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간 7월 19일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2026 월드컵이 끝났다. 한 달 넘게 이어진 104경기의 결론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기록을 쌓은 팀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 팀이 이겼다.

리오넬 메시는 39세의 마지막 월드컵에서 8골 4도움을 남겼다. 전성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숫자였다. 킬리안 음바페는 10골 4도움을 기록해 두 대회 연속 골든부트를 받았다. 월드컵 역사상 처음 나온 기록이다. 단일 대회 두 자릿수 득점은 1970년 게르트 뮐러 이후 56년 만이었고, 통산 22골로 메시를 제치고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됐다. 22경기에서 22골이었다. 개인 기록의 관점에서 이번 대회는 두 사람의 대회였다.

결과는 달랐다.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 스페인에 0-1로 졌다. 90분과 연장 전반을 버텼지만 연장 후반 1분 페란 토레스에게 결승골을 내줬고, 메시는 그 경기에서 유효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한 채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을 마쳤다. 음바페의 프랑스는 준결승에서 스페인에 0-2로 진 뒤 3·4위전에서 잉글랜드에 4-6으로 지며 4위에 그쳤다. 그 경기에서도 음바페는 2골 1도움을 올렸다. 골은 계속 터졌지만 팀은 계속 졌다.

우승한 스페인에는 득점 순위 상위권에 오른 선수가 없었다. 대신 이런 기록이 남았다. 8경기 14득점 1실점. 월드컵 우승팀 역대 최소 실점이다. 골키퍼 우나이 시몬은 여덟 경기 중 일곱 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았고, 8강 벨기에전에서 내준 한 골이 대회 전체의 유일한 실점이었다. 그 수비의 중심에 있던 19세 센터백 파우 쿠바르시는 영플레이어상을 받았다.

그리고 대회 최우수 선수에게 주는 골든볼은 스페인 주장 로드리에게 돌아갔다. 그의 기록은 0골 0도움이다. 여덟 경기를 모두 선발로 뛰었고 공격 포인트는 하나도 없었다. 대신 남은 숫자가 패스 790회 성공이다. 월드컵 단일 대회 최다 패스 기록이고, 그가 2022년에 세운 638회를 스스로 크게 넘어섰다. 공격 포인트가 하나도 없는 골든볼 수상자는 2002년 골키퍼 올리버 칸 이후 처음이다.

스페인의 이런 승리 방식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남아공에서 스페인은 7경기 8골로 우승했다. 월드컵 역사상 최소 득점 우승이었고, 토너먼트 네 경기를 모두 1-0으로 끝냈다. 한 번은 최소 득점으로, 한 번은 최소 실점으로 우승했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원리는 같다. 개별 선수의 폭발력이 아니라 팀 전체가 하나의 구조로 움직여서 이겼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스페인이 개인 기량이 부족해서 조직으로 버틴 팀은 아니라는 점이다. 로드리는 2024년 발롱도르 수상자이고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힌다. 다만 그의 기량이 발현되는 방식이 다르다. 그는 골을 넣어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팀 전체의 템포를 조절하고, 위험을 미리 끊고, 공이 흘러갈 경로를 결정한다. 그가 잘하면 나머지 열 명이 잘하게 된다. 기여가 개인 기록표에는 남지 않지만 경기 결과에는 남는다.

한 가지 더 눈에 띈 것은 이번 대회에 처음 도입된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였다. 날씨와 무관하게 전반과 후반 22분에 3분씩 경기를 강제로 멈춘다. 선수 보호가 목적이었지만 감독들은 이 3분을 전술 지시를 다시 내리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경기 중간에 선수를 바꾸지 않고 지시만 바꿀 수 있는 구간이 제도로 들어온 셈이다.

지금 기술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이 구조다. 성능 좋은 개체를 확보하는 경쟁은 사실상 끝났고, 그 개체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연결하고 지킬 것인가의 경쟁이 시작됐다. 승부는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조직의 설계 능력에서 갈린다.

모델은 평준화되고 격차는 다른 곳에서 벌어진다

지난 몇 년간 기업의 AI 도입은 솔루션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문서 분류 모델, 번역 엔진, 추천 시스템, 광학 문자 인식, 음성 인식. 문제마다 특화된 도구가 따로 있었고 좋은 도구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곧 경쟁력이었다. 도구마다 학습 데이터가 달랐고 평가 지표가 달랐고 담당 조직도 대개 달랐다.

LLM이 이 구도를 정리했다. 하나의 모델이 읽고, 쓰고, 요약하고, 번역하고, 분류하고, 코드를 작성한다. 개별 문제마다 별도의 모델을 확보할 이유가 사라졌다. 여기에 외부 도구 호출 권한과 다단계 실행 능력을 부여하면 에이전트가 된다. 사람이 매 단계를 지시하지 않아도 목표를 받아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골라 실행하고, 결과를 보고 다음 행동을 정한다.

문제는 이 능력이 더 이상 특정 회사의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론티어 모델의 세대 교체는 몇 달 단위로 일어나고, 상위 모델 사이의 성능 차이는 대부분의 업무 작업에서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좁혀졌다. 오픈 웨이트 모델이 그 뒤를 반년 안팎의 간격으로 따라붙는다. 오늘의 독보적 기능은 다음 분기에 API 호출 한 줄로 제공된다. 남들이 못 하는 것을 해서 이기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조직의 성과는 그만큼 올랐는가?

MIT 미디어랩의 NANDA 이니셔티브가 2025년 발표한 조사는 이 질문에 불편한 답을 내놓았다. 150건의 경영진 인터뷰, 350명의 직원 설문, 300건의 공개 도입 사례를 분석한 결과 기업이 진행한 생성형 AI 시범 도입 프로젝트의 약 95%가 손익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남기지 못했다. 보고서가 지목한 원인은 모델 품질도, 규제도, 인재 부족도 아니었다. 조직과 도구 양쪽의 학습 격차였다. 시스템이 피드백을 축적하지 못하고, 업무 맥락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더 인상적인 것은 개인과 조직이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직원들이 개인 계정으로 AI 도구를 쓰고 있는 회사가 90%를 넘었지만, 회사가 공식 도구를 제공하는 곳은 40%에 그쳤다. 업무에 결합되는 전용 시스템은 60%가 검토 단계에 들어갔지만 20%만 시범 도입 단계에 도달했고 5%만 실제 운영에 올라갔다. 개인은 이미 쓰고 있는데 조직은 아직 못 쓰고 있다. 예산 배분도 같은 방향으로 어긋나 있었다. 2025년 AI 예산의 절반 이상이 눈에 잘 띄는 영업·마케팅 영역으로 갔고, 실제 수익은 조용한 백오피스 자동화에서 나왔다.

이 격차의 실체는 지식이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어떤 프롬프트가 잘 먹히는지, 어떤 작업은 맡기면 안 되는지, 결과의 어느 부분을 반드시 사람이 확인해야 하는지가 전부 개인의 경험 안에만 존재한다. 그 사람이 팀을 옮기면 지식도 함께 사라진다. 옆자리 동료는 같은 시행착오를 처음부터 다시 겪는다. 조직 전체로 보면 같은 학습이 인원수만큼 반복되고, 그 비용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체감 생산성이 몇 배로 올랐다는 말과 조직의 산출물이 그만큼 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순이 아니다. 개인의 향상은 실재하고, 그 향상이 조직 단위로 합산되지 않을 뿐이다. 합산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역할, 연결, 조정

합산이 일어나려면 그 전에 담을 그릇이 있어야 한다. 지금 개인의 노하우는 대화창 안에서 만들어졌다가 대화창과 함께 사라진다. 받아서 보관하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자리가 조직에 없기 때문이다.

시중의 범용 에이전트를 가져다 쓰는 것만으로는 이 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외부 서비스는 어느 회사에나 통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 대가로 어느 회사의 방식도 담고 있지 않다. 반면 개인이 쌓은 노하우의 대부분은 회사 고유의 맥락이다. 이 문서는 우리 회사에서 어떤 순서로 검토되는가, 이 고객사는 어떤 형식을 요구하는가, 이 수치는 어느 시스템의 값을 기준으로 삼는가, 이 판단은 반드시 누가 해야 하는가. 모델이 알 수 없고 외부 서비스가 대신 채워줄 수도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매번 프롬프트로 다시 설명하는 방식이 자리를 잡는다. 잘 쓰는 사람일수록 설명이 길고 정교하다. 그러나 그 설명은 개인의 대화창에 남았다가 사라진다. 다음 사람은 같은 설명을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

그릇을 만든다는 것은 이 맥락이 사내에 축적되는 자리를 만든다는 뜻이다. 업무별 지시문을 버전과 함께 보관하는 저장소, 사내 용어와 기준값을 정의한 사전, 에이전트가 호출할 수 있는 사내 시스템의 도구 정의, 실행 기록과 사람이 내린 판정이 그 자리에 들어간다. 만드는 방법은 도구를 사오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일하는 방식을 먼저 분석하는 것이다. 어떤 문서가 어떤 경로로 도는지, 어디서 사람의 판단이 들어가는지, 어떤 실수가 반복되는지 확인해야 무엇을 담을지 정할 수 있다.

그릇이 채워지기 시작하면 다음 단계가 열린다. 한 사람의 방식이던 것이 여러 사람의 기록으로 쌓이면 비로소 분석이 가능해진다. 어떤 업무가 실제로 반복되는지, 어느 지점에서 판단이 갈리는지, 어떤 실패가 자주 나오는지가 보인다. 그 분석을 근거로 개인의 노하우를 조직의 역량으로 확장하는 설계에 들어간다. 설계해야 할 것은 역할, 연결, 조정 이 세 가지다.

첫째는 역할 정의다. 어떤 업무를 어떤 에이전트에게 맡길 것인가의 문제다. 하나의 에이전트에 모든 업무를 몰아주는 방식은 초기에는 편하지만 곧 한계에 부딪힌다. 지시문이 비대해지고 서로 다른 목적의 규칙이 충돌한다. 컨텍스트에 관련 없는 이력이 계속 쌓이면 모델은 어느 지시를 우선할지 흔들리고, 문제가 생겨도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 특정할 수 없다.

그래서 역할을 나눈다. 조사하는 에이전트, 실행하는 에이전트, 검증하는 에이전트를 분리하고 각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와 최소한의 맥락만 준다. 아키텍처는 크게 두 갈래다. 중앙의 조정자가 각 에이전트의 실행 순서와 위임을 통제하는 방식과, 조정자 없이 에이전트들이 사전에 합의된 규약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앞의 것은 통제와 추적이 쉽고 뒤의 것은 상황 변화에 유연하다. 대부분의 업무 시스템은 앞의 방식으로 시작하는 편이 안전하다. 실패했을 때 어디서 끊겼는지 알 수 있어야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할 분리에는 성능 외의 이유도 있다. 각 에이전트가 자기 작업 이력만 가진 별도의 실행 흐름에서 동작하고 조정자는 정리된 결과만 넘겨받으면, 한 에이전트가 오염된 입력을 읽어도 그 영향이 전체로 번지지 않는다. 이 격리는 뒤에서 다룰 보안 문제와 직접 연결된다.

둘째는 연결 설계다. 에이전트의 출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정하는 일이다. 다음 단계의 입력이 되는가, 사람의 승인을 거치는가, 외부로 나가는가. 중간에 실패하면 재시도하는가 중단하는가 사람을 호출하는가. 이전 실행의 판단을 다음 실행이 알아야 하는가, 안다면 그 상태를 어디에 저장하는가. 되돌릴 수 있는 작업과 되돌릴 수 없는 작업을 구분하고 후자 앞에는 확인 절차를 둔다.

이것은 개인의 능력을 설계하는 일이 아니라 개인 사이의 관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실무에서 사고가 나는 지점도 대개 여기다. 각 단계는 정상 동작했는데 단계 사이에 검증이 없어서 잘못된 값이 그대로 통과한다. 사람이 개입해야 할 지점이 정의되지 않아서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다. 요약 과정에서 근거가 탈락했는데 다음 단계는 그 요약만 보고 판단한다.

셋째는 조정이다. 결과를 측정하고 그 값으로 프롬프트와 워크플로우를 계속 다시 짜는 일이다. 이 작업이 어려운 이유는 에이전트 업무에 정답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도 하나로 평가할 수 없으므로 실패를 유형으로 나눠야 한다. 도구를 잘못 골랐는가, 지시의 일부를 빠뜨렸는가, 근거 없는 내용을 만들어냈는가, 중간 단계에서 목표를 이탈했는가. 유형이 구분되어야 원인이 프롬프트인지 도구 정의인지 데이터인지 판별할 수 있다.

여기에 평가셋이 필요하다. 실제 업무에서 나온 입력과 사람이 판단한 기대 결과를 모아두고, 프롬프트나 워크플로우를 바꿀 때마다 회귀 검증을 돌린다. 이 장치가 없으면 개선은 감으로 이루어지고, 한 곳을 고치면 다른 곳이 무너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반대로 이 장치가 있으면 한 사람이 발견한 개선이 저장소에 반영되는 순간 전원이 그 수준에서 시작하게 된다. MIT 조사가 지목한 학습 격차를 실제로 메우는 작업이 바로 이것이다.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모델의 성능 문제가 아니다. 더 좋은 모델로 교체한다고 역할이 정의되지 않고, 연결이 설계되지 않고, 측정 체계가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세 가지 모두 밖에서 사올 수 없다.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이어야 하는지는 그릇에 쌓인 자기 회사의 기록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방어의 전제가 바뀌었다

과거의 소프트웨어 보안은 경계를 지키는 일이었다. 전제는 명확했다. 공격자는 바깥에 있고 방어선은 안과 밖 사이에 있다. 공격자는 시스템의 취약점을 탐색하고, 방어가 뚫린 지점으로 코드를 밀어넣고, 권한을 탈취한다. 대응은 패치와 방화벽과 접근 통제였다. 안과 밖의 구분이 분명했기 때문에 방어의 대상도 분명했다.

LLM 기반 시스템은 이 전제를 무너뜨린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시스템 지시문과 사용자의 요청과 검색해온 문서가 모두 하나의 토큰 열로 모델에 들어간다. 어떤 토큰이 명령이고 어떤 토큰이 데이터인지 표시할 신뢰할 만한 방법이 없다. 외부 문서에 섞여 들어온 문장이 운영자의 지시와 같은 권한을 갖는다. 에이전트는 능동적으로 검색하고 문서를 읽고 사내 지식베이스를 조회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읽은 것이 그대로 지시가 될 수 있다. 이것이 프롬프트 인젝션이고, OWASP는 에이전트 애플리케이션의 10대 위험 중 여섯 개 항목이 이 기법과 연결된다고 정리했다.

실제 공격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2025년 9월 보안 업체 노마 시큐리티의 연구팀이 공개한 세일즈포스 에이전트포스 취약점이 그 예다. 공격자는 회사 홈페이지의 문의 양식 설명란에 지시문을 적어 넣는다. 4만 자 넘게 들어가는 자유 입력 칸이다. 며칠 뒤 담당 직원이 에이전트에게 새로 들어온 문의를 정리해 달라고 요청한다. 에이전트는 그 문의를 읽고, 거기 적힌 문장을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지시로 해석하고, 자신이 정당하게 보유한 권한으로 고객 데이터를 조회해 외부 주소로 내보낸다.

그 외부 주소는 세일즈포스의 콘텐츠 보안 정책 허용 목록에 남아 있던 도메인이었다. 이미 만료돼 누구나 살 수 있는 상태였고, 연구팀은 그것을 5달러에 사들였다. 취약점 등급은 10점 만점에 9.4였다. 공격자가 한 일은 문장 몇 줄을 적어둔 것과 도메인 하나를 산 것뿐이다. 시스템에 침입하지 않았고 취약점을 찾지도 않았고 권한을 훔치지도 않았다. 실행은 내부에서, 정당한 권한으로, 아무 저항 없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공격이 들어온 곳과 데이터가 빠져나간 곳이 다르다는 점이다. 악성 문장은 문의 양식으로 들어왔고 데이터는 이미지 요청 형태로 나갔다. 읽기 전용 연동이라 안전하다는 판단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다. 읽기는 입구이고 출구는 다른 곳에 있다.

사람의 개입조차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2025년 6월 공개된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 취약점은 메일 한 통으로 성립했다. 에코리크라는 이름이 붙은 CVE-2025-32711이다. 본문의 HTML 주석이나 배경색과 같은 글자색에 지시문이 숨어 있어 수신자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수신자는 그 메일을 열 필요도 없다. 나중에 코파일럿에게 최근 업무를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면 검색 단계에서 그 메일이 맥락으로 딸려 들어오고 숨어 있던 지시문이 실행된다. 원드라이브와 셰어포인트와 팀즈에 있던 자료가 외부로 나간다. 심각도 9.3, 사용자 클릭 0회로 기록됐다.

보안 연구자 사이먼 윌리슨은 이 위험이 성립하는 조건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비공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을 것, 신뢰할 수 없는 콘텐츠에 노출될 것, 외부로 정보를 내보낼 경로가 있을 것. 세 가지가 동시에 성립하면 그 에이전트는 유출 도구로 전환될 수 있다. 곤란한 점은 세 조건이 모두 우리가 에이전트에게 기대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사내 데이터를 못 보면 쓸모가 없고, 외부 문서를 못 읽으면 조사를 못 하고, 결과를 내보내지 못하면 실행이 안 된다.

이것이 연구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가 2026년 발표한 연례 위협 보고서는 2025년 한 해 동안 90개 이상의 조직에서 정상 운영되던 생성형 AI 도구에 악성 프롬프트가 주입되어 자격 증명 탈취에 쓰인 사례를 확인했다. 보고서는 이를 프롬프트가 새로운 멀웨어가 됐다는 문장으로 요약했다. OWASP가 2025년에 낸 에이전트 보안 문서가 대체로 발생 가능한 위협의 목록이었던 반면, 2026년판은 실제 취약점 번호와 침해 보고서의 목록으로 바뀌었다.

구조적으로 SQL 인젝션과 닮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SQL은 파싱 규칙이 고정되어 있어 데이터와 명령을 기계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 파라미터 바인딩을 쓰면 원천 차단된다. LLM에는 그런 규칙이 없다. 무엇을 지시로 볼지 매번 모델이 확률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완전한 차단은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공개된 가장 강한 방어 기법도 정교하게 다듬어진 공격을 열 번에 한 번꼴로 놓친다. 남는 선택지는 차단이 아니라 피해 범위를 줄이는 설계다.

그 설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 에이전트가 실행되는 계정의 권한을 업무에 필요한 최소 범위로 줄인다. 외부에서 들어온 텍스트와 내부의 지시를 구분해 다루고, 외부 출처의 내용은 참고 자료로만 취급하도록 경로를 나눈다. 에이전트가 호출하거나 생성할 수 있는 외부 주소를 허용 목록으로 제한하고, 그 목록에 만료된 도메인이 남아 있지 않은지 주기적으로 점검한다. 되돌릴 수 없는 실행 앞에는 사람의 확인을 배치한다. 위키와 이슈 트래커처럼 우리가 대체로 신뢰하는 저장소도 외부 파트너나 고객이 글을 쓸 수 있는 순간 공격의 입구가 되므로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그리고 에이전트가 무엇을 읽고 무엇을 호출했는지 사후에 추적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긴다.

어느 것도 더 좋은 모델을 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같은 이야기로 돌아온다. 설계의 문제다.

조직이 AI를 흡수한다는 것

개인이 AI를 잘 쓰는 상태와 조직이 AI를 흡수한 상태는 다르다. 후자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로 정의된다.

한 사람이 발견한 활용법이 문서와 도구의 형태로 남아 다른 사람이 그대로 쓸 수 있다. 에이전트가 만든 결과물이 다음 단계로 자동으로 흘러가고 중간에 사람이 옮겨 담는 작업이 없다. 어디서 오류가 나는지 측정되고 그 값으로 프로세스가 개선된다. 무엇을 신뢰하고 무엇을 의심할지가 개인의 감이 아니라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성능과 안전이 함께 유지된다.

다섯 가지 모두 모델을 도입한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별도로 설계하고 별도로 만들어야 생긴다. 그리고 이 작업은 모델 도입보다 훨씬 지루하고 훨씬 오래 걸린다. 성과가 데모로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예산을 따내기도 어렵다. MIT 조사에서 예산의 절반 이상이 눈에 잘 띄는 영역으로 흘러간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루한 작업이 유일하게 복제되지 않는 자산이다. 모델은 누구나 살 수 있다. 어떤 회사가 좋은 모델을 도입했다는 사실은 경쟁사에게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는다. 반면 자기 업무의 실패 유형을 3년치 분류해둔 조직, 어떤 판단은 반드시 사람이 하고 어떤 판단은 맡겨도 되는지 규칙으로 정리해둔 조직, 에이전트의 출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전부 그려둔 조직은 복제하기 어렵다. 그 지식은 그 조직의 업무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이 설계 작업이 기술 조직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업무를 맡길지 정하는 것은 업무를 아는 사람의 판단이고, 어떤 실행 앞에 사람의 확인을 둘지 정하는 것은 위험을 아는 사람의 판단이다. 개발자만 모여 있는 방에서는 나오지 않는 결정들이다. MIT 조사에서도 외부 전문 벤더와 함께 구축한 사례가 실제 운영에 도달한 비율은 자체 개발의 두 배였다. 다만 이것을 잘 만들어진 도구를 사오면 된다는 뜻으로 읽으면 곤란하다. 성공한 쪽은 도구를 구매한 조직이 아니라 자기 업무에 맞춰 함께 만든 조직이었다.

여기서 도입부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메시는 8골을 넣고 준우승했고 음바페는 10골을 넣고 4위를 했다. 한 골도 넣지 않은 로드리가 우승컵과 골든볼을 함께 가져갔다. 개인기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로드리 자신이 발롱도르 수상자다. 개인기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페인이 남긴 기록 중 오래 남을 것은 우승 자체보다 8경기 1실점이라는 숫자다. 여덟 경기 동안 상대가 골문 앞까지 도달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고, 그것은 골키퍼 한 명의 선방이 아니라 열한 명이 같은 규칙으로 물러설 자리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실점은 대개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구조의 빈틈에서 나온다. 누가 그 공간을 책임지는지 정해지지 않은 자리로 공이 들어온다.

에이전트를 도입한 조직이 결국 평가받을 지점도 여기다. 몇 건의 업무를 자동화했는가가 아니라, 그동안 몇 건의 사고가 났는가다. 잘 만든 자동화 사례 열 건보다 유출 한 건이 조직을 더 멀리 되돌린다. 그리고 그 실점은 방화벽이 뚫려서 나지 않는다. 아무도 책임자를 정해두지 않은 연동 지점, 만료된 줄 몰랐던 허용 목록, 외부인이 글을 쓸 수 있는 줄 몰랐던 사내 문서에서 나온다. 최소 실점은 최고의 수문장이 아니라 빈자리 없는 배치에서 나왔다.

우리 축구를 돌아보면 이 대목이 더 선명해진다. 한국 축구의 반복된 실패가 선수 자원의 실패였던 적은 드물다. 유럽 상위 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를 여럿 보유한 시기에도 대표팀은 자주 무너졌다. 개인의 기량과 팀의 성적이 따로 놀았다. 문제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 선수들을 어떤 구조 안에 배치할 것인가, 누가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설계하지 못했다. 좋은 선수를 모으는 데는 성공했고 좋은 팀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 많은 조직이 AI 앞에서 서 있는 자리가 정확히 거기다. 좋은 선수는 이미 다 모았다. 같은 선수를 누구나 쓸 수 있게 된 이상, 승부는 그 선수들을 어떻게 조직하느냐에서 갈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선수가 아니다. 감독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