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경, 미국 버지니아주 NASA 랭리 연구센터의 한 흑인 여성이 도서관 구석에서 책을 빌렸다. 책 제목은 ‘Fortran Programming Language’였다. 여성의 이름은 도로시 본(Dorothy Vaughan)이었고 그의 직업은 ‘computer’였다. 그 시절 NASA에서 ‘computer’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직책이었다. 종이와 연필로 로켓의 궤도를 손계산하는 수십 명의 여성, 그녀들이 ‘human computer’였다.

이즈음 IBM 7090이 NASA에 들어왔다. 진공관으로 가득 찬 이 거대한 기계는 수십 명이 며칠 걸리던 계산을 몇 분 만에 끝냈다. ‘computer’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동료들은 해고를 두려워했다. 도로시 본은 다른 길을 택했다. 도서관에서 Fortran 매뉴얼을 빌려 자신과 팀 전체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쳤다. IBM이 ‘computer’라는 직업을 없앴지만, 그녀는 그 IBM을 다루는 사람이 되었다. 직업 하나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직업이 들어섰고, 본은 그 위로 한 층 올라섰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가 보여준 이 장면은 단순한 인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동화가 사람을 대체할 때 그 자동화의 위에 올라탈 수 있다는, 시대 전환기의 가장 본질적인 풍경이다.

그로부터 70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도로시 본이 올라탔던 그 자리, 즉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AI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면 취업이 잘되는 분야였다.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다. AI를 만든 프로그래머들이 그 AI에게 자기 일을 빼앗기고 있다. 이 속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10년 후면 일하는 사람의 절반이 무직이 되고, 20년 후면 10%만이 직업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가?

질문은 더 깊은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전제가 먼저 서야 한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치를 만드는 일과 노동은 같지 않다. 다가오는 시대에는 인간의 가치를 노동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출생률이 떨어져도 지금 살아 있는 인류 절반인 40억은 앞으로 50년은 이 땅에 산다. 이들이 무가치하지 않음을, 가치 있는 존재임을 다른 무엇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는 동시대인 모두에게 던져진 숙제다. AI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갈 길은 결국 우리 자신의 가치를 세우는 데 있다. AI가 아무리 위대해져도 인간은 가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단 몇십 년의 시간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AI 시대에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야 할 곳은 한 군데가 아니다. 길은 여러 갈래로 열려 있고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더 깊은 곳, 그리고 더 본질적인 곳이다. 도로시 본이 ‘computer’에서 프로그래머로 한 층 올라갔듯, 지금의 우리는 한 층 올라가는 동시에 한 층 더 깊이 내려가야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깊다.

평생 같은 일을 하던 시대가 끝났다

프로그래머의 일에는 특이한 패턴이 있다. 처음 한 일을 평생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은행에서 여신·수신 시스템을 만들었던 개발자는 평생 여신·수신 프로그래머로 산다. 쇼핑몰을 만든 개발자는 20년, 30년 동안 쇼핑몰만 만든다. 회사를 옮겨도 결국 같은 도메인의 비슷한 시스템이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다. 회계사는 평생 회계를 보고, 변호사는 평생 소송을 다루고, 의사는 평생 자기 진료과를 본다. 인간은 한번 들어선 길에서 평생을 산다. 이 길고 좁은 전문성이 바로 산업화 이후 인간이 가치를 증명해온 방식이었다.

AI 시대에는 이 방식이 가장 빠르게 무가치해진다. 여신·수신, 쇼핑몰만이 아니다.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도 AI가 너무나 잘한다. 2025년 9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ICPC 세계결승에서 OpenAI의 추론 모델은 12개 문제를 모두 풀었다. 같은 조건이면 인간 대학팀 1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Google DeepMind의 Gemini 2.5 Deep Think는 10개를 풀어 금메달 수준에 도달했다.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의 가장 똑똑한 학생 수천 명이 모인 자리에서 단 한 팀(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만이 11개를 풀었다. 나머지 인간 팀들은 모두 AI 두 모델보다 못한 결과를 받아들었다.

ICPC가 학생 대상이라면 Codeforces는 현역 최강자들의 무대다. 2026년 4월 공개된 DeepSeek V4-Pro의 Codeforces 레이팅은 3,206이다. 같은 시점 GPT-5.4가 3,168, Gemini 3.1이 3,052를 기록했다. Codeforces에서 3,000을 넘는 ‘Legendary Grandmaster’ 등급은 현재 활성 사용자 약 60명에 불과하며, 역대 도달자도 약 100명뿐이다. 결국 어떤 코드를 짜든, 그것이 복잡하든 단순하든, 평범한 프로그래머는 AI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AI보다 잘 코딩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몇 명 남지 않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AI는 분야와 분야를 넘나들며 연결하는 일도 잘한다. 한 사람이 30년 걸려 쌓은 도메인 지식을 AI는 며칠이면 흡수한다. 코드의 깊이뿐 아니라 폭에서도 인간은 우위를 잃었다. 평생 같은 일을 해온 전문성, 그것이 산업화 이후 인간이 자기 자리를 지키던 방식이었지만 이제 그 자리는 비어 가고 있다.

이 변화는 산업의 모든 층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다. 시니어 개발자가 주니어 한 명을 데리고 일하던 풍경은 사라지고 있다. 대신 시니어 한 명이 다섯 명, 열 명의 AI 에이전트를 동시에 운영한다. SI 프로젝트도 다르지 않다. 100명이 들어가던 프로젝트가 10명, 5명으로 줄어든다. 이때 살아남는 10명은 어떤 사람들인가? 코드를 가장 잘 짜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일은 AI가 한다. 살아남는 사람은 전혀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 다른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 장의 주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5만 2천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누군가가 타조알 껍질을 깨서 작은 구슬을 만들었다.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끈에 꿰었다. 이 구슬은 음식이 아니었고 도구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결혼반지나 왕관처럼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신호였다. 같은 모양의 구슬이 동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까지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발견된다. 5만 년 전에 이미 사피엔스는 거대한 사회망을 운영하고 있었다. Nature지에 실린 연구는 이를 ‘인류 최초의 소셜 네트워크’라 불렀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인간은 5만 년 동안 같은 일을 해왔다는 것이다. 만들고, 꾸미고, 신호를 보내고, 다른 인간과 연결하는 일. 이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려면 5만 년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대 인간의 일은 AI 시대에도 살아남는다.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더 잘된다. 카페, 미용실, 상담소 같은 사람의 본능에 맞닿은 일들은 지금보다 잘될 것이다. 사람들이 AI에게 코드를 시키고 남는 시간은 카페에서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AI가 채우지 못한다. AI가 위로해도 그것은 위로의 모양일 뿐, 위로 그 자체는 아니다. 사람이 사람의 손을 잡는 일은 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프로그래머의 일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AI가 아무리 코딩을 잘해도, 그 코드를 누구를 위해, 왜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사람이 한다. 클라이언트의 모호한 요구를 분석하고, 팀과 합의하고, 의사결정을 끌어내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즉, 프로젝트에 사람이 많이 들어갈수록 그 프로젝트는 ‘AI스럽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사람이 벽이고 사람이 일을 느려지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점이 아니다.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대체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의 수를 줄이는 쪽으로는 갈 것이다. 100명짜리 프로젝트는 10명짜리 프로젝트가 된다. 그 10명은 단 하나의 능력으로 선발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한 ‘말 잘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클라이언트의 진짜 문제를 파악하는 능력, 모순된 요구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잡는 능력, 어려운 결정을 설득하는 능력, 갈등을 봉합하는 능력이 모두 여기에 들어간다. 이 능력은 코드를 짜는 능력과 완전히 다른 회로를 쓴다. 코드를 못 짜던 프로그래머가 잘 짜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시간을 들이는 태도만 있다면 누구든지 익힐 수 있다. 이것이 AI 시대 프로그래머가 살아남는 첫 번째 길이다.

같은 원리는 다른 직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의사가 살아남는 길은 진단 정확도가 아니라 환자와의 신뢰 관계다. 변호사가 살아남는 길은 판례 검색 속도가 아니라 의뢰인과의 공감이다. 회계사가 살아남는 길은 숫자 계산이 아니라 경영자에게 의미를 설명하는 능력이다. AI 시대의 모든 직업은 결국 ‘사람과 만나는 부분’으로 좁혀진다. 이는 위축이 아니라 본질로의 회귀다. 5만 년 전 타조알 구슬을 만들던 사피엔스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비트와 원자가 만나는 곳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인간이 위로 올라가는 길이라면, 다른 한 길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다. 프로그래머는 보통 한 단계의 추상화에서 일한다. 웹 개발자는 React 위에서, 백엔드 개발자는 Spring 위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는 Spark 위에서 일한다. 이 추상화 층은 AI가 가장 잘 다루는 영역이다. 학습된 코드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고, 패턴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층에서는 AI를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추상화의 사다리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가장 아래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드웨어가 있다. AI가 발전해도 PCB 보드를 직접 설계하고 IC와 저항과 콘덴서를 조합해 회로를 만드는 일은 아직 어렵다. AI는 손이 없기 때문이다. AI에게 몸과 자유로운 손이 생기는 시대도 머지않아 오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회로 설계 보조와 펌웨어 작성은 AI가 잘한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저수준 최적화도 잘한다. 사실 매우 잘한다. 이 영역은 시간과 공이 많이 들고 인간이 잘 못하는 일이라 오히려 AI에게 적합하다. 그러나 하드웨어 자체를 디자인하고,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하고, 개선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사람의 영역으로 남는다.

이 영역에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AI에게 대체되기 어렵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영역의 일은 디지털 데이터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드를 만지고, 납땜을 하고, 오실로스코프를 보고, 고장 난 부품의 냄새를 맡는 일이다. 이 모든 감각이 인간에게 깃들어 있다. AI가 보고 듣게 되더라도 이 영역에 도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원리가 한 단계 더 위에서 작동하는 곳이 제조 현장이다. 한국의 공장을 가보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하나 있다. “아날로그 데이터를 어떻게 디지털로 바꿉니까?” 이미 디지털화할 수 있는 데이터는 모두 데이터로 변환한 회사가 많다. 그러나 30년, 40년 일해온 숙련공의 감각은 여전히 디지털화되지 못한 채 그 사람의 손에 남아 있다. 용접공의 손이 떨리는 미세한 패턴, 도금공이 색을 보고 시간을 가늠하는 직관, 금형 장인이 두드리는 소리로 결함을 읽는 능력. 이런 것은 매뉴얼에 적히지 않는다. 적힐 수도 없다. 본인도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폴라니가 말한 ‘암묵지’다.

이 암묵지를 디지털로 옮기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 서로게이트(surrogate) 로봇이다. 숙련공이 VR 장비를 쓰고 휴머노이드 로봇을 자기 몸처럼 조종하면서 작업한다. 로봇의 손이 움직이는 데이터, 시선이 향하는 방향, 힘의 강약, 결정의 순서가 모두 데이터로 기록된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로 로봇을 학습시키면 그 숙련공의 노하우가 디지털로 복제된다. 한 사람의 평생 경험이 다음 세대로, 그리고 다른 공장으로 옮겨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일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숙련공들이 VR 장비에 거부감이 없을까? 손주뻘 되는 공돌이가 가르치는 인터페이스를 받아들일까? 여기에서 또 한 번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등장한다. 하드웨어를 잘 다루고, 소프트웨어를 알며, 장인과 마주 앉아 그의 자존심을 지키며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 이런 사람이 아날로그 데이터를 디지털로 바꿀 수 있다. AI 팩토리 또는 다크 팩토리(불 꺼진 무인 공장)를 진정으로 만드는 사람은 가장 똑똑한 알고리즘 엔지니어가 아니라, 장인의 등을 두드릴 수 있는 엔지니어다. 위에서 말한 두 능력 — 위로 올라가는 커뮤니케이션과 아래로 내려가는 하드웨어 — 이 한 몸에 만나는 자리다.

생명이라는 코드, 가장 깊은 단계

이보다 더 깊은 단계가 있을까? 있다. 인간과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영역이다. 보통 로봇과 사람을 다른 범주로 보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둘은 같은 우주의 법칙을 따르는 같은 종류의 존재다. 어떤 동작 방식이 로봇에게 작동한다면, 같은 방식이 사람에게도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로봇으로 어떤 동작이 불가능하다면 사람도 그렇게 동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주는 한 벌의 법칙으로 운영되며 그 안에서 생명과 기계는 같은 추상화 위에 놓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생명은 그저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를 산업적 규모로 증명했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mRNA 백신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생명을 코드로 짠’ 의약품이었다. mRNA의 염기서열 한 줄을 바꾸면 면역계가 다른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프로그래밍이다. DNA와 RNA는 4진법(A, T, G, C)으로 정보를 기록하고, 리보솜이라는 컴파일러가 이를 20개 아미노산의 조합인 단백질로 번역한다. 디지털 컴퓨터가 사람이 쓰는 고수준 언어를 이진법 기계어로 번역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다. 번역자가 다를 뿐, 추상화의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이 사실의 의미는 매우 크다. 생명을 다루던 화학자, 약학자, 의학자의 일이 본질적으로 프로그래머의 일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반대 방향도 성립한다. 프로그래머가 생명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생명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다. 산업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에서 반도체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는 삼성전자이고, 위탁생산(CDMO) 기준으로 바이오 의약품을 가장 잘 만드는 회사 역시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우연이 아니다. 반도체와 바이오는 같은 원리로 제조된다. 클린룸의 정밀 환경, 공정의 미세한 변수 통제, 수율을 끌어올리는 통계적 관리, 분자 수준의 결과물 — 모두 같은 추상화 위에 있다. ‘IT를 잘하는 회사가 결국 바이오도 잘한다’는 명제는 여기서 나온다.

이 시대에 누가 생명을 코딩하는가? 지금까지는 의대를 나온 의학자, 약대를 나온 약학자였다. 그러나 이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GitLab의 공동창업자 시드 시브란데이(Sid Sijbrandij)다. 그는 2022년 골육종(osteosarcoma) 진단을 받았다. 골육종은 1년에 미국 전체에서 1,000명 미만이 걸리는 희귀한 뼈 암이며, 표준 치료 후 재발하면 생존 기간이 보통 수개월 단위로 측정된다. 시브란데이도 표준 치료(수술, 방사선, 화학요법)를 모두 거쳤지만 암은 다시 돌아왔다. 의사는 더 이상 표준 치료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시점에서 시브란데이는 GitLab CEO 자리를 내려놓고 ‘Founder Mode’를 자기 몸에 적용했다. 세포 하나하나의 유전자 활동을 읽어내는 단일세포 RNA 시퀀싱, 종양 전체의 DNA·RNA 분석, 정밀 영상 진단, 자기 종양세포로 미니 장기를 배양해 약물 반응을 미리 보는 오가노이드 모델링까지 동원해 자기 종양에 대한 25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모았다. 의사를 기다리는 대신 ChatGPT와 GPT API에 데이터를 직접 던졌다. 화학요법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로 의심된 CHIP — 항암제 때문에 혈액 줄기세포에 비정상 돌연변이가 쌓이는 현상 — 을 검증해야 했을 때, AI는 약 20달러어치 API 비용으로 30분 만에 관련 논문을 모두 훑고, 가설을 세우고, 그의 혈액에서 분리한 60만 개 세포 데이터에 Python 코드를 직접 실행해 결론을 내렸다. 그의 팀은 종양 세포 표면에서 유독 많이 발현되는 FAP라는 표지자를 찾아냈고, 이 표지자에만 달라붙는 방사성 의약품으로 종양만 골라 공격하는 방사성리간드 치료를 독일 CURANOSTICUM에서 받았다. 동시에 종양에 많은 B7H3 단백질을 표적으로,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T세포)를 무기처럼 개조해 종양을 공격하게 만드는 CAR-T 세포 치료도 직접 설계했다. 결과는 종양의 축소 후 수술 가능 상태, 그리고 현재 검사상 암이 보이지 않는 무병 상태(no evidence of disease)다. 그의 치료 일지는 2025년 한 해 동안 1,000페이지가 넘게 쌓였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시브란데이가 천재적 의학자라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의학자가 아니다. Ruby 프로그래머 출신의 엔지니어다. 그가 한 일은 본질적으로 디버깅과 같았다. 시스템(자기 몸)에 버그(암)가 있고, 로그(생체 데이터)를 모으고, 가설을 세우고, 패치(치료법)를 적용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차이는 단 하나, 사용한 언어가 컴퓨터 언어가 아니라 생명의 언어였다는 점뿐이다. 그가 이 언어의 사전을 가지고 있었다면 의사 없이도 가능했을 것이다. 가지고 있지 못했기에 ChatGPT를 사전으로 썼고 의사들을 통역으로 썼다.

이것이 프로그래머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의 영역은 좁아진 게 아니라 무한히 넓어졌다. 컴퓨터 언어를 익혔던 사람은 이제 생명의 언어를 익히면 된다. 학습 곡선은 가파르겠지만 추상화의 구조는 같다. 프로그래밍의 원리, 시스템 사고, 디버깅의 습관은 그대로 옮겨갈 수 있다. 코드 한 줄로 백만 명이 쓰는 서비스를 만들던 능력은, 코드 한 줄로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능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우리는 더 큰 그림 앞에 서 있다

도로시 본은 IBM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IBM 위에 올라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AI에게 코드의 자리를 내어주는 대신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위로는 사람을 다루는 일, 아래로는 하드웨어와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두 길은 따로 보이지만 결국 한 곳에서 만난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는 방향이다.

AI는 우리를 좁은 골목으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다. 좁은 골목에 갇혀 있던 우리를 광장으로 끌어낸 것이다. 평생 같은 일만 하던 시대, 한 우물만 파면 가치가 인정되던 시대는 사실 인간을 가두는 시대였다. AI는 그 우물을 메우고 있다. 우물이 사라지면 우리는 광장으로 나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처음에는 두렵지만 결국 더 자유로워진다.

귀찮고 반복되는 일은 AI에게 맡기면 된다. 우리는 더 위대한 일을 할 시간을 얻는다. 그 위대한 일이 어느 정도 완성에 이르면 다시 AI에게 넘기고, 우리는 더 깊은 곳으로 또 한 발짝 내려간다. 이 과정이 반복될 때마다 인간은 자기 안의 더 본질적인 자리를 발견한다. 5만 년 전 타조알 구슬에 새기던 그 신호, 사람과 사람을 이어 붙이던 그 본능, 우주의 법칙을 읽어내려는 그 호기심. 이것이 인간의 영역이고 AI의 성능과는 무관한 영역이다.

대체될까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두려움은 시야가 좁기 때문에 생긴다. 시야가 좁을 때 우리는 자기 발밑의 골목만 보고 그 골목이 사라지는 것을 세상의 끝으로 받아들인다. 시야를 들어 광장을 보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이 무수히 많음을 알게 된다. AI가 우리에게 한 일은 결국 시야를 강제로 들어 올린 일이다. 더 큰 그림을 보라고 등을 떠민 것이다.

각성하라. 우리는 AI에게 직업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더 큰 범주를 선물 받은 것이다. 이 범주를 받아 들고 더 위대한 일로, 더 깊은 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마저 완성되어 AI에게 넘길 수 있을 때, 우리는 또 한 번 다른 자리로 옮겨갈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주에서 가지는 가장 높은 가치, 즉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로서의 자리로 말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