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보다 실행: 비전 vs 현실
비전이라는 신화, 실행이라는 현실
스타트업 업계에서 “비전”이라는 단어는 종종 만능열쇠처럼 추앙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원대한 비전만 있으면 성공에 다가설 수 있다는 환상이 퍼져 있지만, 현실에서 비전의 효과는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소규모 팀으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의 일상에서는 거창한 비전보다는 구체적인 목표, 안정된 급여, 실행력, 팀워크가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비전이 전혀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비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오히려 스타트업 문화의 일종의 신화에 불과하다.
위기에서는 등대, 일상에서는 그림자에 불과한 비전
분명 비전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 위기 상황에서 비전이 마법처럼 조직을 구해낸다는 믿음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오히려 비전은 회사가 일정 수준의 성장 궤도에 올라섰을 때, 구성원들이 일의 양과 속도에 지쳐가고,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반복되는 야근과 빠듯한 마감 속에서 구성원들이 동력을 잃기 시작하는 순간, 비전은 단순한 목표를 넘어 일에 대한 의미와 방향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내적 동기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즉, 비전은 극한의 위기보다는 성장을 견뎌내는 일상 속 피로의 순간에야말로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자산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의 효용은 극한 상황에 한정된다. 평범한 업무가 진행되는 일상적인 날들에는 거창한 비전이 체감될 일이 거의 없다. 직원들은 눈앞의 코딩, 영업 전화, 고객 응대 등 구체적인 업무에 집중하기 마련이며, 이때 먼 미래의 비전은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생각보다 많은 직원들이 비전이 자신의 일상적 업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실감하지 못하고, 비전 선언문이 그들의 업무 방식을 바꾸지 못한다. 요컨대 위기 시에나 통하는 비전은 평소에는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작은 팀일수록 중요한 것은 ‘목표와 데드라인’
특히 구성원 수가 적은 스타트업 팀에서는 “무엇을 언제까지 만들 것인가”라는 명확한 목표 설정이 비전보다 우선한다. 초기 스타트업은 자원이 한정적이고 모든 일이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팀원들이 혼란 없이 움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3개월 내에 MVP를 출시한다거나, 이번 분기 내에 100명의 유료 사용자를 확보한다는 식의 짧은 호흡의 목표가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들은 구성원들에게 현실적인 우선순위를 알려주고, 하루하루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게 해준다. 반면 “세계 최고의 글로벌 플랫폼이 되겠다”는 식의 막연한 비전은 방향성은 줄지 몰라도 당장의 행동 지침이 될 수 없다. 스타트업의 생존은 비전의 크기보다는 실체 있는 결과물을 제때 만들어내는 실행력에 달려 있다. 직원들 역시 회사의 비전보다는 내가 오늘 무엇을 완료해야 내일이 있는지를 고민하게 마련이다.
짧은 주기의 목표 설정은 팀워크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모두가 같은 장기 비전을 막연히 공유하는 것보다, 이번 주에 달성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완수하는 과정에서 팀원 간 신뢰와 협업이 강화된다. 작은 성공의 축적은 곧 자신감의 축적이며, 이는 다시 더 큰 도전에 나설 원동력이 된다. 요컨대 스타트업에서는 거대한 비전을 향해 한 번에 도약하려 하기보다, 단기 목표들을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며 현실적인 성장을 이루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업무 의욕의 기반은 ‘정확한 월급’과 예측 가능성
스타트업 팀원들의 사기는 거창한 비전보다는 현실적인 보상과 안정성에서 나온다. 급여가 제때 정확하게 지급되지 않거나, 다음 달 회사 운영이 불투명하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비전을 들어도 직원들의 마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스타트업이라 해도 기본 급여의 안정성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지론이다. 초기 단계라 연봉 수준이 대기업만큼 높지 않을 수는 있어도, 약속한 날에 약속한 금액의 급여를 확실히 지급하는 것은 직원과 회사 간 신뢰의 가장 기본 조건이다. 이는 직원들의 생활을 지탱해줄 뿐 아니라,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하여 업무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업무의 예측 가능성도 업무 의욕을 결정짓는 요소다. 스타트업에서는 방향 전환이 자연스럽고 필요할 수 있지만, 실제로 구성원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전략의 변화 자체보다는 단기적인 업무 지시가 분명하지 않거나, 일의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을 때이다. 오늘 맡은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그것이 팀의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 수 없다면 누구라도 집중하기 어렵다. 반면, 짧은 주기의 업무 지시라도 명확하게 떨어지고, 그것이 원하는 결과물로 이어졌을 때 팀원들은 성취감을 느끼고 다음 과제에도 몰입하게 된다. 결국 직원들이 안심하고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려면, 기본적인 경제적 안전망과 일정 정도의 업무 예측 가능성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비전은 그 다음의 일이다.
‘비전’에 대한 과신은 스타트업만의 착각
스타트업 문화에서 ‘비전’은 일종의 신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창업자들은 투자자와 언론 앞에서 원대한 비전을 이야기하고, 직원들에게도 “우리의 비전이 얼마나 고귀한가”를 주입하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비전에 대한 과신이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은 당신의 비전에 관심이 없다. 고객은 자신의 문제에 관심이 있을 뿐이며, 그 문제를 누가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해결해주는가에 따라 선택을 내린다. 화려한 미래상이 아니라, 오늘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제품과 서비스가 진정한 설득력이다. 고객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제품과 서비스이지, 창업자가 꿈꾸는 미래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 스타트업은 비전만 그럴듯하면 시장이 따라올 것처럼 착각한다. 이렇듯 ‘비전’이라는 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는 비전은 공허한 약속에 불과하며, 위기가 닥쳤을 때 회사를 구해내는 것은 멋진 비전 문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해결책과 행동이다. 비전이 조직 문화와 방향성의 명분이 될 수는 있어도, 당장 닥친 불을 끄는 소화기 역할은 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스타트업 신화 가운데는 카리스마 넘치는 비전 제시로 모든 문제가 풀릴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상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화려한 비전보다 치밀한 실행과 시장의 요구 해결에 집중한다. 아이디어나 비전만으로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시장은 실행으로 움직이며, 실제로 제품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실행력이야말로 스타트업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다. 현장의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탁상 위의 비전보다는,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리는 팀워크와 하나씩 성과를 쌓아가는 보람에서 더 큰 동기부여를 얻는다.
팀워크와 단기 성과가 만들어내는 실질적 성장
궁극적으로 스타트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훌륭한 팀워크와 꾸준한 실행력이다. 조직이 함께 움직여 성과를 낼 수 있는 협업 문화가 없다면, 뛰어난 비전 제시도 공허하게 끝날 뿐이다. 반대로 수평적인 소통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는 팀은 어려운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비전은 입으로 전파되지만 팀워크는 행동으로 증명된다. 구성원 각자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헌신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설령 처음 비전이 모호했더라도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나갈 수도 있다.
짧은 주기의 목표 달성과 작은 성공의 축적은 스타트업 성장의 밑거름이다. 성과가 쌓일수록 투자자나 고객과의 신뢰도 쌓이며, 이는 다시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처럼 단기 목표의 성공적 달성 → 팀 사기 진작 → 다음 목표 도전의 선순환이 이어질 때, 스타트업은 비로소 비전이라 부를 만한 성과 지향적인 큰 그림을 그려갈 수 있게 된다. 결국 눈앞의 실천이 모여 비전을 현실로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가 통한다.
절대적 확신이 있을 때만 비전은 빛난다
역사 속 사례를 보면, 리더가 자신의 비전에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모든 것을 걸 때에만 그 비전이 힘을 발휘한 경우가 있다. 조선 시대 이순신 장군은 나라가 풍전등화에 놓인 순간에도 끝까지 바다를 지키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칠천량 해전 패배 후 12척밖에 남지 않았을 때 조정에서는 수군 해체를 명했지만, 이순신은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으며, 내가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 수군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리더인 그가 스스로 비전의 실현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남은 병사들도 따를 수 있었고 결국 명량해전의 기적과 같은 승리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 사례는 비전이 말로가 아니라 행동과 확신으로 입증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타트업의 리더들도 비전을 말로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결단력과 실행으로 비전을 증명해야 한다. 적당한 각오로 내세운 비전은 조직을 오래 끌고 가지 못한다. 결국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팀의 헌신, 그리고 작지만 확실한 성과들의 축적이 스타트업을 위기에서 구하고 성장으로 이끈다. 비전은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명패와 같을 것이다.
화려한 비전보다 단단한 현실을 추구하라
비전은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일 수 있지만, 항상 현실이라는 바다 위에서 작동해야 의미가 있다. 스타트업에서는 비전을 과신하기보다는 현실적인 목표와 확실한 실행으로 실속 있는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크고 멋진 꿈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 다시 그려도 늦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 팀이 당장 성취해야 할 일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이다. 비전이라는 이상향에 도취되기보다, 발 밑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갈 때 오히려 그 비전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 스타트업 현장의 교훈이다.
마지막으로, 비전은 명분이 될 수 있어도 만능 해결사가 아님을 명심해야한다. 스타트업 구성원들에게 정말로 힘을 불어넣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해내는 경험과 앞으로도 해낼 수 있다는 실질적인 자신감이다. 화려한 비전보다는 단단한 현실을 추구하는 자세가, 장기적으로 더 큰 성공과 이상을 실현하는 지름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