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한 군데가 아니다. 위로 올라가는 커뮤니케이션, 아래로 내려가는 하드웨어, 가장 깊은 곳의 생명. 이 세 방향 위에 다섯 도구가 깔려 있다. 도구를 가진 사람이 방향을 따라 갈 수 있다. 도구가 없으면 방향을 안다 해도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이 다섯 도구를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 곧 두 번째 생각의 시대를 여는 일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을 필요가 있다. 1차 인지혁명을 지나 온 우리에게는 7만 년의 사회적 뇌가 누적되어 있다. 그 뇌는 우리에게 두 가지 자산을 남겼다. 하나는 거대한 협력 네트워크다. 다른 하나는 그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진 모든 지식과 문화, 그리고 그 한복판에 자리한 다섯 가지 사고의 도구다. AI는 이 자산을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자산을 더 멀리 확장하기 위한 도구다. AI는 우리의 사고를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7만 년 동안 꿈꿔 온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구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임을 잊지 않는다면, 그 도구가 우리를 위협한다는 감각은 한 단계 약해진다.
다만 도구가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번 도약이 가벼울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1차 인지혁명을 통과한 사피엔스의 무리 중 살아남지 못한 자들이 있었듯, 2차 인지혁명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무리가 살아남고 어떤 무리가 사라질지는 지금 알 수 없다. 그것은 후 해석으로만 알 수 있는 일이다.
독자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이번 변화가 이전과 같은 맥락의 전환인가, 아니면 질적으로 다른 사건인가? 이전과 같은 맥락이 아니다. 이번 변화는 1차 인지혁명 이래 7만 년 만에 일어나는 같은 층위의 두 번째 사건이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화는 모두 이 사이에 있던 하부 혁명들이었다. 우리는 지금 그 하부 혁명들의 시대를 마치고 새로운 본류로 들어선다.
그래서 이 변화는 광범위하다. 그래서 이 변화는 잔혹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변화에 대한 예측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 1차 인지혁명을 통과해 온 우리의 조상이 그러했듯, 2차 인지혁명을 통과해야 하는 우리도 견디는 것 외에 마땅한 방책이 없다.
다만 두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1차 인지혁명을 통과한 사피엔스는 자기들이 무엇을 통과하고 있는지 몰랐다. 우리는 안다. 지금 이 순간이 7만 년 만의 도약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도약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1차 인지혁명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 곧 상상력이라는 능력 덕분이다. 둘째, 우리는 빈손이 아니다. 기축시대 이래 2,500년 동안 빚어 온 사고의 도구들이 이미 우리 손 안에 있다. 메타포라, 아르케, 로고스, 아리스모스, 레토리케. 이 다섯 도구로 우리는 1차 인지혁명의 결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같은 도구들로 2차 인지혁명을 통과할 수 있다.
안다는 것이 답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도구를 가졌다는 것이 답을 만들어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도구를 가졌다는 것이 함께 견딤의 무게를 조금 다르게 만든다. 아무것도 모른 채 빈손으로 동굴에 앉아 있던 7만 년 전 사피엔스와 다른 자리에 우리는 서 있다.
이 도약의 끝에서 우리가 살아남은 무리의 하나로 남을 것인지, 사라진 무리의 하나가 될 것인지는 지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7만 년 전 그 동굴 안 어느 사피엔스가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며 견뎠듯, 지금의 우리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의 그들과 달리 도구를 쥐고 있다. 그 도구를 다시 손에 익히는 일, 이것이 두 번째 생각의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며, 2차 인지혁명을 인간으로서 통과하는 길이다.
참고 자료
- Yuval Noah Harari,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2011/2014
- Karl Jaspers, 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 (역사의 기원과 목표), 1949
- 김용규, 『생각의 시대 — 역사의 변곡점에서 만난 다섯 가지 결정적 생각 도구』, 살림출판사, 2014
- Jennifer M. Miller & Yiming Wang, “Ostrich eggshell beads reveal 50,000-year-old social network in Africa”, Nature,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