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된 차가 다시 배우는 법

2019년 4월 22일 테슬라가 연 오토노미 데이에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책임자 피트 배넌은 새 자율주행 컴퓨터의 사양을 공개했다. 그해 3월부터 모델S와 모델X에, 4월부터 모델3에 들어가기 시작한 물건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그 자리에서 지금 생산되는 모든 테슬라에 완전자율주행에 필요한 하드웨어가 전부 들어 있으며 남은 것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뿐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낸 보도자료에도 같은 취지의 문장이 들어갔다. 아직 만들지 못한 모델을 위해 하드웨어를 먼저 팔겠다는 선언이었다.
7년이 지난 2026년 4월, 같은 사람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정반대의 말을 했다. HW3에는 비감독형 FSD를 구현할 능력이 그냥 없다는 것이다. 그사이 이 하드웨어를 단 차량은 전 세계 400만 대로 늘어나 있었고, 그중 상당수는 2025년 초 v12.6에서 소프트웨어가 멈춘 채였다.
그런데 두 달 뒤인 6월 29일, 그 차량들에 FSD v14 라이트가 배포되기 시작했다. 7월 10일에는 한국이 북미 외 첫 배포 시장이 되었다. 2019년에 팔린 컴퓨터 위에서, 그보다 5배에서 8배 큰 하드웨어를 전제로 만들어진 모델과 같은 세대의 주행 모델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소송의 승패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이 기술적으로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를 어떻게 뒤집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2019년에 심어둔 여유, 2026년에 드러난 한계
HW3의 정확한 사양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애플의 A5부터 A9까지를 설계했던 피트 배넌이 이끈 팀이 만들었고 삼성이 생산한 이 보드에는 완전히 독립된 두 개의 칩이 들어간다. 각 칩이 72 TOPS, 합쳐서 144 TOPS의 신경망 연산 성능을 낸다. 당시 엔비디아가 자율주행용으로 내놓은 드라이브 자비에의 21 TOPS와 비교되던 수치다. 더 직관적인 지표는 프레임 처리량이다. 직전 세대인 HW2.5가 초당 110프레임을 처리한 데 비해 HW3는 초당 2,300프레임을 처리한다. 20배가 넘는 차이다. 카메라는 120만 화소짜리 8대였고, 이미지 신호 처리기는 초당 10억 픽셀을 감당하도록 설계되었다. 그 전까지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플랫폼을 쓰던 테슬라가 2016년부터 칩을 직접 설계한 이유를 배넌은 자사의 신경망이 지금 어떤 형태이고 앞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를 회사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범용 연산기를 사다 쓰는 대신 특정 형태의 신경망에 맞춘 회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선택 중 하나가 배치 크기 1이다. 서버용 칩은 여러 입력을 모아 한꺼번에 처리해 처리량을 끌어올리지만, 이 칩은 이미지가 도착하는 즉시 하나씩 처리한다. 처리량이 아니라 지연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구조다.
보드에 칩이 두 개 들어간 것도 성능을 두 배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각 칩은 자체 DRAM과 플래시, 전원을 갖고 독립적으로 같은 계산을 수행한 뒤 결과를 대조한다. 하나가 고장 나도 나머지가 주행을 이어가는 이중화 구조이고, 성능만 목표였다면 시스템을 둘로 쪼갤 이유가 없다. 다만 오토노미 데이 발표에 따르면 두 번째 칩은 계산 검증만 하지 않고 개발용 그림자 연산에도 쓰였다. 차량이 아직 배포되지 않은 후보 신경망을 배경에서 돌리고, 그 신경망은 차량 제어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채 자기 판단만 내놓으며, 그 판단이 실제 운전자의 조작과 어긋나는 지점만 골라내 서버로 올라간다. 안드레이 카파시가 같은 자리에서 설명한 대로 데이터의 가치는 총량이 아니라 드문 상황 쪽에 있다. 고속도로 주행 사진은 더 필요하지 않고, 필요한 것은 뒤집힌 차량이나 이상한 적재물처럼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장면이다. 그런 장면을 골라내려면 차가 스스로 판단을 내려봐야 하고, 그러려면 주행에 쓰고 남는 연산이 차 안에 상시로 있어야 한다. 당시 풀 센서 세트를 달고 이 역할을 하던 차량이 50만 대였다. 정리하면 HW3의 여유분은 소비자가 쓰지 못하는 잉여가 아니었다. 완성되지 않은 모델을 나중에 돌리기 위한 몫과 그 모델을 학습시킬 데이터를 지금 모으기 위한 몫으로 처음부터 나뉘어 있었고, 팔려 나간 하드웨어가 다시 그 모델을 만들어내게 하는 구조였다. 국내에 모델3 인도가 시작된 2019년 11월 이후 한국 소비자가 산 차량이 정확히 이 하드웨어를 달고 있다.
2023년부터 탑재된 HW4는 다른 물건이다. 카메라 화소가 120만에서 500만 수준으로 올라갔고 메모리와 연산 자원이 확장되었다. 머스크는 2024년에 HW4가 HW3 대비 5배 규모의 파라미터를 돌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26년 4월 실적 발표에서 그는 더 구체적인 숫자를 꺼냈다. HW3의 메모리 대역폭이 HW4의 8분의 1 수준이고, 이 메모리 대역폭이 비감독형 주행의 병목이라는 것이다.
연산 성능이 아니라 메모리 대역폭을 병목으로 지목한 점이 중요하다. 대형 신경망 추론에서 실제로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곱셈 연산 자체가 아니라 파라미터를 메모리에서 연산 유닛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모델이 커질수록 매 프레임마다 읽어야 할 가중치의 양이 늘어나고, 이 이동 속도가 고정되어 있으면 아무리 연산기가 놀아도 출력 주기를 줄일 수 없다. 테슬라가 현재 운용하는 종단간 모델은 초당 36회 주행 출력을 내놓는다. 한 번의 판단에 주어진 시간이 28밀리초 남짓이고, 이 예산 안에서 모델 전체를 읽어내지 못하면 모델을 실을 수 없다. 144 TOPS라는 숫자가 2019년에 아무리 넉넉했더라도, 그 옆에 붙은 메모리가 2026년의 모델을 감당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여유가 줄어든 과정은 버전 기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2019년에 하드웨어가 깔린 뒤 2020년 10월 도심 주행을 다루는 FSD 베타가 소수에게 열렸고, 2023년의 v11까지는 인식과 계획이 분리된 모듈형 구조였다. 2024년 v12에서 구조 자체가 바뀌면서 모델의 크기가 다른 차원으로 올라갔다. HW3 차량은 2025년 초 v12.6.4에서 멈췄고, 그사이 HW4 차량은 v13을 받고 v14를 받았다. 16개월 넘게 구형 차량의 소프트웨어는 정지 상태였다. 이때 테슬라가 내놓은 대안은 하드웨어 쪽이었다. HW3의 컴퓨터와 카메라를 교체하는 방안, 신차로 교환할 때 할인을 제공하는 방안이 제시되었고, 과거에 체결된 FSD 계약 문구에 감독형이라는 표현이 뒤늦게 추가되기도 했다. 문제는 교체가 보드만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메라와 배선까지 손대야 하고, 머스크는 이 작업을 기존 서비스센터로 소화하면 극도로 느려진다고 보고 주요 도시에 전용 시설을 세우는 방안을 언급했다. 전 세계에 깔린 HW3 차량은 약 400만 대이고, 테슬라가 1분기에 공개한 활성 FSD 구매 및 구독 건수는 128만 건이다. 차를 한 대씩 불러들여 부품을 바꾸는 방식과 무선으로 소프트웨어를 내려보내는 방식은 처리 속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증류는 압축이 아니다
6월 29일 테슬라 AI 총괄 부사장 애쇼크 엘루스와미가 밝힌 내용은 짧지만 정확했다. AI4의 v14 시리즈가 보이는 주행 행동을 AI3의 카메라 구성과 연산 구성 양쪽에 맞춰 증류했다는 것이다. 릴리스 노트의 표현은 더 직접적이다. HW4의 v14를 교사로 삼아 구형 컴퓨터가 상황 대처 방식을 직접 배우게 했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증류라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델을 작게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고, 증류는 그중 나머지 둘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양자화는 같은 가중치를 더 낮은 수치 정밀도로 표현하는 것이다. 32비트 부동소수점을 8비트 정수로 바꾸면 메모리 사용량과 대역폭 요구가 줄어든다. 구조는 그대로이고 표현의 정밀도만 떨어진다. 가지치기는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된 가중치나 채널을 지우는 것이다. 역시 원래 모델의 구조를 유지한 채 일부를 제거한다. 두 방법 모두 원본 모델을 손대는 작업이다.
증류는 원본을 손대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작은 모델을 처음부터 학습시키되, 학습의 정답으로 원본 데이터의 라벨이 아니라 큰 모델이 내놓은 출력을 쓴다. 2006년 크리스티안 부칠러, 리치 카루아나, 알렉산드루 니쿨레스쿠미질이 모델 압축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했고, 2015년 제프리 힌턴, 오리올 비냘스, 제프 딘이 이를 일반화하면서 지금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힌턴 팀이 강조한 것은 큰 모델의 출력 분포가 정답 라벨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답 하나만 알려주는 라벨과 달리, 교사 모델의 출력은 어떤 선택지들이 서로 얼마나 비슷하다고 판단했는지까지 알려준다. 이들은 이 부분을 다크 놀리지라고 불렀다.
여기서 흔히 생기는 오해 하나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증류는 트랜스포머에서만 가능한 기법이 아니다. 힌턴 팀의 원 논문은 음향 모델과 이미지 분류기를 대상으로 했고, 그 이후 수많은 CNN 기반 모델이 같은 방식으로 축소되었다. 증류는 아키텍처와 무관한 학습 절차이며, 교사가 풍부한 출력 분포를 내놓을 수 있는지만 요구한다. 테슬라가 트랜스포머를 쓰는 것은 사실이다. 차선 기하를 예측하는 자기회귀 디코더가 트랜스포머 기반이다. 그러나 그것이 증류를 가능하게 한 원인은 아니다.
실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2024년 v12에서 테슬라는 주행 스택 전체를 하나의 신경망으로 교체했다. 그 이전의 FSD는 인식 결과를 받아 사람이 손으로 짠 C++ 규칙이 경로를 계획하는 구조였다. 조건문은 증류할 수 없다. 규칙으로 짜인 로직에는 학습시킬 만한 출력 분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 입력에서 조향과 가감속까지가 하나의 미분 가능한 함수가 되고 나서야, 그 함수를 근사하는 더 작은 함수를 학습시키는 일이 성립했다. HW3가 v12.6에서 오래 멈춰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v12에서 종단간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이고, HW3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사례는 교과서적인 증류보다 조건이 더 나쁘다. 보통의 증류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같은 입력을 본다. 그런데 HW3와 HW4는 카메라부터 다르다. 화소 수가 4배 차이 나고 전방 카메라 구성도 다르다. 학생 모델은 교사보다 흐릿하고 정보량이 적은 장면을 보면서 교사와 같은 판단을 내놓아야 한다. 엘루스와미가 연산 구성뿐 아니라 카메라 구성까지 언급한 지점이 여기다. 교사의 판단이 정답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학생은 저해상도 이미지 안에서 그 판단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단서가 무엇이었는지를 역으로 학습하게 된다. 데이터에 붙은 라벨만으로 같은 크기의 모델을 학습시켰다면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다.
전이되는 것이 인식 능력만도 아니다. 릴리스 노트는 HW4에서 강화학습과 오프라인 모델로 얻은 개선이 HW3로 넘어왔다고 적고 있다. 강화학습은 막대한 시뮬레이션 반복을 요구하고, 차량 안에서는 애초에 수행할 수 없는 계산이다. 학생 모델은 그 탐색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결과로 나온 행동만 물려받는다.
숫자로 보면 결과는 이렇다. HW3의 메모리 여건에 맞추기 위해 신경망은 원본의 약 15% 크기로 줄었다. 그리고 같은 하드웨어에서 v12.6.4 대비 교통 상황에 대한 반응 속도가 37% 빨라졌다는 측정 결과가 나왔다. 칩은 그대로다. 카메라도 그대로다. 바뀐 것은 그 위에 올라간 모델뿐이다.
고객 차량은 이미 전부 증류 모델로 달리고 있다
이 사건에서 더 눈여겨볼 지점은 라이트 버전 자체가 아니다. HW4 차량이 돌리는 v14도 이미 증류된 모델이라는 사실이다. 테슬라가 원본 모델을 그대로 돌리는 것은 사이버캡에 들어간 최신 연산 하드웨어이고, 고객 차량은 사양에 따라 각각 다른 정도로 축소된 판본을 받는다. 다시 말해 도로 위를 달리는 테슬라 중에 원본 모델을 돌리는 차는 없다. 라이트는 예외적 조치가 아니라 배포 구조 전체의 한 단계다.
이 구조는 언어모델 업계가 이미 자리 잡은 형태와 동일하다. 구글 딥마인드는 2024년 5월 제미나이 1.5 플래시가 1.5 프로로부터 온라인 증류된 모델이라고 기술 보고서에 명시했다. 메타도 같은 해 9월 라마 3.2의 1B와 3B 모델을 만들면서 라마 3.1의 8B와 70B가 내놓은 로짓을 학습 목표로 썼다고 밝혔다. 각 회사가 내놓는 소형 및 고속 모델 대부분은 같은 세대의 대형 모델에서 뽑아낸 결과물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딥시크가 2025년 1월 R1의 추론 능력을 큐원과 라마 계열 모델로 증류해 공개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 기업들이 증류를 배운 계기는 아니다. 힌턴의 논문이 2015년이고 제미나이 플래시와 라마 3.2가 2024년이다. 딥시크가 바꾼 것은 기법이 아니라 인식이었다. 증류된 소형 모델이 단지 저렴한 대안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경쟁 가능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테슬라가 중국에서 기술을 배워왔다기보다는, 산업 전체가 같은 기법을 각자의 제약 조건에 맞춰 쓰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다만 테슬라의 제약 조건은 다른 회사들과 성격이 다르다. 언어모델 회사는 배포 대상을 스스로 정한다. 특정 하드웨어에서 성능이 나오지 않으면 그 하드웨어를 지원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테슬라의 배포 대상은 2019년에 확정되어 400만 명의 소비자에게 이미 팔린 물건이다. 성능 목표를 낮출 수도 없고 대상을 줄일 수도 없다. 정해진 연산과 메모리 예산 안에 최신 모델의 행동을 밀어 넣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고, 이 제약이 엔지니어링의 난이도를 결정했다.
이 변화가 만드는 구조적 결과는 분명하다. 학습의 규모와 배포의 규모가 분리되었다. 지난 삼십 년간 단말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의 성능 상한은 그 단말의 사양이 결정했다. 지금은 상한이 데이터센터에서 정해지고 단말은 그 결과를 축소해서 받는다. 7년 전 차량이 최신 세대 모델의 행동을 물려받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한계도 분명하다. 증류는 행동을 옮기는 기법이지 용량을 늘리는 기법이 아니다. 학생은 교사를 넘어설 수 없고,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재현할 수 없는 지점이 남는다. 메모리 대역폭이 8분의 1이라는 물리적 사실은 그대로다. v14 라이트는 감독형 주행의 품질을 끌어올렸지만, 운전자가 없어도 되는 수준의 신뢰도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다음 버전인 v15는 HW4를 대상으로 개발되고 있어 HW3까지 내려올 가능성은 낮다. 라이트라는 이름은 등급 표시가 아니라 물리적 한계에 대한 정직한 표기에 가깝다.
법정과 중고차 시장이 동시에 내린 평가
한국의 상황은 이 사건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감독형 FSD가 국내에 정식 도입된 것은 2025년 11월이었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였다. 그러나 도입 시점에 실제로 기능을 쓸 수 있는 차량은 900대 남짓이었다. 활성화 조건이 미국산 HW4 차량이었는데, 국내에 수입되는 테슬라의 약 99%가 상하이 공장 생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앞선 2024년 12월, 차주 약 100명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테슬라코리아를 상대로 FSD 옵션 매매대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900만 원에서 1000만 원을 지불하고도 계약 당시 설명받은 기능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 청구 이유다. 테슬라코리아는 특정 시점까지 레벨5 자율주행을 제공한다는 확정적 약정이 계약서에 없다는 점, 그리고 지연의 원인이 국토교통부 규제에 있다는 점을 들어 다투고 있다. 2026년 1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별도의 하드웨어 업그레이드 없이도 FSD가 완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광고한 행위를 두고 부당 표시광고 조사에 착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7월 10일 v14 라이트의 국내 배포가 시작되었다. 대상은 감독형 FSD가 이미 활성화된 미국산 모델3와 모델Y 중 HW3 탑재 차량이다. 국내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하이 생산분은 안전기준 관련 절차가 남아 이번 대상에서 빠졌다. 8월 초 기준으로 소송 참여자 상당수가 업데이트를 받았다는 집계가 나왔지만, 테슬라가 배포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배포 순서와 소송 참여 사이의 관계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시장의 반응은 법정보다 빨랐다. 배포 소식이 알려진 뒤 2020년식 모델3 중고 시세가 움직였다. 이전에는 최상위 트림이 2천만 원 후반대에 거래되던 차량이, 더 낮은 트림 기준으로 4천만 원 안팎에 팔리기 시작했다. 6년 넘게 감가상각을 겪은 하드웨어의 가격이 소프트웨어 한 건으로 재평가된 것이다. 자동차에서 오래 가치를 유지하는 자산이 더 이상 기계 부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찾기 어렵다.
동시에 배포 자체가 새로운 분쟁을 만들고 있다. 라이트 출시 소식을 보고 중고 구형 모델을 사서 904만 원을 일시불로 결제했는데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비자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테슬라는 8월 10일부터 국내 FSD 판매 방식을 904만 3천 원 일시불에서 월 15만 원 구독으로 전환한다. 기존 일시불 구매자에 대한 배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 구조가 먼저 바뀌는 셈이다. 중국에서도 HW3 차주들이 베이징 법원에 허위광고를 이유로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중국 내 HW3 차량만 100만 대가 넘는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증류로 구형 하드웨어에 최신 세대의 주행 행동을 이식한 것은 뛰어난 엔지니어링이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자율주행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계약의 이행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지금 배포된 것은 운전자가 상시 감독해야 하는 주행보조 기능이고, 소비자가 대금을 지불한 대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기술적 성취가 계약상 책임을 자동으로 해소하지는 않는다. 이 두 가지를 섞어서 논하면 어느 쪽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마무리
2019년에 테슬라가 내린 판단은 여유를 크게 잡아두는 것이었다. 직전 세대의 20배가 넘는 연산 능력을 미리 차에 넣어두면 나중에 완성될 모델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그 판단은 절반만 맞았다. 여유는 6년 만에 소진되었고, 머스크 본인이 그것을 인정했다. 하드웨어의 여유는 출고 시점에 확정되는 양이지만 모델의 요구량에는 상한이 없다. 두 값이 늘어나는 속도가 다른 이상, 하드웨어를 아무리 넉넉히 넣어두어도 언젠가는 따라잡힌다.
400만 대의 차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 것은 결국 하드웨어 쪽이 아니었다. 모델을 원본의 15%로 줄여 이미 팔려 나간 컴퓨터 안에 밀어 넣은 쪽이었다. 2019년에 테슬라가 건 것은 연산 능력이었지만, 그 판단을 구제한 것은 압축 능력이다.
그렇다고 처음의 약속이 지켜진 것은 아니다. HW3의 메모리 대역폭은 여전히 HW4의 8분의 1이고, 배포된 것은 운전자가 계속 지켜봐야 하는 감독형 기능이며, 900만 원을 낸 소비자가 산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기술적으로 성공한 것과 계약상 이행된 것은 다른 문제다. 두 가지를 함께 놓고 봐야 이 사건의 전체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이 사건이 남기는 변화는 분명하다. 하드웨어의 수명이 판매된 뒤에 결정되기 시작했다. 제품이 출고되는 순간 성능이 확정되던 관계가 뒤집혔고, 이제 그 제품이 몇 년을 더 쓸 만한 물건으로 남을지는 그 위에 모델을 얼마나 작게 얹을 수 있느냐가 정한다. AI를 얹은 제품을 설계하는 입장에서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진다. 연산 자원을 얼마나 넣을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나가 있는 자원 위로 지능을 어디까지 밀어 넣을 수 있는가다.
2024년 NASA는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의 메모리 칩이 죽자, 240억 킬로미터 밖의 부품을 교체하는 대신 남은 69킬로바이트 안에 들어가도록 코드를 쪼개 다시 배치해 47년 된 컴퓨터를 되살렸다. 손댈 수 없는 하드웨어가 이미 밖에 나가 있을 때 남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테슬라가 한 일도 같은 종류이고, 다른 것은 규모다. NASA가 탐사선 한 대를 상대로 다섯 달에 걸쳐 한 작업을 테슬라는 수백만 대를 상대로 며칠 만에 끝냈다.
기계는 출고되는 순간부터 낡아가는 물건이었다. 지금은 출고된 뒤에 배우기 시작한다. 7년 전에 산 차가 부품을 하나도 바꾸지 않은 채 올해 만들어진 모델의 판단으로 도로를 달리고 있다. 소송의 결론이 무엇으로 나든, 그런 차 400만 대가 오늘 팔린 차와 나란히 자율주행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역사에 남을 일이다.
참고 자료
- Tesla unveils its new Full Self-Driving computer in detail, Electrek
- Tesla starts FSD v14 ‘Lite’ rollout to HW3 cars, Electrek
- Tesla Launches FSD V14-Lite: First Impressions, Not a Tesla App
- Tesla FSD V14 Lite With Faster Reaction Times Rolls Out, autoevolution
- Distilling the Knowledge in a Neural Network, Hinton et al.
- Gemini 1.5 Technical Report, Google DeepMind
- Llama 3.2: Revolutionizing edge AI and vision, Meta AI
- 1000만원 FSD 옵션, 9년째 먹통, 한국경제
- 테슬라 FSD 라이트 국내 배포 본격화, 머니투데이방송
- 테슬라코리아 FSD 라이트 허위 출시 논란, 비즈니스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