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프레임의 귀환

컴퓨팅 기술의 발전사는 중앙집중형과 분산형 구조 간의 진자 운동에 비유될 만큼 극적인 변화를 거듭해왔다. 1950년대 거대한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등장으로 시작된 중앙집중형 패러다임은 1980~90년대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을 통해 분산형 패러다임으로 대대적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며 모바일 기기와 클라우드 컴퓨팅이 부상하면서 다시금 연산이 중앙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AI와 GPU 기반 초거대 연산의 시대에 이르러, 우리는 컴퓨팅 구조가 마치 반세기 전 메인프레임 시절로 회귀하는 듯한 흐름을 목도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시대별 컴퓨팅 패러다임의 변천사를 일관되게 살펴보고, 클라우드 게임이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의 엣지 컴퓨팅 활용, 그리고 AI 코딩 도구의 부상을 사례로 들어 중앙집중형 메인프레임 모델로의 회귀 현상을 분석하려 한다. 이를 통해 동일한 연산을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에너지·비용 효율 등 중앙집중형 모델의 장점을 조명하고, 진자처럼 흔들려온 컴퓨팅 패러다임이 AI 시대에 어떻게 메인프레임식 구조로 수렴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메인프레임의 태동: 중앙집중형 컴퓨팅의 시작 (1950~70년대)

디지털 컴퓨팅의 태동기인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주역이었다. 메인프레임은 거대한 물리적 크기와 막대한 비용을 수반했지만,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복잡한 계산과 데이터 처리를 수행할 수 있는 중앙집중식 기계였다. 하나의 메인프레임을 여러 사용자가 공유하는 시간 분할 개념이 1960년대에 도입되어, 대학이나 대기업의 중앙 컴퓨터에 다수의 터미널를 연결함으로써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한 대의 컴퓨터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에서 개별 사용자의 단말기는 일종의 멍청한 터미널로서 입력과 출력만 담당하고, 실제 연산 처리는 모두 중앙의 메인프레임에서 이루어졌다.

메인프레임 시대의 중앙집중형 모델은 자원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패러다임이었다. 매우 비싼 컴퓨팅 자원을 한 곳에 모아두고 필요한 사람들이 시간을 분할하여 공동 이용함으로써, 당시 제한된 연산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예컨대 1964년 IBM이 발표한 System/360 메인프레임은 범용 컴퓨팅 플랫폼의 서막을 열며 다양한 산업 분야에 도입되었는데, 여러 부서와 업무가 한 기종 위에서 실행되는 통합 환경을 제공했다. 이러한 통합은 오늘날 클라우드의 미리보기라 할 수 있다. 중앙에서 한번 수행한 계산 결과를 여러 사용자가 공유하거나, 동일한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 일괄 처리하는 구조 덕분에 중복 연산을 줄이고 데이터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했다. 당시 메인프레임을 운용하던 기업들은 한 대의 컴퓨터로 전사적 업무를 처리하면서, 가능하면 동일 작업을 반복하지 않고 배치 처리함으로써 효율을 추구했다.

물론 이 시기의 한계도 분명했다. 메인프레임은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고가였고, 사용법 또한 복잡했다. 프로그램을 작성하려면 천공카드나 터미널을 통해 간접적으로 명령을 투입해야 했고, 연산 결과를 얻는 데에도 대기시간이 길었다. 컴퓨팅의 혜택이 극소수 전문가와 기관에 중앙집중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런 폐쇄적 중앙집중 구조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 작은 규모의 컴퓨터에 대한 수요와 연구가 꾸준히 이어졌고, 이는 결국 차세대 패러다임 전환의 밑거름이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의 확산: 분산형 패러다임의 대두 (1980~90년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 걸쳐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전과 가격 하락은 컴퓨터의 소형화와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다. 1981년 IBM이 선보인 IBM PC는 기업과 가정에 컴퓨터를 보급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애플의 매킨토시 등과 함께 80년대 중후반을 거치며 PC는 급속도로 보편화되었다. PC의 등장은 컴퓨팅 패러다임을 한순간에 분산형으로 전환시켰다. 이제 개개인이 자신의 작은 컴퓨터에서 직접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중앙의 대형 컴퓨터에 접속하지 않고도 워드 프로세서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스프레드시트를 계산하는 등 독립적인 연산 작업이 가능해졌다.

이 시기 클라이언트-서버 모델이 부상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기업 환경에서 메인프레임은 점차 서버로 대체되고, 직원들의 PC는 클라이언트 단말로서 서버와 통신하는 구조가 자리잡았다. 이전 시대에 중앙 메인프레임이 모든 것을 처리했다면, 이제는 업무 분담이 이루어져 PC가 로컬에서 상당한 처리 작업을 수행하고, 공용 자원(예: 데이터베이스 질의나 공유 프린터 사용)만 서버에 요청하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컴퓨팅 권한과 능력이 중앙에서 말단 개인으로 이양되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1990년대에 들어서 대부분의 조직에서 중요한 연산 업무가 PC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메인프레임은 일부 대형 금융기관이나 특별한 트랜잭션 처리 용도로 축소되었다.

개인용 PC 혁명은 사용자 주권 시대를 열었다. 사용자는 자신만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데이터 파일을 관리하며, 네트워크에 접속해 전 세계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월드와이드웹의 등장으로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PC들은 서로 연결되어 분산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당시에는 수많은 개인 기기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탈중앙화의 힘이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듯 보였다. “정보 고속도로”로 비유된 인터넷상의 정보 교환과 P2P 파일 공유 등의 트렌드도 이러한 분산 패러다임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PC와 인터넷의 결합은 새로운 형태의 중앙집중 서비스를 낳는 토양이 되었다. 예컨대 90년대 후반부터 각광받은 포털 사이트나 검색 엔진은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가 몇 개의 거대 웹 서버에 쿼리를 보내 정보를 얻는 구조였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탈중앙 네트워크 위에서 구현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구글과 같은 중앙 서비스 제공자가 방대한 인프라를 구축해 다수의 이용자에게 연산 결과를 제공하는 모델이었다. 즉, 분산 네트워크의 시대 한복판에서도 중앙 집중적 플랫폼의 힘이 서서히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클라우드의 부상: 다시 중앙으로 (2000~2010년대)

2000년대에 들어 컴퓨팅 패러다임은 다시 한 번 변곡점을 맞는다. 핵심 키워드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모바일 혁명이다. 2006년 아마존 AWS가 선보인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신호탄으로, 기업들은 자체 데이터센터 대신 원격 데이터센터의 가상 서버를 빌려 쓰는 방식을 빠르게 채택해 나갔다. 2010년대에 이르면 마이크로소프트 Azure, 구글 클라우드 등 거대 사업자들이 잇달아 시장에 참전하며 클라우드 컴퓨팅이 새로운 표준 인프라로 자리잡았다. 이 흐름은 본질적으로 컴퓨팅의 재중앙화를 의미한다. 수많은 기업과 스타트업이 더 이상 서버 하드웨어를 직접 소유하지 않고, 소수의 거대 클라우드 업체가 보유한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빌려 쓰는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2025년 현재 대부분의 기업이 자체 데이터센터 대신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중앙집중형 메인프레임과 유사한 구조로의 전환이 이미 산업 전반에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한편 2007년 아이폰 출시로 촉발된 스마트폰 중심의 모바일 시대는 이러한 중앙화 경향을 더욱 가속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같은 모바일 기기는 물리적 제약으로 PC 대비 성능과 저장공간이 제한적이지만, 항시 연결성을 바탕으로 클라우드의 자원을 수시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앱 대부분은 필요한 데이터와 연산을 클라우드 서버에서 처리하고, 결과만 사용자 기기에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모바일 앱은 전면부 UI일 뿐 실제 동작은 중앙 서버에서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초기 스마트폰의 음성비서인 Siri나 구글 나우 등이 음성 인식을 서버 측에서 처리했던 것은 대표적 사례다. 사용자는 손 안의 작은 기기로 방대한 클라우드 연산 능력에 접근하여 지능형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고, 이때 스마트폰은 과거 메인프레임 단말기처럼 입출력 창구 역할을 했다. 결국 모바일 혁명은 클라우드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으며,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다시 중앙의 거대 컴퓨터 자원에 의존하게 되었다.

2010년대 소비자 서비스의 변화도 중앙집중형 회귀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공으로 음악, 영화, 게임 등 미디어 소비 형태는 “소유에서 접속으로” 전환되었다. 사용자는 더 이상 음원이나 영상을 개인 기기에 내려받아 저장하지 않고, 중앙 서버에 있는 방대한 콘텐츠 라이브러리에 접속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감상한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볼 때 동일한 영상 파일 하나를 수백만 명이 함께 시청할 수 있다. 이는 중앙 서버에서 한 번 인코딩한 영상을 다수에게 전송함으로써 개별 사용자가 일일이 영상을 처리할 필요가 없는 효율적인 모델이다. 같은 영상을 100만 사람이 본다고 해서 100만 번 렌더링하지 않는 셈이다. 이처럼 같은 연산을 반복하지 않고 한번 처리한 결과를 공유하는 스트리밍 모델은 에너지와 비용 면에서 탁월한 효율을 보여준다. 음악 스트리밍 역시 마찬가지로, 한 곡을 미리 서버에 압축/저장해 두고 여러 사용자가 재생 시 다운로드만 받는 구조다. 개인이 일일이 CD를 리핑하거나 파일을 저장할 필요가 없다. 중앙집중형 서비스가 규모의 경제를 통해 불필요한 중복 작업을 없앰으로써 얻는 이점이라 할 수 있다.

클라우드 게임은 중앙화 트렌드의 정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클라우드 게임이란 고사양 게임을 사용자의 로컬 기기에서 구동하는 대신,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서 게임을 실행하고 그래픽 영상을 네트워크로 스트리밍하는 방식의 서비스다. 구글이 선보였던 Stadia나 엔비디아의 GeForce Now,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Cloud Gaming 등이 이러한 개념으로 개발되었다. 클라우드 게임을 통해 이용자는 고성능 게임 콘솔이나 PC 없이도 휴대폰, TV 등에서 복잡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때 이용자의 기기는 마우스/키보드/컨트롤러 입력을 보내고 영상 스트림을 출력하는 thin client 역할만 수행한다. 실질적인 게임 로직 연산, 그래픽 렌더링, 물리 엔진 처리는 모두 원격 서버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1970년대 메인프레임에 덤터미널을 연결해 쓰던 모습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실제로 “넷플릭스처럼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클라우드 게임의 개념은 컴퓨팅이 주는 체감품질만 허락한다면, 모든 연산을 중앙에서 처리하고 이용자는 화면만 보는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만 클라우드 게임은 레이턴시 문제로 인해 엣지 컴퓨팅의 도움을 받곤 한다. 전 세계에 분산된 엣지 서버를 통해 게임 서버를 최대한 사용자와 가까운 곳에 배치함으로써, 입력 신호와 영상 출력 사이의 지연을 줄이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의 사용자가 클라우드 게임을 할 때 서울 혹은 근처에 위치한 엣지 서버가 게임을 호스팅하면, 미국 서부의 중앙 서버까지 왕복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응답을 얻는다. 이러한 엣지 컴퓨팅은 클라우드 중앙집중 모델의 보완재로 기능하며, 사용자 경험을 개선한다. 그러나 엣지 서버 역시 근본적으로는 클라우드 사업자가 관리하는 소규모 지역 메인프레임들에 다름 아니다. 단지 중앙 데이터센터의 연장선상에서 지리적으로 분산되어 있을 뿐, 연산 처리의 주체가 다시 개인 기기로 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엣지 컴퓨팅은 중앙집중 구조를 완전히 뒤집는 분산 패러다임이라기보다, 중앙집중을 유지한 채 말단에 최적화된 캐싱/처리 노드를 덧붙인 혼합형 모델로 볼 수 있다. 이는 90년대에 탄생한 CDN이 중앙 서버의 데이터를 지역별 캐시 서버에 저장해 사용자에게 가까운 곳에서 제공했던 방식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결국 2010년대의 클라우드 및 모바일 주도 시대는 표면적으로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분산 연결된 그림이지만, 실제 연산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다시 거대한 중앙(사실은 소수의 거대 노드들)으로 힘이 모아진 형태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얻어진 핵심 효용 중 하나가 바로 중복 연산의 최소화다. 다수의 사용자가 비슷한 요구를 할 때 이를 일일이 각자 장치에서 처리하는 대신, 한 번 처리한 결과를 재활용하거나 공유 서버가 대표로 계산해 주는 방식은 에너지와 비용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대규모 중앙 서버는 고성능 하드웨어와 최적화된 소프트웨어 환경에서 작업을 수행하므로, 개별 PC나 스마트폰 수만 대가 각각 같은 일을 하는 경우보다 총전력 소모와 자원 낭비가 적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메인프레임 한 대가 전체 업무의 70% 이상을 처리하면서도, 전체 IT 인프라 전력의 10% 미만만 사용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현대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는 수많은 개별 기기가 반복 수행할 연산을 한곳에서 모아서 최적화해 처리함으로써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또한 중앙 시스템에서 한 번 생성된 머신러닝 추론 결과나 멀티미디어 콘텐츠 결과가 캐싱과 복제를 통해 여러 사용자에게 손쉽게 배포된다. 기업 입장에서도 자체 서버 수백 대를 운영하는 것보다 클라우드의 거대 인프라 한 곳에 작업을 위임하는 편이 운영 비용과 인력을 줄이는 효과가 크다. 결과적으로 에너지 절감, 비용 효율, 운영 편의성이 맞물려 중앙집중형 모델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AI 시대의 컴퓨팅: 메인프레임식 회귀 가속 (2020년대)

2020년대에 들어 컴퓨팅 패러다임의 진자는 다시 중앙 쪽으로 힘껏 흔들리고 있다. 이번에는 AI의 폭발적 발전이 그 원동력이다. 2022~2023년을 기점으로 GPT-3, GPT-4와 같은 초거대 생성형 AI 모델들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대중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들던 수준의 AI 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AI 모델의 개발과 운영은 철저히 중앙집중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GPT-3은 무려 1750억 개에 달하는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한 신경망 모델로서, 이를 훈련하기 위해 약 몇백 년 분량의 GPU 연산과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이러한 모델을 한 대의 PC나 개별 단말에서 학습하거나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거대한 클라우드 GPU/TPU 팜에서만 운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ChatGPT와 같은 AI 챗봇을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웹브라우저로 사용하지만, 모든 추론 연산은 원격 데이터센터의 AI 전용 서버에서 처리되고 있다. 사용자의 질의가 전송되면 중앙의 AI 모델이 답변을 생성해 돌려주는 구조로, 사용자 기기는 그저 질문과 답을 표시하는 역할이다. 이는 마치 60년대 메인프레임에 터미널을 연결해 사용하던 모습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AI 시대에 데이터와 연산의 집중 현상은 특히 두드러진다. AI 모델의 성능은 주로 대용량 데이터와 대규모 연산 자원에서 나오기 때문에, 빅테크 기업이나 연구기관들은 방대한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모아 학습시키고, 최종 산출물인 모델을 API 형태로 서비스화하여 다수의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전 세계 개발자와 서비스들이 OpenAI나 구글, 네이버 등의 AI API를 호출하여 AI 기능을 구현하는 추세는, 궁극적으로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소수의 초거대 모델에 의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컴퓨팅 업계의 권력이 다시 중앙 집중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과거 각 소프트웨어마다 자체 로직을 로컬에서 돌렸다면, 이제는 다양한 응용들이 공통된 AI 모델을 호출해 결과를 얻는 식으로 동형화되고 있다. 한 번 거대한 자원을 투입해 훈련시킨 AI 모델이 여러 곳에 쓰이니 중복 노력이 감소하는 장점이 있지만, 역으로 보면 옛 메인프레임처럼 집중된 연산 거점이 생긴 셈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AI 코딩 도구의 부상이다. 이는 메타 수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 자체가 중앙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등장한 GitHub Copilot, ChatGPT Code Interpreter, Cursor 등은 모두 클라우드 기반의 인공지능이 소스코드 작성을 도와주는 도구들이다. 개발자는 로컬 PC의 IDE에서 작업하더라도 실시간으로 클라우드의 AI 모델과 상호작용하며 코드 제안을 받는다. 더 나아가 웹 브라우저 상에서 IDE를 제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Replit과 같은 온라인 IDE는 아예 코딩, 컴파일, 디버깅 환경을 서버측에 두고 웹 화면으로 이를 제공하는데, 여기에 AI 보조까지 결합되어 개발 전 과정을 클라우드에서 수행하는 모습이다. 국내외에서 이를 가리켜 바이브 코딩이라 부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하고 있는데, 사람 개발자가 자연어로 기능을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생성하고, 개발자는 다시 이를 검토·수정하는 식의 협업 코딩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AI 코딩 도구들은 대부분 인터넷 연결이 전제된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되며, 최신 코드 정보나 거대 언어모델이 제공하는 지식을 즉각적으로 활용한다. 개발 환경이 로컬에서 원격으로 옮겨감에 따라, 전 세계 개발자들은 사실상 동일한 중앙 AI 조수와 함께 프로그래밍하는 양상이 되고 있다. 이는 60년대 여러 프로그래머들이 한 메인프레임 시스템에 터미널로 접속해 각자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엔 각 프로그래머의 터미널이 웹 브라우저로 바뀌었고, 메인프레임 컴퓨터는 인터넷상의 AI 클라우드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Google Cloud Function과 AWS Lambda와 같은 아키텍처도 메인프레임 회귀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서버리스 컴퓨팅에서는 개발자가 작성한 작은 코드 조각을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면, 필요한 순간에 클라우드 인프라가 해당 코드를 실행하고 결과를 반환한다. 개발자는 더 이상 서버 운영이나 인프라 관리를 신경 쓰지 않고 중앙 클라우드에게 코드를 제출하는 셈이다. 이것은 예전 메인프레임 시대에 프로그램을 제출하면 중앙 컴퓨터가 스케줄을 조정하여 작업을 수행해주던 배치 처리나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 다시 말해 컴퓨팅 환경의 주도권이 사용자의 로컬에서 클라우드 제공자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코드, 데이터, 컴퓨팅 자원이 모두 중앙에 모여들고 그 위에서 다수 사용자가 공유 참여하는 모델은, 개발 생태계마저 메인프레임식 공동 환경으로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움직임은 산업계의 투자 지형에서도 확인된다. 2023~2025년 사이에 AI 코딩 도구 스타트업들이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며 주목받았다. 예컨대 미국 스타트업 Anysphere가 개발한 Cursor는 불과 2년도 안되는 사이 기업가치가 90억 달러(약 12조 원) 규모로 9억 달러를 투자 받았다. 투자자들은 “대화로 코딩하는 시대”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고, 이는 곧 클라우드 기반 코드 생성 서비스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 개발자 개개인이 각자 PC에서 코딩하던 방식에서, 이제는 거대 AI 모델이 중앙에서 코드를 양산하고 인간은 창의적 설계와 검증에 집중하는 새로운 역할 분담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또한 본질적으로는 컴퓨팅이 한 곳에 모여서 수행되고 결과만 배포되는 메인프레임적 사고가 다시금 부활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진자의 위치: 메인프레임 2.0

기술의 진보에 따라 중앙집중과 분산화라는 두 가지 상반된 컴퓨팅 철학이 반복적으로 주도권을 교대해왔다. 메인프레임에서 PC로, 다시 클라우드와 AI 메인프레임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마치 진자가 좌우로 흔들리듯 컴퓨팅 패러다임이 주기적으로 움직여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자의 움직임이 항상 같은 궤도를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2020년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중앙집중화는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중앙집중이다. 오늘날의 메인프레임에 해당하는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들은 지리적으로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엣지 컴퓨팅 노드를 통해 지능적으로 분산-집중의 하이브리드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산 자원의 실질적인 통합과 공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컴퓨팅 모델은 다시 중앙으로 수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AI 시대에 초거대 모델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성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형 GPU 서버 팜의 등장은 개별 기기의 연산 능력을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만들었다. 이제 스마트 단말 하나보다는 클라우드의 슈퍼컴퓨터 한 대가 훨씬 똑똑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연산 요청은 중앙을 향하게 된다. 이로써 인류는 다시 한 번 “공유 메인프레임”을 사용하는 시대로 돌아온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1960년대에는 한 조직 내부에서 수백 명이 한 대의 메인프레임을 썼다면, 2020년대에는 전 세계 수억 인구가 소수의 클라우드 메인프레임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진자의 운동은 계속되겠지만, 당분간은 중앙집중의 방향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엣지 컴퓨팅과 분산원장 기술, 디바이스 자체의 AI 칩 발전 등 다시 분산을 꿈꾸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지만, 에너지 효율과 비용 효율 면에서 “같은 일을 중복하지 않고 한 번에 처리하는” 중앙집중 모델의 매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결국 AI 시대의 컴퓨팅 패러다임은 거대한 데이터센터와 AI 모델이 중심을 잡고, 수많이 연결된 기기들이 그 주변을 도는 거대한 은하와도 같다. 이는 효율성과 성능 측면에서 합리적인 귀결이지만, 동시에 중앙에 대한 의존과 소수에 의한 통제라는 새로운 과제를 내포한다. 컴퓨팅 역사의 진자는 앞으로도 기술, 경제, 사회적 요구에 따라 흔들리겠지만, 현재 우리의 위치는 분명히 메인프레임을 향한 회귀점에 와 있다. 과거로부터 배우면서도 새로운 중앙집중 패러다임을 슬기롭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참고 자료

An Edgy Future – the Ongoing Pendulum of Central and Decentralized Computing

The future looks a lot like mainframe computing

Google Stadia: The Cloud and the Client

OpenAI’s GPT-3 Language Model: A Technical Overview

Sustainable IT and the Role of Mainframes in a Greener Future

‘바이브 코딩’ 등장에 뜨거워진 AI 코딩 도구 시장…’투자하고, 인수하고, 개발한다’

AI 코딩 도구 커서(Cursor), 90억 달러 가치에 9억 달러 투자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