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곧 비즈니스다

17세기 영국의 직물 산업은 한 가지 단순한 사실 위에 서 있었다. 옷감 한 필을 짜는 데 사람의 손이 들었고, 그 손에 값이 매겨졌다. 같은 옷감을 더 빠르게, 더 균일하게 짜 내는 기계가 등장하자 옷감 자체의 값은 떨어졌다. 사람들은 처음에 기계를 부쉈다. 옷감 값이 떨어지면 자신의 생계가 무너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옷감 값은 떨어졌고, 옷감을 짜던 사람들의 일자리는 사라졌으며, 동시에 옷감을 짜는 기계와 그 기계를 돌리는 공장, 공장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새로운 직업군이 생겼다. 값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 단계 위로 옮겨 갔을 뿐이다. 옷감에서 공장으로, 손에서 기계로, 그리고 그 기계를 시장 사정에 맞게 설계하고 배치하는 능력으로.
300여 년이 지난 지금, 같은 일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만 옷감 자리에는 코드가, 기계 자리에는 개발 에이전트가 있다. 코드 한 줄에 매겨졌던 값은 무너지고 있다. 한때 시니어 개발자 한 명의 한 시간이 수십만 원에 거래되던 시장이 있었다. 그 시장의 값이 올해 1월을 기점으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직전 세대까지는 “되긴 되는데 검토가 필요한” 수준이던 코딩 에이전트가, 새 모델이 등장한 그 한두 달 사이에 “검토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업계 최상위 연구자들이 공개적으로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직접 코드를 쓰지 않는다고, 사람이 코드를 쓰고 검토하는 행위가 오히려 일을 느리게 만든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과장된 수사로 들렸으나, 이내 직접 진행한 프로젝트들에서 그것이 수사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사실이 시장에서 의미하는 바는 한 줄로 압축된다. 산출물에 매겨졌던 값은 사라지지 않는다. 위로 한 단 올라간 자리, 즉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환경에 옮겨 붙는다. 영국 직물 산업에서 값이 옷감에서 공장으로 올라갔듯, 지금의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값이 코드에서 환경으로 올라간다. 팔아야 하는 것은 산출물이 아니라,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환경 그 자체다. 이것은 시장 관찰에서 도출된 권고가 아니라 산수의 결론이다. 산출물 쪽의 가격이 0을 향해 가는데 산출물을 팔겠다는 사업은 성립하지 않는다. 가치가 위로 이동했다면 사업도 위로 이동해야 한다.
무너지는 산출물, 올라가는 자리
올해 1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한 세대의 모델이 시장에 풀린 시점이었다. 직전 세대까지는 코드 한 줄을 받아 보면 어딘가 어색했다. 함수 이름이 미묘하게 빗나가 있거나, 에지 케이스를 놓치거나, 멀쩡해 보이는데 실행해 보면 무너졌다. 그래서 결국 사람이 들여다봐야 했다. 사람이 들여다보는 한, 사람의 시간이 들고, 사람의 시간에 값이 매겨졌다. 그 한두 달 사이에 그 작은 어색함이 사라졌다. 함수 이름이 그럴듯해졌고, 에지 케이스를 알아서 잡아냈고, 사람이 들여다볼 이유가 없어졌다. 들여다보면 오히려 사람의 직관이 모델의 패턴을 깼다. 사람이 빠지는 편이 결과가 더 나았다.
업계 최상위 연구자들이 “1월부터 직접 코딩을 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점이다. Anthropic과 OpenAI 모두 자사 모델 코드의 절대 다수를 자사 모델이 직접 쓰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과장된 마케팅 수사로 의심했으나, 최근 공개된 주요 코딩 에이전트들의 소스를 직접 들여다본 결론은 다르다. 그것은 사람이 쓴 코드가 아니다. 사람이 손을 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 몇 개월간 한 줄도 사람이 손대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코드의 결, 변수 명명의 일관성, 주석의 양식, 함수 분리의 패턴이 모두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 더 정연하고, 더 균일하고, 더 흔들림이 없다. 어떤 사람의 손가락도 그 정도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사람이 빠진 자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결이다.
이 사실이 사업의 기본 구조를 바꾼다. 산출물이 자동으로 생성된다면, 산출물에 매겨졌던 값은 그 산출물을 생성해 내는 무엇인가에 옮겨 붙는다. 옮겨 붙을 수밖에 없다.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치는 보존되지만 자리가 한 단 올라간다. 그 위에 무엇이 있는가? 개발 에이전트가 있다. 개발 에이전트를 시장 사정에 맞게 변형해 주는 일이 있다. 이것을 “레시피를 만들어 준다”고 부르고 싶다. 요리는 이제 누구나 할 수 있다. 재료를 모델에 던지면 무엇이든 만들어진다. 그러나 레시피는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 어떤 재료를, 어떤 순서로, 어떤 도구를 거쳐, 어떤 사람의 입맛에 맞게 조립할지 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한 단계 더 올라가면 레시피를 만들어 내는 레시피, 즉 메타 레시피가 있다. 시장별로 다른 레시피를 빠르게 조립해 내는 틀이다. 팔아야 하는 자리는 바로 이 자리다.
직접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 본 결론은 분명하다. 개발 에이전트를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일은 답이 아니다. 검증된 오픈 하네스를 가져와 그 안에 사설 LLM 엔드포인트를 연결하고, 시장의 제약 조건에 맞춰 변형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빠르고 유효하다. 베이스를 새로 짜겠다고 6개월을 쓰는 동안 같은 베이스 위에서 변형 작업을 하는 팀은 같은 6개월에 열 개의 시장을 커버한다. 가치가 베이스가 아니라 변형에 있다면, 시간을 베이스에 쓰는 일은 가치가 없는 자리에 시간을 쓰는 일이다. 즉 팔 것은 “범용 도구”가 아니라 “시장별로 빠르게 조립되는 환경”이다. 환경이라는 단어는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부상한다. 환경은 도구의 상위 개념이고, 도구의 값이 무너진 자리에 도구를 둘러싼 무엇이 새로 들어선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환경은 세 갈래로 이루어진다
환경이라는 단어가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으므로 세 갈래로 쪼개어 보겠다. 환경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와 인프라, 그리고 운영 지식의 세 갈래로 이루어진다. 이 셋이 모두 갖춰져야 환경이라는 단어가 성립한다.
첫째 갈래는 소프트웨어다. 개발 에이전트, 도메인 에이전트, 보안 점검 에이전트, 그리고 이들을 시장 사정에 맞춰 조립하고 변형하는 메타 레시피가 여기에 속한다. 핵심은 처음부터 다시 짜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증된 오픈 하네스가 이미 존재한다. 그 위에 사설 LLM 엔드포인트를 연결하면 충분한 수준의 결과가 나온다.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일은 환경 사업의 본질이 아니다. 환경 사업의 본질은 이미 존재하는 베이스 위에서 시장별 변형을 빠르게 만들어 내는 능력이고, 그 변형이 곧 메타 레시피다. 메타 레시피는 한 번 만들고 끝나는 산출물이 아니다. 시장이 바뀌면 같이 바뀌고, 모델이 바뀌면 같이 바뀐다. 그래서 메타 레시피는 산출물이 아니라 운영 자산이다. 운영 자산은 한 번 납품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굴러가는 것이다. 이 차이가 결정적이다.
둘째 갈래는 하드웨어와 인프라다. 이 갈래는 한국 시장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직전 세대의 가속기는 단종되었고, 최신 세대는 수급 자체가 어렵다. 한국의 기업과 기관들은 가속기를 구하지 못해 줄을 서 있는 형편이다. 이 공백에 들어갈 자리가 있다. 국산 AI 가속기, 국산 LLM, 국산 에이전트를 묶은 스택이 그것이다. 가격에서 유리하고, 수급에서 유리하고, 규제 산업에서는 “국산”이라는 속성 자체가 추가 가치가 된다. 외국 가속기를 들여올 수 없는 영역이 명확히 존재하고, 그 영역의 규모는 작지 않다. 정부, 국방, 공공, 금융의 일부, 의료의 일부, 통신의 일부가 모두 여기에 들어간다. 이 영역에서는 절대 성능이 1순위가 아니다. “여기에 둘 수 있는가”가 1순위다. 둘 수 없는 가속기는 성능이 어떻든 영점이고, 둘 수 있는 가속기는 성능이 평범해도 의미가 있다. 한국이 환경 비즈니스에서 특별한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모델 성능 경쟁에 끼어들기는 어렵지만, “국내에 둘 수 있는 환경 스택” 경쟁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도 한국 시장에 들어오기 어렵다. 시장의 경계가 곧 진입 장벽이 되는 드문 구조다.
셋째 갈래는 운영 지식이다. 사용법, 연결 방법, 거버넌스, 모니터링이 여기에 들어간다. 세 갈래 중 가장 과소평가되지만, 가장 핵심적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갖추어 놓고도 운영 지식이 없으면 환경은 작동하지 않는다. 운영 지식의 가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규제 산업이다. 외부 공용 LLM을 사용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어떤 코드 어시스턴트도 존재하지 않는 무주공산이 펼쳐진다. 시중에서 화제가 되는 모든 AI 도구가 이 영역에서는 0이다. 그 상태에서 절대 성능이 최상위 모델의 한참 아래에 머무는 오픈소스 코딩 LLM이라도 사내 GPU에 얹어 풀어 주기만 해도 반응이 폭발적이다. 한 규제 산업의 개발자들은 그 도구가 풀린 첫 주에 “이제야 다른 회사 개발자들이 쓰는 도구를 우리도 쓴다”고 말했다. 절대 성능은 한참 아래였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0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이 사례가 가리키는 바는 분명하다. 사업의 핵심은 모델의 절대 성능이 아니라, 그 모델을 시장의 제약 조건 안에서 실제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는 환경 구축 능력에 있다.
세 갈래를 합쳐 구축해 주고, 사용법과 연결 방법을 알려 주고, 그에 대한 비용을 청구한다. 이것이 환경 비즈니스의 외형이다. 한 번의 납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델은 바뀌고, 시장은 바뀌고, 규제는 바뀌고, 사람은 바뀐다. 환경은 그 모든 변화 속에서 계속 갱신되어야 하고, 갱신될 때마다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환경 비즈니스는 구조적으로 지속 과금 비즈니스다. 단발 납품 비즈니스가 아니다. 이 차이가 결국 매출 구조와 평가 가치를 결정한다. 시장이 SaaS 기업에 더 높은 배수를 매기는 이유도 동일한 구조다. 한 번 팔고 끝나는 비즈니스보다 계속 받아 가는 비즈니스가 더 단단하다. 환경 비즈니스는 SaaS와 SI의 중간이 아니라, SI의 외형을 가진 SaaS다. 외형은 SI처럼 보이지만 안은 지속 과금이고, 안의 구조가 결국 사업의 본질을 정의한다.
FDE라는 새 이름, 그러나 새 이름만은 아닌
환경 비즈니스를 굴리려면 사양서를 받아 컴포넌트를 붙이는 인력으로는 안 된다.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시스템과 DB, 코드와 하드웨어, 시장 업무를 동시에 보고 그 위에 메타 레시피를 얹는 일이다. 한 사람 안에 그 모든 영역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을 요즘은 FDE라고 부른다. Forward Deployed Engineer의 약자다. 팔란티어가 자기 회사의 인력 구조를 설명하면서 처음 정착시킨 이름이고, 최근 OpenAI, Ramp 등 미국의 주요 AI 기업들이 같은 직군을 채용하면서 산업 용어로 굳어졌다.
용어 자체는 새것이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늘 존재해 왔다. 풀스택 엔지니어, DevOps, 만능 개발자 같은 호칭이 그것이다. 이들이 일반 SI 개발자와 결정적으로 갈리는 지점은 두 가지다. 첫째, 그림 없이도 만들 수 있다. 둘째, 프리세일즈와 기획, 더 넓게는 사업의 영역까지 커버한다. 둘 중 더 본질적인 것은 첫 번째다.
여기서 말하는 “그림”이란 이런 것이다. 기획-디자인-개발이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구조에서 개발은 항상 맨 뒤에 위치한다. 디자인을 받아 인터페이스를 맞추고, 그 인터페이스에 코드를 붙인다. 개발자는 도구를 다루는 역할에 갇히고, 하나의 컴포넌트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런 인력으로 환경을 만들 수는 없다. 환경은 정의상 컴포넌트 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을 만드는 일은 컴포넌트와 컴포넌트 사이의 관계, 컴포넌트와 사람 사이의 관계, 컴포넌트와 시장 사이의 관계를 한꺼번에 보는 일이다. 그림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그 관계가 머릿속에 그려져 있어야 한다. 20년 전에도 기획서가 나오기 전에 95%를 미리 만들어 두고 도착한 기획서를 참고해 5일 만에 완성하던 부류의 개발자가 있었다. 거기에 시스템 엔지니어링 진단과 세팅 능력이 더해지면 효율이 10배, DB까지 깊이 다루면 다시 10배가 곱해졌다. 시스템이나 DB로 풀면 1의 비용이면 끝날 일을 코드로 풀면 100배가 든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FDE는 이 복합 능력을 갖춘 개발자를 가리키는 새 이름일 뿐이다.
다만 지금 FDE가 갑자기 중요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AI가 극도의 커스터마이징을 가능하게 했고, 시장에 남은 일이 모두 SaaS가 처리하지 못하는 극도의 커스터마이징이며, 이 사실을 시장이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환경 비즈니스가 가능해진 시점과 FDE 수요가 폭증한 시점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SaaS로 처리되는 일은 점점 더 SaaS 안으로 흡수된다. 시장에 남는 일은 SaaS의 경계 밖, 즉 각 조직의 고유한 데이터, 고유한 워크플로우, 고유한 규제 환경에 맞춰진 일들뿐이다. 그 일들은 정의상 표준화될 수 없는 일들이고, 표준화될 수 없는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곧 FDE의 능력이다.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인력이 곧 FDE다.
이 사실은 인력 구성에 그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역량을 갖춘 시니어는 위로 올려 리더 역할을 맡기거나 외부에서 채용한다. 역량은 부족하지만 해 보려는 시니어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면서 필요한 기법과 툴을 전수한다. 말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일정 기간의 평가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시니어는 빨리 정리하는 편이 모두에게 이롭다. AI 도입은 결국 이들을 도태시킬 것이고, 다 같이 갈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자원은 주니어, 그중에서도 경력 2년 미만이다. 3년이 넘어가면 사고가 굳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 이하면 사고방식의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속성으로 코드를 외우게 해 기초 갭을 메우고, 짧은 기간 안에 클라우드, DB, App, Web, 하드웨어까지 일단 다 거치게 한다. AI 툴이 받쳐 주면 이 코스를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돌릴 수 있다. 과거에는 한 영역을 익히는 데 1년이 걸렸다면, 지금은 두세 달이면 충분하다. AI가 옆에서 끊임없이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다섯 영역을 차례로 거치는 데 1년이면 된다.
그리고 기술보다 마음가짐이 앞선다. FDE라는 개념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전쟁터에서 엔지니어가 소스를 직접 수정해 즉각 배포함으로써 적을 무력화시킨 사건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으로 나갈 수 있는 마음가짐이 본질이었다. 환경을 만든다는 일도 본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일이다. 고객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망가진 데이터와 망가진 워크플로우 한가운데에서, 사양서도 없고 보증도 없는 상태로 무엇인가 작동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기술적인 문제는 항상 해결된다. 마음가짐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FDE 채용은 기술 면접보다 태도 면접이 우선이고, 태도 면접에서 통과한 사람에게만 기술 면접을 본다. 팔란티어가 군 출신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그 비중을 자랑스럽게 공개해 온 데에는 같은 이유가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명령과 실행 사이의 거리를 0으로 줄이는 훈련을 군에서 받은 사람은, 고객 시스템 안에서 데이터와 실행 사이의 거리를 0으로 줄이는 일에도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순서가 뒤바뀌면 환경 비즈니스를 굴릴 인력이 모이지 않는다.
데이터에서 실행까지의 거리를 0으로
FDE가 환경의 인적 측면이라면, 같은 사건의 기술적 측면을 보여 주는 것이 팔란티어의 Ontology다. 두 개념이 같은 회사에서 나란히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둘 다 “데이터와 산출물 사이의 거리를 0으로 만든다”는 하나의 목표를 인적 축과 기술 축에서 각각 풀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온톨로지는 데이터 그 자체, 그리고 그 데이터의 단층적 메타데이터를 정리해 제공하는 데서 멈췄다. 어떤 항목이 어떤 분류에 속하고,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다른 항목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사전식으로 정리해 두는 일이었다. 그 정보를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 어떤 판단으로 연결할 것인가는 받은 쪽이 알아서 처리해야 했다. 도서관의 목록 카드 같은 것이었다. 책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 주지만, 그 책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책을 빌리는 사람의 몫이었다.
팔란티어의 Ontology는 다르다.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의 관계, 그 관계의 맥락, 그리고 그 맥락 위에서 즉시 실행 가능한 행위(action)까지를 함께 담는다. 단지 “이 컨테이너는 상하이에 있다”라고 적어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컨테이너는 상하이에 있고, 다음 주에 부산으로 이동할 예정이며, 만약 부산항 적체가 X시간 이상 지속되면 이 컨테이너의 경로를 인천으로 자동 재배치하라”는 행위까지를 데이터의 한 면으로 포함시킨다. 그 위에 LLM이 얹히면, LLM은 단순히 데이터를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위에서 행위를 제안하게 된다. 이 제안은 git의 branch처럼 별도의 가지에 놓이고, 사람이 검토해 merge하면 비로소 실제 세계에 반영된다. 운영 현실 자체에 git이 얹힌 셈이다.
이 차이가 우크라이나 전장의 사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방의 어떤 무기 체계든 안정성과 보안이 우선이었고, 10년 단위의 개발 기간을 거쳐 배치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절차였다. 한 무기 체계가 결정되면 그것이 그 자리에 10년을 머물렀다. 적이 그 사이에 새로운 전술을 가져오면 우리 무기 체계는 그 적응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것이 국방 소프트웨어의 한계였고, 그 한계를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팔란티어가 움직였다. 이전에는 검증된 적도 도입된 적도 없는 소프트웨어를 단 몇 주 만에 만들어 냈다. 거기에 적응한 러시아군의 전략 변화에 맞춰 그다음 날의 패치가 가능한 소프트웨어와 전략 무기 체계를 만들어 그 효용성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10년의 사이클이 하루의 사이클로 압축되었다.
가장 큰 차이는 데이터에서 명령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장성급에 두지 않고, 소대장과 중대장의 노트북에 둔 데 있다. 소대장이 현장 상황을 입력하면 그 자리에서 실행 가능한 전략이 떨어진다. “지금 가진 재블린 두 개 중 하나를 오른쪽 40미터로 한 명을 이동시켜 40초 대기하라, 헬기가 올 테니 쏴라. 5분 후에 분대는 왼쪽 나무를 돌아 앞의 건물로 이동해 대기하다가 넘어오는 탱크를 격추하라.” 이런 구체적이고 즉시 실행 가능한 지시가 분 단위로 생성된다.
이 예가 팔란티어 Ontology와 전통적 온톨로지의 결정적 차이를 보여 준다. 전통적 온톨로지는 같은 상황에서 검색을 통해 어떤 정보 조각은 줄 수 있을지언정 종합적 판단을 내려 줄 수 없었고, 그런 중앙화된 정보는 보안 등급 때문에 장성급만 열람할 수 있어 현장 도달 속도가 결정적으로 느려졌다. 장기 전략은 세울 수 있어도 소규모의, 몇 분 후의 상황을 처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팔란티어의 Ontology는 이 거리를 무너뜨려, 데이터에서 판단으로, 판단에서 현장 실행으로 이어지는 사슬을 분 단위로 단축했다. 그 단축이 전장의 우열을 갈랐다.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데이터에서 실행까지의 거리가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이 우크라이나의 사례로 증명되었다.
여기서 환경 비즈니스의 본질이 다시 확인된다. 환경이란 결국 데이터, 도구, 판단, 실행을 한 사람의 손끝까지 끊김 없이 이어 주는 무엇이다. FDE는 그 끊김 없는 사슬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고, Ontology 같은 운영체 모델은 그 사슬이 작동하게 하는 기술적 골격이다. 산출물을 만들어 넘기는 사업이 데이터를 정리해 넘기던 옛 온톨로지에 대응한다면, 환경을 구축해 운영하는 사업은 운영체로서의 Ontology에 대응한다. 같은 이동이 인적 축과 기술 축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이동은 한국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기업과 기관 대부분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그 데이터에서 판단까지, 판단에서 실행까지의 거리는 여전히 길다. ERP가 있어도 ERP의 데이터를 보고 결정을 내리는 일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그 결정을 다시 시스템에 입력하는 일도 사람의 손으로 일어난다. 그 사이의 거리가 곧 인건비고, 곧 시간이고, 곧 의사 결정 지연이다. 환경 비즈니스는 이 거리를 줄이는 일이다. 줄이는 만큼 비용이 줄고, 줄인 비용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이 환경 비즈니스의 매출 구조다. 한 번의 납품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리는 계속 줄여 갈 수 있고, 줄여 갈 때마다 새로운 비용 절감이 생기고, 그 절감의 일부를 계속 가져갈 수 있다. 이것이 환경 비즈니스가 한 번 팔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계속 굴러가는 사업이 되는 이유다.
산출물의 가격이 무너지면 사업은 산출물을 만드는 환경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환경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운영 지식의 세 갈래로 이루어지며, 한 번의 납품이 아니라 구축과 운영의 지속 과금 구조 위에서 굴러간다.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인력은 따로 있고, 그 인력의 조직과 마음가짐을 정비하는 것이 환경 비즈니스의 실행 조건이다. 산출물에서 환경으로의 이동, 컴포넌트 개발자에서 FDE로의 이동, 단발 납품에서 지속 운영으로의 이동, 그리고 정리된 데이터에서 작동하는 Ontology로의 이동. 네 이동은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라 같은 사건의 네 단면이다.
300년 전 영국의 직조공들은 기계를 부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기계는 부숴도 다시 만들어졌고, 옷감의 값은 끝내 무너졌다. 그 시점에 옷감을 짜는 일에 매달린 사람은 사라졌고, 공장을 짓고 기계를 설계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낸 사람은 살아남았다. 지금의 소프트웨어 산업도 같은 갈림길 위에 있다. 코드를 짜는 일에 매달릴 것인가, 코드를 짜는 환경을 만드는 일로 옮겨 갈 것인가? 코드 자체의 값은 이미 무너지고 있고, 그 무너짐은 멈추지 않는다. 환경 쪽으로 옮겨 가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그 자리는 비어 있고, 비어 있는 자리는 곧 시장이다.
참고 자료
- A Comprehensive Analysis of Palantir’s Forward Deployed Engineering Model — Activated Thinker
- Palantir’s Secret Weapon Isn’t AI — It’s Ontology — DEV Community
- How Tech Giants Turned Ukraine Into an AI War Lab — TIME
- Ukraine Launches Brave1 Dataroom with Palantir to Train AI Models Using Battlefield Data — Digital State
- Recursive Self-Improvement Edges Closer In AI Labs — IEEE Spectrum
- AI FDE Overview — Palantir Documen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