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앤트로픽의 개발 도구 클로드 코드의 전체 소스코드가 npm 패키지에 포함된 소스맵 파일을 통해 유출되었다. 59.8MB짜리 자바스크립트 소스맵 파일 하나가 51만 3천 줄, 1,906개 파일에 걸친 타입스크립트 코드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Solayer Labs의 인턴 Chaofan Shou가 새벽에 이 사실을 X에 공유하고 다운로드 링크까지 올렸다. 그로부터 수 시간 만에 코드는 깃허브 전역에 미러링되었고, 수천 명의 개발자가 분석에 뛰어들었다.

앤트로픽은 DMCA 통지를 통해 수천 개의 깃허브 저장소를 내리려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자사의 공식 저장소와 연결된 포크 네트워크 전체에 테이크다운이 적용되어, 의도하지 않은 저장소까지 내려갔다가 항의를 받고 철회해야 했다. ‘claw-code’라는 이름의 클린 리라이트 프로젝트는 하루 만에 깃허브 스타 10만 개를 돌파하며 깃허브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저장소가 되었다. 파이썬으로, 러스트로, 순식간에 재구현되었다. 이 코드가 누출되기 불과 열흘 전, 앤트로픽은 자사의 내부 API를 사용한 오픈소스 프로젝트 OpenCode에 법적 경고를 보낸 참이었다. 빗장을 걸어 잠근 지 열흘 만에 문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다.

유출된 코드 속에는 앤트로픽이 1년 넘게 공들여 만든 에이전트 하네스 기술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클로드 코드가 최고의 코딩 에이전트로 작동하는 비밀은 클로드 모델의 지능 자체만이 아니었다. 경쟁사의 모델 학습을 방해하는 안티 디스틸레이션 메커니즘, 사용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스스로 기억을 통합하고 정리하는 자율 에이전트 모드, 원격으로 최상위 모델을 호출해 30분간 심층 기획을 수행하는 기능까지. LLM의 성능을 넘어서는 에이전트 엔지니어링의 기술이었고, 이 기술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 유출은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니라 전략적 출혈이었다. 코드 자체는 리팩토링할 수 있지만, 경쟁사가 이미 본 제품 로드맵과 전략적 우위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유출의 원인이었다. 앤트로픽은 2025년 말에 자바스크립트 런타임 Bun을 인수했고, 클로드 코드는 Bun 위에 구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Bun에는 프로덕션 모드에서도 소스맵이 제공되는 버그가 2026년 3월 11일에 보고되어 있었다. 이슈는 열린 채로 남아 있었고, 바로 그 버그가 앤트로픽 자사 제품의 소스코드를 노출시킨 것이다. 자기가 인수한 도구의 알려진 버그가 자기 제품의 최대 보안 사고를 야기한 셈이다. 도구가 평준화되는 시대에, 도구의 취약점 또한 평등하게 공유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유출 직후, 다른 LLM과 연결할 수 있는 포크들이 쏟아졌다. 클로드 코드의 에이전트 프레임워크 위에 구글 제미나이 3.1 Pro를 얹어 사용하는 개발자들이 등장했다. Bifrost나 Claude Code Router 같은 AI 게이트웨이를 통해 하나의 세션 안에서 클로드와 제미나이를 자유롭게 전환하는 워크플로가 불과 며칠 만에 정착했다. ‘free code’라는 이름의 포크는 모든 텔레메트리와 가드레일을 제거하고 실험적 기능을 전부 잠금 해제했다고 주장하며 2,600개의 스타를 받았다. 최고의 에이전트 프레임워크가 최고의 모델에만 묶여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제미나이, GPT 등 경쟁 모델들이 빠르게 성능을 끌어올리며 바짝 추격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하네스의 공개는 에이전트 기술의 완전한 평준화를 예고했다.

전문가라는 성벽이 무너지다

불과 2년 전까지 소프트웨어 개발은 특수한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전문 영역이었다. 코드를 작성하려면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을 익혀야 했고, 프레임워크의 생태계를 이해해야 했으며, 디버깅이라는 고된 작업을 견딜 인내심이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은 수년간의 학습과 현장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개발자라는 직업은 그래서 희소했고, 그 희소성이 높은 보수를 정당화했다.

그런데 지금은 말로 코딩한다. 전문 개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자연어로 지시를 내려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코딩의 진입 장벽은 사실상 사라졌다. 1년 전만 해도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외치던 개발자가 많았다. ‘미묘한 버그를 잡을 수 없다’, ‘아키텍처를 설계할 수 없다’,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논거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자신이 AI보다 코딩을 더 잘한다고 주장하는 개발자는 사실상 없다. 증명된 뒤에는 늦다.

같은 일이 법률 영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변호사 없이 직접 소송을 수행하는 ‘프로 세(pro se)’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프로 세 고용 소송은 2024년 대비 49% 증가했고, 공정주택법 관련 프로 세 소송은 69%나 뛰었다. 미국 전역의 고용법 전문 변호사 사무실에서 프로 세 원고가 제기한 사건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사건 당 방어 비용도 10~15% 증가했는데, 프로 세 원고들이 AI를 활용해 대량의 소송 서류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한 여성의 사례가 이 현상을 잘 보여준다. 임대료 체납으로 퇴거 소송에 직면한 그녀는 법률 구조 변호사를 통해 싸웠지만 배심원 재판에서 패소했다. 항소를 결심한 그녀가 선택한 것은 ChatGPT와 Perplexity였다. 코로나 시기에 시행된 LA의 임대료 유예 규정을 근거로 항소 논리를 구축했다. 핵심은 그녀의 감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이다. 예전에는 질문을 할 곳 자체가 없었다. 법률 용어를 몰랐고, 판례를 검색하는 방법을 몰랐고, 변론서의 구조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변호사를 고용할 돈이 없으면 그 지식에 접근하는 문 자체가 닫혀 있었다. AI가 그 문을 열었다.

중요한 것은 AI가 완벽한 변호사를 대체했다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벽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사나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진입 장벽이었는데, 그 장벽이 월 20달러짜리 AI 구독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EvenSteven Legal AI, Courtroom5, Contend, Thurgood 같은 프로 세 소송인 전용 AI 법률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플랫폼들이 해결하려는 문제의 본질은 분명하다. 프로 세 소송인이 지는 이유는 진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부족해서이다. AI는 그 구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코딩도, 법률도, 전문가라는 것이 오랜 교육과 집중된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전문성의 핵심이 AI에 내장되어 있다. 글을 쓰는 전문가, 코딩하는 전문가, 법을 아는 전문가의 희소성이 사라지고 있다. 머지않아 의술을 다루는 전문가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보다 잘할 수 있겠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만, 개발 영역에서도 불과 1년 전에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대다수였다.

여기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전문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전문성에 대한 접근 비용이 0에 수렴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가치가 지식의 소유에서 나왔다면, 그 가치는 사라진다. 하지만 전문가의 가치가 판단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직관, 윤리적 감각에서 나왔다면, 그 가치는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전문직 교육이 전자에 초점을 맞춰왔다는 것이다. 법대에서 판례를 암기하고, 의대에서 증상과 처방의 조합을 외우고, 공대에서 알고리즘의 구현을 반복 연습하는 것. 이런 교육의 결과물인 전문가는 AI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복잡한 상황에서 인간적 맥락을 읽고, 불확실성 속에서 결단을 내리며,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 무게를 재는 능력은 아직 AI의 영역이 아니다. 다만, ‘아직’이라는 단어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이것은 개인 차원의 격차 소멸이다. 그리고 이 소멸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자물쇠가 열리는 속도

테슬라의 완전 자율주행 이야기로 넘어간다. 테슬라는 FSD를 국가별로 단계적으로 출시해왔다. 미국에서 완전하게 작동하는 FSD가 유럽이나 한국에서는 지오펜싱이라는 소프트웨어 잠금에 의해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지역별 규제 인증을 기다리는 동안 유지되는 이 잠금 때문에, 6천 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FSD를 구매한 차주들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한국의 경우, 중국에서 생산된 모델 3과 모델 Y의 FSD는 현지 인증 지연으로 인해 차단된 상태였다. 불만은 오래전부터 쌓여왔다.

2026년 3월, 변화가 시작되었다. Tesla Android 프로젝트로 유명한 폴란드 개발자 미하우 가핀스키가 CAN 버스 장치를 이용해 FSD의 지역 제한을 해제하는 방법을 공개한 것이다. USB 형태의 진단 도구를 차량 OBD-II 포트에 연결하면 약 5분 만에 FSD가 활성화되었다. 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이라 누구나 쉽게 장착할 수 있었다. 스마트 서몬의 범위가 약 85미터와 200미터 반경으로 확장되고, 차선 변경과 오토스티어 성능이 향상되며, 유럽의 UNECE R171 규정에 의한 제한까지 해제되었다. OTA 업데이트도 지원하여 테슬라의 향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의 호환성을 유지한다고 했다. 그의 X DM은 폭주했고, 모든 상세 정보를 자신의 스토어에 올리게 되었다.

이 발표가 나온 지 불과 며칠 후, 깃허브에 ‘flipper-tesla-fsd’라는 이름으로 Flipper Zero 기기용 오픈소스 FSD 언락 앱이 등록되었다. Electronic Cats의 MCP2515 CAN 버스 애드온만 있으면 HW3/HW4를 자동 감지하고, OBD-II 포트에 장치를 연결하는 것 하나로 FSD를 활성화할 수 있었다. 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상용 키트가 등장하고, 그 키트의 오픈소스 버전이 바로 뒤따른 것이다.

테슬라의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중국에서는 해킹 사용자의 FSD를 영구 차단하고 운전자 보조 서비스를 초기 상태로 리셋했다. 깃허브 저장소를 폐쇄했으며, 가핀스키의 프로젝트가 이전한 GitLab 링크를 공유하는 X 게시물까지 차단했다. 한국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경고하며 강경하게 나섰다. 테슬라도 해킹 장치 사용 시 사고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사용자에게 있으며, 장치와 사고의 인과관계와 무관하게 보증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고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었다. 하나의 자물쇠가 열리면, 그 열쇠의 복제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 이것은 클로드 코드의 유출과 정확히 같은 패턴이다. 한 회사가 수년간 공들여 구축한 기술적 해자가, 공개 후 수일 만에 복제되거나 우회된다.

이 패턴은 테슬라 FSD 해킹이나 클로드 코드 유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더 큰 산업사에서도 반복된다. 한 나라가 하기도 힘들다던 재사용 로켓을 스페이스X가 해냈다. 그러자 블루 오리진, 로켓랩, 중국의 란드스페이스, 일본의 인터스텔라 테크놀로지스가 뒤를 쫓기 시작했다. 테슬라가 신경망 기반 자율주행의 가능성을 증명하자, 웨이모, 바이두, 화웨이, 중국의 수십 개 스타트업이 추격전에 합류했다. 평생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자율주행이 눈앞에 있고, 한 회사가 그것을 거의 완성하고 있으며, 다른 회사들이 바짝 뒤쫓고 있다.

한 회사가 불가능을 깨면, 불가능의 심리적 장벽이 동시에 사라진다. 나머지 회사들에게는 ‘될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된다. 기술의 선두 주자와 후발 주자 사이의 시간차가 극단적으로 짧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수십 년이 걸리던 기술 확산이, 이제는 수일에서 수주 만에 일어난다. 이것은 기업 차원의 격차 소멸이다.

이 패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물쇠’의 성격 변화이다. 과거의 자물쇠는 물리적이었다. 공장, 설비, 원자재 접근권, 특허로 보호되는 제조 공정. 이런 자물쇠는 깨는 데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렸고, 깨더라도 복제하는 데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물쇠는 디지털이다. 소프트웨어 코드, 알고리즘, 데이터 파이프라인, 시스템 프롬프트. 이런 자물쇠는 한 번 열리면 복제 비용이 거의 0이다. npm 패키지 하나에 담긴 소스맵 파일 하나가 1년치의 기술적 해자를 증발시켰다. OBD-II 포트에 연결하는 장치 하나가 국가별 지오펜싱이라는 소프트웨어 장벽을 무너뜨렸다. 디지털 자물쇠의 취약성은 물리적 자물쇠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열쇠 하나면 전 세계의 모든 같은 자물쇠가 동시에 열린다.

장난감 드론이 최첨단 무기를 비웃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동 군사 공격을 개시하며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2025년 6월의 제한적 공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란의 응답도 달랐다. 상징적 보복이 아니었다. 미사일과 드론으로 미군 기지, 이스라엘 본토, UAE의 제벨 알리 항구와 5성급 호텔, 아부다비 항만 인프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설을 타격했다. 그리고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을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거래량의 20%, 하루 약 2천만 배럴이 통과하는 지점이다. 전 세계 LNG 거래의 20%, 해상 석유 무역의 25%가 이 좁은 수로를 지난다.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은 33킬로미터에 불과하며, 국제법상 항행용 수로는 이란과 오만의 영해 안에 완전히 위치한다. 이 지리적 현실이 이란에게 전략적 지렛대를 제공한다.

이란이 해협의 통행을 사실상 차단하자, 중동산 원유의 기준 가격인 두바이유는 3월 19일에 배럴당 166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2008년 브렌트유의 역대 최고가 147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두바이유 벤치마크는 UAE, 오만, 카타르에서 생산되어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서 선적되는 원유를 기준으로 하루 1,800만 배럴의 가격을 결정하는데, 해협이 닫히면서 기준이 되는 원유 5개 등급 중 3개가 거래 불능에 빠졌다. 벤치마크 자체가 작동을 멈춘 것이다. 보험사들은 전쟁 위험 보험을 철회했고, 상업 선박 운항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1970년대 석유 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에너지 공급 교란이었다.

석유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 국제 거래 비료의 3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데, 비료에는 석유와 달리 전략적 비축분이 없다. 3월 초 중동의 과립 요소 가격은 2월 대비 약 20% 상승했다. 봄 파종 시즌을 앞두고 비료 공급이 끊긴 것은 에너지 위기를 넘어 식량 위기의 전조였다.

이란은 3월 26일에 선별적 개방을 발표했다. 중국, 러시아, 인도, 이라크, 파키스탄 선박에만 통행을 허용한 것이다. 이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선박에도 순차적으로 통행이 허가되었다. 정치적 동맹에 따라 해협의 접근권을 차등 통제하는 전례 없는 조치였다. 중국은 석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이 해협에 의존하고 있었고, 이란은 이 사실을 지렛대로 삼아 중국의 암묵적 지지를 확보했다. 이란은 약소국이 아니라 체스 선수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제한된 탐색’이다. 적의 결의를 시험하면서도 근본적인 지렛대는 포기하지 않는 역전 가능한 양보이다. 이란은 배상금 지급과 해협의 주권을 요구하며 극단적인 초기 포지션을 잡은 뒤, 여기서 양보를 내주면서도 강경함의 외양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3월 27일, 이란은 UN의 요청을 수용하여 인도주의적 물자와 비료 선적의 통과를 허용했다. 봄 파종 시즌에 비료 공급이 차단되면서 전 세계 농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 ‘양보’ 자체가 이란이 해협의 통행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했다.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은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왜 이란의 이 전략에 즉각적인 해법을 찾지 못한 것인가. 답은 비용의 비대칭에 있다.

비대칭은 원래 강대국의 전략이었다. 냉전 시대의 미국은 소련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핵탄두, 더 정밀한 유도 무기, 더 넓은 위성 정보망으로 비대칭 우위를 구축했다. 걸프전에서 미국은 스텔스 폭격기, 정밀 유도 폭탄, GPS 기반 항법 시스템이라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술적 격차로 이라크를 압도했다. 상대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상대가 막을 수 없는 무기로, 상대가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을 퍼붓는 것. 그것이 강대국이 만드는 비대칭이었다. 이 비대칭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연간 8천억 달러가 넘는 국방 예산을 쏟아왔다. F-35 전투기 한 대의 가격은 8,200만 달러, 항공모함 한 척은 130억 달러이다. 이 천문학적 투자가 만들어낸 기술적 해자가 미국의 군사적 우위의 근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비대칭의 방향이 뒤집혔다. 이란의 샤헤드 공격 드론의 생산 비용은 대당 2만~3만 달러이다. 이를 요격하는 미국의 미사일은 대당 300만 달러에서 최대 2,800만 달러에 달한다. 미 해군은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을 막기 위해 200발 이상의 요격 미사일을 소모했고, 비용만 수억 달러였다. 2만 달러짜리 드론을 300만 달러짜리 미사일로 막는 구조는 지속 불가능하다. 강대국이 독점하던 비대칭이, 이제는 약소국의 무기가 되어 강대국을 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2022년에 전체 전투 사상자의 10%를 차지하던 드론이, 2025년에는 80%를 차지했다. 3년 만에 전쟁의 주력 무기가 완전히 교체된 것이다. 양국 모두 드론 전담 군종을 창설했고, 전선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전략 폭격기와 정유 시설이 소형 드론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다. 화약이 기사의 시대를 끝낸 것처럼, 드론이 재래식 군사 교리의 시대를 끝내고 있다. 상용 부품으로 차고에서 조립할 수 있는 드론이 수천만 달러짜리 방어 체계를 위협하고, 태국은 2025년 캄보디아 국경 분쟁에서 상용 드론으로 실제 군사 작전을 수행했다. 국가 대 국가의 전쟁에서 장난감 같은 드론이 주력 무기가 되는 시대이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이 뒤집힌 비대칭의 가장 극적인 결과물이다. 에르빌의 미군 기지 위로 매일 이란의 드론이 날아오고, 미군이 이를 격추하는 장면이 일상이 되었다. 미국은 실시간으로 다층 방어 체계를 구축하느라 허둥대고 있다. 미리 했어야 하는 일이다. 이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에 통행료를 부과하듯 호르무즈 해협에도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호르무즈가 공짜인 시대는 끝나고 있다. 가장 약한 고리로 여겨졌던 국가가 세계 에너지 공급의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이, 국가 차원의 격차 소멸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극의 세계에서 무엇으로 기록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패턴이 있다. 클로드 코드의 유출은 에이전트 기술의 평준화를 앞당겼다. 테슬라 FSD의 해킹은 소프트웨어 잠금이라는 기업의 통제력이 수일 만에 무력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AI의 확산은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지식 격차를 급속히 좁히고 있다. 이란과 호르무즈 위기는 군사적 열세에 놓인 국가가 최강국의 군사적 우위를 비대칭 전략으로 상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격차가 사라지고 있다.

예전의 세계는 명확한 위계가 있었다. 냉전 시대의 양극 체제, 그 이후의 미국 단극 체제, 넓게 보아도 서방-중국-러시아의 삼극 체제. 하나의 중심이 무너지면 전쟁이 나고, 새로운 중심이 자리를 잡으면 안정이 왔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는 다르다. 다극 체제 속에서 다극적인 분쟁, 다극적인 복잡성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통제하고, 후티 반군이 홍해를 위협하며, 우크라이나의 드론 전술이 NATO의 군사 교리를 재편하고, 동남아시아에서도 국가 간 드론 교전이 벌어진다. 이 다극적 분쟁은 과거에 없었던 형태로 개인, 기업, 국가 모두에게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 상황의 역설을 짚어야 한다. 미국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만든 LLM은 미국의 독점 자산이 아니다. 오픈소스로 공개된 모델들, API를 통해 접근 가능한 모델들은 전 세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적국이 같은 기술을 사용하여 사이버 공격을 설계하거나, 정보 교란 작전을 수행하거나, 군사 전략을 최적화할 수 있다. 미국이 만든 도구가 미국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핵무기의 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핵무기는 제조 과정 자체가 진입 장벽이었다.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핵실험장 — 이 모든 것에는 국가 수준의 자원이 필요했다. 핵확산방지조약이 효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핵무기의 물리적 진입 장벽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는 다르다. 노트북 한 대와 인터넷 연결이면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술에 접근할 수 있다. AI의 확산을 통제하는 핵확산방지조약 같은 체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다 해도 효력을 가지기 어렵다. 코드는 복사되고, 모델은 증류되며, 지식은 퍼진다. 통제할 수 없는 확산이다.

기업 차원에서도 같은 역설이 작동한다. 메타가 라마를 오픈소스로 공개한 것은 구글과 오픈AI에 대한 경쟁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 라마가 중국의 AI 스타트업들에게 최고의 기반 모델이 되어, 서방 기업과 경쟁하는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다. 앤트로픽이 법적 경고로 OpenCode를 견제한 지 열흘 만에, 자사의 전체 소스코드가 유출되어 오히려 더 많은 경쟁자를 만들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기업이 공개한 기술이 스타트업의 최고의 무기가 되어 대기업 자체를 위협하는 비수로 되돌아온다.

개인 차원에서의 격차 소멸도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가장 지식이 부족하고 경험이 없는 개인이 상위 0.1%와 정보 격차가 사실상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의학 논문을 읽고 해석하는 것, 특허 문서를 분석하는 것, 복잡한 계약서의 함의를 파악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이제는 AI에게 물어보면 된다. 물론 AI의 답변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성의 문제이다. 예전에는 질문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어디에 물어봐야 하는지,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질문만 하면 된다. 그저 지식이 많고 기억을 잘한다는 것은 더 이상 개인적 매력이 될 수 없다. 지식의 소유가 아니라 지식의 활용, 더 정확히는 지식을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가가 개인을 정의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나온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행위 자체에 가치를 둔 것인가, 아니면 개발의 목적에 가치를 둔 것인가. 전자에 가치를 두었다면, 할 일은 없어졌다. AI가 코딩을 더 잘하기 때문이다. 후자에 가치를 두었다면, 오히려 기회이다. 수십 명이 필요했던 시스템을 혼자서, 혹은 극소수의 인력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개발의 목적이 그저 돈벌이였다면 다른 돈벌이를 찾으면 된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편리함을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었다면, 훨씬 적은 인력이나 혼자서도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이다. 개발 생태계를 변화시킬 정도의 거대한 소프트웨어를 꿈꿔왔던 사람에게, 지금은 역사상 가장 좋은 시점이다.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법률 지식의 독점에 기반한 높은 보수였다면, 그 직업적 해자는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보호하고 싶었다면, AI라는 도구가 그 일을 더 넓은 범위에서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싶은 국가라면, 수조 달러를 들여 만든 무기 체계가 수만 달러짜리 드론에 의해 무력화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목적에 충실하다면, 비대칭 전략과 새로운 방어 체계로의 전환이 답이 될 수 있다.

격차가 사라진다는 것은 모든 것이 같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도구에 대한 접근이 평등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도구가 평등해지면, 도구를 쥔 사람의 의도와 목적이 유일한 차별점이 된다. 역사적으로 격차가 좁혀진 시기는 언제나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예고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성경의 독점을 깨뜨리자 종교개혁이 뒤따랐다. 화약이 기사의 우위를 무너뜨리자 봉건 질서가 해체되었다. 인터넷이 정보의 비대칭을 깨뜨리자 미디어 제국이 흔들리고 개인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AI가 지식의 격차를, 오픈소스가 기술의 격차를, 상용 드론이 군사력의 격차를 동시에 좁히고 있다. 이 평준화의 속도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다. 인쇄술이 유럽 전역에 확산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 화약이 전쟁의 양태를 완전히 바꾸는 데는 수백 년이 걸렸다. 인터넷이 미디어 산업을 재편하는 데는 20년이 걸렸다. AI와 드론이 만드는 평준화는 수개월에서 수일 단위로 진행되고 있다. 앤트로픽의 소스코드가 공개된 지 하루 만에 10만 스타의 대안이 탄생했다. 테슬라의 FSD 잠금이 풀린 지 며칠 만에 오픈소스 해킹 도구가 등장했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하자 두바이유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리고 이 평준화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더 평화롭기보다는 더 복잡할 것이다. 누구나 칼을 쥘 수 있다는 것이 칼싸움이 줄어든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많은 행위자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분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국가 간 전쟁만이 아니라 기업 간 기술 전쟁, 개인 간 정보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세상이다. 이 복잡성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나침반은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뿐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으로 국가를, 기업을, 나를 기록할 것인가. 도구의 소유가 아니라 목적의 명확성으로, 정보의 독점이 아니라 실행의 진정성으로, 기술의 우위가 아니라 기술을 쓰는 방향으로 기록될 것이다. 격차가 사라진 시대에, 남는 것은 오직 ‘왜(Why)’뿐이다.