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저, AI 에이전트의 새로운 격전지

“이 웹사이트에서 가장 싼 상품을 쿠폰 적용해서 주문해줘.” 이 한 마디면 AI가 알아서 여러 사이트를 열고, 가격을 비교하고, 최종 구매까지 완료한다. 1990년대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가 격돌했던 브라우저 전쟁이 AI 시대에 새로운 양상으로 재현되고 있다. 구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수많은 스타트업이 “에이전트 브라우저”라는 새로운 전장에 뛰어들었다.
AI 에이전트, 브라우저에서 전쟁을 시작하다
AI 에이전트를 브라우저에서 동작시키려는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2025년 3월 등장한 Manus는 대표적인 예다. 중국 스타트업 모니카(Monica)가 개발한 Manus AI는 챗봇을 넘어 직접 웹을 탐험하고 조작하는 최초의 범용 AI 에이전트로 화제를 모았다. 사용자로부터 복잡한 목표를 하나 받으면, 여러 단계로 계획을 세워 웹페이지 버튼을 클릭하고 폼을 입력하는 등 실제 브라우저 작업을 수행한다.
Manus가 “웹을 서핑하며 일을 해주는 AI 비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자, 곧바로 퍼플렉시티(Perplexity) 등 신생 기업들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퍼플렉시티는 자체 AI 검색 엔진을 발전시켜 2025년 7월 Comet이라는 AI 브라우저를 내놓았다. Comet은 사용자의 질문에 웹 검색과 요약은 물론, 전자우편 관리나 일정 조율 같은 작업까지 돕는 인지 OS를 표방하고 있다.
오픈AI 역시 브라우저 전쟁에 참전했다. 2025년 10월 21일 오픈AI는 ChatGPT Atlas라는 자체 AI 브라우저를 macOS용으로 정식 출시했다. 크로미움(Chromium) 기반의 이 브라우저는 기존 크롬 생태계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챗GPT 인터페이스를 브라우저 경험의 중심에 둔 형태다. Atlas는 사용자가 웹사이트를 일일이 방문하지 않고도 대화창에서 모든 정보를 얻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마치 브라우저 속에 ChatGPT가 내장된 모습으로, 오픈AI가 구글 크롬에 정면 승부를 거는 전략인 셈이다.
이처럼 AI 브라우저 전쟁에는 신생 스타트업부터 빅테크까지 참전하고 있다. 기존 브라우저 강자들도 AI 기능을 채택하며 대응 중이다:
- 구글: 크롬에 생성형 AI를 통합하고 검색에 AI 모드를 도입했다. Gemini 모델로 이미지·영상까지 이해하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 마이크로소프트: 엣지에 GPT-5 기반 Copilot을 심어 브라우저와 OS 전반에서 AI 지원을 제공한다.
- Anthropic: 2025년 8월 Claude for Chrome을 발표하며 에이전트 브라우저 시장에 진입했다. 웹페이지 분석과 작업 자동화를 지원한다.
- 오페라: Opera Neon을 통해 웹 탐색, 작업 수행, 콘텐츠 생성을 브라우저가 자동 처리하는 에이전틱 브라우저를 표방했다.
- 브레이브: 프라이버시 중심 브라우저에 AI 비서 Leo를 추가했다. 데이터를 외부로 보내지 않고 페이지 요약과 번역을 처리한다.
- 더 브라우저 컴퍼니: Arc의 차세대 프로젝트 Dia에서 AI 멀티태스킹에 최적화된 브라우저를 재설계하고 있다.
요컨대, “브라우저가 대신 탐색하고 행동한다”는 개념이 현실화되면서, 이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새로운 브라우저 전쟁을 촉발한 모습이다. 이번 브라우저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지, 그리고 우리의 인터넷 사용 방식은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집중된다.
구글 크롬의 해자: 가장 유리한 고지
이 경쟁에서 현재 가장 앞서 나가는 플레이어는 구글이다. 구글은 전 세계 브라우저 시장의 약 70%를 장악한 크롬을 보유하고 있다. 안드로이드라는 모바일 생태계와 최신 LLM Gemini까지 갖추고 있다. 배포 채널, 수익 기반, 핵심 기술을 모두 쥔 구글이 AI 브라우저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구글은 기존 사용자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서 AI 경험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전략을 취했다. 사용자는 별도 앱 설치 없이 크롬에서 구글 검색만 해도 AI 생성 답변을 접할 수 있다. 2023년 도입된 생성형 검색 경험(SGE)은 질문에 대한 요약 답변을 검색 결과 최상단에 보여준다. 2024년부터는 Gemini 기반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더 강력한 추론과 멀티모달 처리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를 통해 구글은 사람들이 ChatGPT 사이트에 가지 않고도 크롬 안에서 대부분의 정보 탐색과 간단한 업무를 해결하게 만들고 있다. 기술 커뮤니티에서는 “이젠 굳이 유료 ChatGPT를 쓸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로 2025년 말부터 ChatGPT 플러스 구독을 취소하고 구글로 갈아탔다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구글 원 요금제로 가족 전체가 Gemini를 쓸 수 있어 챗GPT 플러스를 해지하는 유저들이 늘어나고 있다.
구글의 행보는 자율주행 분야의 테슬라를 떠올리게 한다. 테슬라가 축적한 주행 데이터로 FSD 기술을 표준에 가깝게 끌어올린 것처럼, 구글은 크롬/안드로이드 생태계라는 해자를 바탕으로 AI 브라우저 주도권을 확보했다. 크롬에 적용되는 방식은 사실상 업계 표준이 될 공산이 크다. 구글 입장에서 외부 AI 에이전트가 검색 광고를 우회해 직접 구매를 처리하는 상황은 달갑지 않다. 그래서 AI 통제권을 자사 플랫폼 내부에 유지하면서 편의 기능을 제공하는 균형 전략을 택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반 소비자 대상 AI 브라우저 시장에서 구글의 우위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변수도 만만치 않다. OpenAI의 Atlas는 출시 3개월 만에 빠르게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고, Anthropic의 Claude for Chrome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사용자층을 공략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Bing과 오피스 전반에 Copilot을 통합하며 기업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습관의 장벽은 높다. 수십억 사용자가 쓰는 크롬을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실제로 업무 생산성을 높여준다면, 사용자들은 기꺼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시도할 수 있다. 범용 시장은 구글이 유리하지만, 개발자·크리에이터·기업 고객 같은 틈새 시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UI/UX의 긴 그림자와 새로운 프로토콜, 그리고 현실적인 해법
한편, AI 에이전트의 이상적인 청사진을 그려보면 웹과 앱 등 모든 디지털 서비스들이 하나의 통일된 프로토콜로 AI와 직접 소통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즉, 사람 대신 AI가 각 서비스와 표준화된 언어로 대화하여 작업을 처리하고, 사용자는 자연어 명령만 내려도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움직임으로 A2A (Agent-to-Agent) 프로토콜이나 MCP (Model Context Protocol) 같은 표준안 논의도 시작되었다. 구글이 주도하는 A2A는 서로 다른 AI 에이전트들이 수평적으로 직접 통신하는 언어를 만들자는 시도이고, Anthropic이 개발한 MCP는 개별 AI 모델이 외부 도구나 데이터에 접근하는 표준을 정하려는 접근이다. 얼핏 보면 AI 시대의 HTTP를 만들려는 야심찬 프로젝트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방형 표준이 현실에 정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우선 기술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플랫폼과 데이터 장벽을 허무는 이러한 시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애플이 iOS와 앱스토어를, 구글이 검색과 크롬을 쥐고 수익을 내왔는데, 굳이 외부 AI 에이전트들에게 표준화된 열쇠를 쥐여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와 사용 경험에 대한 통제권은 곧 경제적 해자이며, 이를 쉽게 개방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현재 논의되는 MCP 같은 접근은 구현보다 논의 단계에서 머물 가능성이 높고, 설사 업계 표준이 마련된다고 해도 전 세계 수백만 서비스가 모두 채택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가장 낡은 인터페이스인 UI가 가장 유용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AI 브라우저가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웹사이트나 앱들이 공식 API를 열어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인간 사용자와 똑같이 UI를 통해 들어가는 AI를 만들자는 것이다. AI가 웹페이지의 코드를 읽고, 화면 요소를 분석하며, 버튼을 클릭하고 텍스트를 입력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AI 에이전트의 접근법이다.
실제로 Manus나 Browser Use 같은 프로젝트들은 UI 자동화를 통해 AI에게 웹의 눈과 손을 쥐여주었다. 이 접근은 수많은 기존 서비스를 별도 협의 없이 곧바로 활용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새로운 프로토콜보다는 느슨하지만 당장 작동한다. 대형 IT 서비스부터 전자정부 사이트, 기업 내부 시스템까지 대부분이 사람이 화면을 보며 조작하는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UI라는 프론트엔드 계층은 상당 기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결국 AI 에이전트의 발전 단계에서 지금은 과도기다. 온전히 자연어로 모든 서비스를 이용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그 사이를 잇는 교량으로서 브라우저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빅테크들도 이를 잘 알기에 운영체제, 전용 하드웨어와 함께 브라우저 자동화를 AI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업계에서는 “AI 브라우저가 새로운 OS가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사용자 입장에서 AI 브라우저는 무엇을 의미할까?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 항공권, 숙소, 현지 투어를 일일이 검색하고 비교하던 수고가 사라진다. “4월 도쿄 3박 4일 여행, 예산 150만원”이라고 말하면 AI가 최적의 일정과 예약 옵션을 정리해준다. 업무에서는 경쟁사 동향 리서치, 보고서 초안 작성, 미팅 일정 조율을 브라우저에게 위임할 수 있다. 쇼핑할 때는 여러 사이트의 가격과 리뷰를 AI가 종합해 최선의 선택지를 제안한다.
지금 벌어지는 에이전트 브라우저 전쟁은 단순히 편의 기능 하나 추가하는 경쟁이 아니다. 디지털 경제의 관문을 장악하기 위한 패권 다툼이다. 구글의 우위는 분명하지만, OpenAI·Anthropic·마이크로소프트 모두 독자적인 강점을 갖고 있다. 단순한 검색을 넘어 브라우저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동반자가 되는 미래가 다가왔다. 최종 승자가 누가 되든, 사용자들은 더 편리한 웹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참고 자료
OpenAI Follows Perplexity Into AI-Based Web Browsing
Browser War III: The Rise of the AI Web
Manus AI: Web-Enabled Agents for the Enterprise
Generative AI in Search: Let Google do the searching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